가장 깊이 잠긴 씨앗에 깃든 가장 큰 생명
| 겨울 절기 1부입동(立冬)·소설(小雪)·대설(大雪)
가을이 저물었습니다. 들녘은 비워졌고, 거둔 것은 곳간에 들었으며, 첫 서리가 한 해의 농사를 마감했습니다. 이제 한 해의 마지막 계절, 겨울이 옵니다.
봄이 낳음[生]이고 여름이 기름[長]이며 가을이 거둠[收]이었다면, 겨울은 감춤[藏]입니다. 그러나 감춘다는 것은 사라지는 것과 다릅니다. 씨앗은 언 땅속에서 썩지 않고 봄을 기다리고, 나무는 잎을 떨군 가지 끝에 다음 봄의 눈을 마련해 둡니다. 겉으로는 모든 것이 멈춘 듯하나, 그 고요 아래에서 생명은 가장 단단한 핵심만 남기고 다음을 준비합니다. 《주역(周易)》의 지뢰복(地雷復) 괘가 그 이치를 담고 있습니다. 땅을 뜻하는 다섯 음효(陰爻) 아래, 맨 밑자리에 양효(陽爻) 하나가 처음 돌아온 모습입니다. 한 해에서 음이 가장 깊어지는 그때, 땅속 가장 낮은 곳에서 봄의 첫 기운이 이미 돌아와 있다는 뜻입니다. 옛사람들은 이 괘를 보고 "복기견천지지심(復其見天地之心)" — 복괘에서 천지의 마음을 본다 하였습니다. 만물이 죽은 듯 잠긴 겨울의 한복판에, 다시 살아나려는 천지의 마음이 깃들어 있다는 것입니다.
입동 — 얼어붙는 땅, 안으로 드는 만물
양력 11월 7일경 / 황경 225° / 해월(亥月)의 시작
입동(立冬)에 겨울이 섭니다. 입춘에 봄이 서고, 입하에 여름이 서고, 입추에 가을이 섰듯, 입동에 겨울이 섭니다. 한 해의 네 계절을 여는 네 개의 문 가운데, 마지막 문이 열리는 것입니다.
입동이 되면 물이 얼기 시작하고, 땅이 처음으로 굳습니다. 무성하던 풀은 시들어 눕고, 분주하던 들녘은 텅 빕니다. 그러나 이 비움은 끝이 아니라 안으로 거두어들이는 일입니다. 땅 위에서 자라던 것들이 모습을 감추는 만큼, 생명은 땅속과 뿌리로 힘을 모읍니다. 보이지 않게 되었을 뿐, 사라진 것이 아닙니다.
겨울 채비가 입동의 가장 큰 일이었습니다. 무엇보다 김장입니다. 무와 배추를 거두어 김치를 담그고, 장독을 묻고, 시래기를 엮어 처마에 매답니다. 푸성귀가 자라지 않는 긴 겨울 동안, 김장은 한 집안이 먹을 거의 유일한 채소였습니다. 가을에 거둔 것을 소금에 절이고 땅에 묻어, 다음 봄까지 상하지 않게 갈무리하는 — 김장은 거둠을 겨울 양식으로 바꾸는 가장 큰 지혜였습니다. 음력 시월은 상달[上月]이라 하여 한 해 가운데 으뜸으로 여겼습니다. 농사를 다 거둔 이달에, 옛사람들은 햇곡식으로 시루떡을 쪄서 집안의 신과 조상께 올렸습니다. 한 해를 무사히 거두게 해 준 데 대한 감사이자, 다가올 겨울을 잘 나게 해 달라는 기원이었습니다. 가을 내내 첫 곡식을 떼어 올렸다면, 이 상달의 고사는 한 해를 온전히 마친 뒤 그 전부를 두고 드리는 인사였습니다.
사주명리에서 입동은 해월(亥月)의 시작입니다. 해(亥)의 지장간은 무토(戊土)·갑목(甲木)·임수(壬水)로, 정기는 물(壬水)입니다. 겨울의 큰 물이 본격적으로 흐르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겨울 물 속에 봄의 나무 갑목(甲木)이 함께 들어 있습니다. 가장 차가운 물의 한가운데에, 다음 봄에 솟아오를 첫 나무의 기운이 잠겨 있는 것입니다. 물은 만물을 얼리는 차가움이지만, 동시에 모든 씨앗을 적셔 싹 틔우는 생명의 근원이기도 합니다. 얼어붙게 하는 그 물이, 실은 다음 생명을 기르는 물입니다. 지뢰복의 이치가 글자 하나에 그대로 새겨져 있습니다. 겨울로 들어서는 첫걸음이, 이미 봄을 품고 있습니다.
