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자흐 전통과 언어를 사랑하는 크즐오르다 출신인 초이 (최) 스베틀라나
크즐오르다서 사는 초이 스베틀라나 블라디미로브나는 동지역에서 유명한 디자이너이자 재봉사로, 창작 스튜디오 ‘다라레이스’ (DARALACE)의 설립자다. 그러나 그는 카자흐어를 유창하게 구사한다는 사실은 가족과 가까운 친구들만 알고 있다.
그는 카자흐스탄에서 최초로 카자흐 전통의상과 한국 한복을 결합한 독특한 의상을 선보였다. 카자흐 문양이 새겨진 한복과 넓은 소매의 카자흐 전통 의상에 한국 패턴을 더한 옷들이 탄생한 것이다. 두 민족 옷차림 스타일의 조화는 그녀로 하여금 카자흐와 한국의 예술 및 문화 역사를 더욱 깊이 연구하게 만들었다.
초이 스베틀라나는 카자흐어를 학교에서 배우기 시작했다고 회상한다.
“저는 우즈베키스탄에서 태어나 2년간 고려인 마을에서 살았어요. 그곳에서는 모두가 고려말만 사용했죠. 그래서 크즐오르다로 이주했을 때는 카자흐어나 러시아어를 전혀 몰랐습니다. 우리 아버지 고(故) 블라디미르 겐나디예비치는 카자흐어로 말할 뿐만 아니라 생각도 하셨습니다. 이제 저도 그래요. 예를 들어, 무의식적으로 ‘자동차 부품 가게’를 카자흐어로 ‘아프토뵐셰크테르 두케니(автобөлшектер дүкені)’라고 말하곤 합니다. 아마도 예술가로서 시각적 기억력이 좋은가 봐요”.
그는 카자흐어를 아는 것이 생활에서 큰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상점이나 시장에서도 카자흐어로 자연스럽게 소통하며, 카자흐어는 카자흐스탄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유용한 언어라고 강조한다. 초이 스베틀라나는 한 가지 재미있는 일화를 소개했다.
“딸과 함께 우즈베키스탄에 있는 친척들을 보려고 심켄트를 거쳐 ‘체르냐예브카’ 국경 검문소로 가는 택시를 탄 적이 있어요. 택시 기사가 각 민족의 특징에 대해 이야기하더군요. ‘어떤 민족은 농사를 짓고, 어떤 민족은 가축을 키우고, 또 다른 민족은 상점을 연다’며 칭찬을 늘어놓았죠. 우리는 카자흐어로 대화했어요. 그런데 그가 이런 얘기를 하더라고요. ‘한번은 여성 승객을 태우고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는데, 