카자흐스탄의 11월은 본격적인 겨울의 문턱입니다. 스텝에 찬 바람이 몰아치고 첫눈이 흩날립니다. 강제이주의 첫 세대에게 중앙아시아의 겨울은 가장 두려운 시간이었습니다. 1937년의 첫 겨울, 변변한 집도 없이 땅을 파고 지은 토굴에서 적지 않은 이들이 추위와 굶주림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살아남은 이들은 한반도에서 그랬듯 김치를 담가 땅에 묻고, 곡식을 갈무리하고, 서로의 온기로 그 겨울을 견뎠습니다. 입동의 채비가 고향에서는 겨울을 나는 지혜였다면, 그 땅에서는 살아남는 일 그 자체였습니다.
소설 — 첫눈으로 맞이하는 겨울의 길목
양력 11월 22일경 / 황경 240° / 해월(亥月)의 후반
소설(小雪)은 '작은 눈'입니다. 이 무렵 첫눈이 내리지만, 아직 땅을 덮을 만큼은 아닙니다. 살얼음이 잡히고 땅이 얼어 가도, 한낮에는 볕이 따뜻해 '작은 봄[小春]'이라 불리기도 했습니다. 겨울의 문턱에 잠시 머무는 따뜻한 날들입니다.
이 무렵 기온이 갑자기 곤두박질치는데, 옛사람들은 이때 부는 매서운 바람을 손돌바람, 그 추위를 손돌추위라 불렀습니다. 김포와 강화 사이에는 손돌목이라는 좁고 거센 물목이 있어, 예부터 배가 자주 뒤집혀 많은 목숨을 앗아 간 곳이었습니다. 전하기로는, 고려 때 임금이 난을 피해 강화로 건너던 길에 손돌이라는 뱃사공이 노를 잡았는데, 거센 물살로 배가 요동치자 임금이 그를 의심하여 목을 베게 했습니다. 손돌은 죽기 전, 바가지를 띄워 그것을 따라가라는 말을 남겼고, 임금은 그대로 하여 무사히 강화에 닿았다고 합니다. 그가 억울하게 죽은 날이 음력 시월 스무날, 바로 이맘때입니다. 해마다 이날이면 거센 물목에 찬 바람이 일었으니, 사람들은 그것을 손돌의 넋이 일으키는 바람이라 여겼습니다. 손돌바람이 불면 뱃사람은 바다에 나가기를 삼가고, 집집마다 겨울옷을 꺼냈습니다. 계절이 바뀌며 불어오는 찬 바람과 한 편의 이야기를 엮어, 그것을 겨울이 시작되었다는 신호로 읽어 낸 것입니다.
소설 무렵 농가는 겨울나기 준비를 갈무리합니다. 목화를 손질해 솜을 두고, 무말랭이와 시래기를 거두어 말립니다. 거두어들인 것을 한 가지씩 손보아 긴 겨울의 양식으로 바꾸는 일입니다. 바깥일이 줄어드는 만큼, 사람의 손길은 집 안으로 모입니다.
사주명리에서 소설은 해월(亥月)의 후반입니다. 겨울 물의 기운이 점점 깊어지고, 그 속에 잠긴 봄의 나무는 더욱 안으로 응축합니다. 씨앗이 가장 단단히 자기를 다잡는 때입니다. 다잡는다는 것은 부푼 것을 가라앉히고, 헛된 것을 모두 떨군다는 뜻입니다. 무르던 것이 군더더기를 덜고 알맹이만 알차게 남아야, 긴 겨울을 견디고 봄에 싹틀 수 있습니다. 다음 달 자월(子月)에 가장 깊은 음으로 들어서기 전, 지금은 더 깊이 자기를 여미는 시간입니다. 겉으로는 아무 일도 없는 듯하나, 안에서는 다음을 위한 채비가 조용히 이어집니다.
카자흐스탄 스텝에 눈이 쌓이기 시작하는 것도 이 무렵입니다. 고려인에게 첫눈은 겨울이 왔음을 알리는 신호였습니다. 땅에 묻은 김장독이 얼지 않도록 짚을 두텁게 덮고, 가축의 우리를 여미고, 집 안에 땔감을 들였습니다. 추위가 깊어질수록 식구들은 한 방에 모여 온기를 나누었습니다. 바깥의 바람이 매서울수록, 안에서 맞댄 사람들의 어깨는 더 가까워졌습니다.
대설 — 흰 눈 아래, 깊어지는 겨울
양력 12월 7일경 / 황경 255° / 자월(子月)의 시작
대설(大雪)은 '큰 눈'입니다. 이름대로라면 눈이 가장 많이 내리는 때이나, 본래 중국 화북 지방의 기후에 맞춘 이름이어서 한반도와 꼭 들어맞지는 않습니다. 다만 분명한 것은, 대설을 지나면 한 해에서 밤이 가장 길고 음(陰)이 가장 깊은 동지가 코앞이라는 사실입니다.
대설 무렵은 바깥일이 모두 끝나, 사람도 자연도 깊은 쉼에 드는 때입니다. 들에서 거둘 것은 다 거두고 김장도 마쳤으니, 사내들은 새끼를 꼬고 가마니를 짜며 오랜만에 한가로운 날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안에서는 다른 일이 한창이었습니다. 가을에 거둔 콩을 푹 삶아 찧어, 네모반듯한 메주를 빚어 따뜻한 방에 매다는 일입니다. 한 해 먹을 간장과 된장과 고추장이 모두 이 메주 한 덩이에서 비롯되니, 가장 추운 때에 이듬해의 장맛이 빚어진 셈입니다. 들일이 없어 손은 한가해 보였으나, 그 한가함은 빈 것이 아니었습니다. 바깥이 가장 고요할 때, 안에서는 다음 한 해의 양식이 조용히 익어 갔습니다.
사주명리에서 대설은 자월(子月)의 시작입니다. 자(子)의 지장간은 임수(壬水)·계수(癸水)로, 오직 물(水)의 기운만으로 이루어진 글자입니다. 봄의 묘(卯)가 순수한 목(木), 가을의 유(酉)가 순수한 금(金)이었듯, 겨울의 자(子)는 순수한 수(水)입니다. 한 해에서 음이 가장 깊은 자리, 한밤이 가장 짙어지는 때입니다. 그러나 바로 그 깊은 곳에서, 머지않아 동지의 첫 양(陽)이 움트기 시작합니다. 자(子)는 하루로 치면 자정(子正)이기도 합니다. 한밤중이면서, 동시에 새 하루가 열리는 첫 시각입니다. 가장 어두운 한가운데가 곧 새 빛이 비롯되는 자리인 것입니다.
강제이주의 첫 세대가 가장 힘겹게 견딘 것이 이 한겨울이었습니다. 땔감도 식량도 넉넉지 않은 토굴에서, 그들은 가진 것을 아끼고 나누며 하루하루를 버텼습니다. 언 땅에 묻힌 뿌리가 죽지 않고 때를 기다리듯, 그들도 가장 모진 시간을 견디며 안으로 다음을 품었습니다. 봄을 본 적은 없어도, 봄이 오리라는 것만은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오늘날 중앙아시아 곳곳에 뿌리내린 고려인 사회는, 그 깊은 겨울을 끝내 건너온 이들이 틔운 싹입니다.
겨울 1부를 마치며 — 잠기되 사라지지 않는다
입동·소설·대설, 겨울의 첫 세 절기는 한 가지를 함께 가리킵니다. 모든 것을 안으로 들여 가장 깊은 곳에 갈무리하고, 거기서 다음을 기다리는 일입니다.
입동은 땅이 얼며 만물이 안으로 드는 때를, 소설은 첫눈과 매서운 바람 속에 겨울나기를 마치는 손길을, 대설은 바깥이 가장 고요할 때 안에서 이듬해의 양식을 빚는 손을 보여 주었습니다. 봄에 낳고 여름에 기르고 가을에 거두었다면, 겨울에는 그 모든 것을 가장 깊은 곳에 들여 다음을 기약합니다.
그러나 잠긴 것은 사라진 것이 아닙니다. 지뢰복의 괘가 일러 주듯, 가장 추운 땅속 가장 낮은 자리에는 이미 봄의 첫 양기가 돌아와 있습니다. 해월의 물 속에 봄의 나무가 잠겨 있고, 자월의 가장 깊은 한밤에 새벽의 첫 빛이 깃들어 있습니다. 죽은 듯 고요한 겨울은, 실은 다음 봄을 가장 분주히 준비하는 계절입니다. 깊이 들여 단단히 여미는 것은, 가장 소중한 것을 끝까지 지켜 다음으로 건네기 위함입니다.
고려인의 겨울이 그것을 증명합니다. 1937년의 첫 겨울, 토굴 속에서 가장 혹독한 추위와 굶주림을 견디면서도 그들은 봄을 단념하지 않았습니다. 언 땅에 묻힌 뿌리처럼 그 겨울을 견뎠고, 봄이 오자 모래땅을 일구어 첫 씨를 뿌렸습니다. 가장 깊은 겨울을 끝까지 건넜기에, 오늘 여러분이 그 땅에 뿌리내리고 있습니다. 고려일보를 읽는 여러분의 할아버지·할머니는, 가장 모진 겨울 속에서도 봄을 믿었던 분들입니다.
독자 여러분, 지금 당신의 삶에 가장 깊은 겨울이 와 있습니까. 모든 것이 멈추고, 아무것도 자라지 않는 듯한 시간을 지나고 계십니까. 그 언 땅을 가만히 들여다봐 주십시오. "가장 깊이 잠긴 씨앗이, 가장 큰 생명을 품고 있습니다." 한 알의 씨앗 속에 거목이 통째로 잠겨 있듯, 당신의 가장 추운 시간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다음을 길러 내고 있을 것입니다.
다음 주에는 겨울의 마지막 세 절기 — 동지(冬至)·소한(小寒)·대한(大寒)을 읽겠습니다. 입춘에서 시작한 스물네 절기의 순환이, 그 끝에서 비로소 완성됩니다.
정태철
교육학 박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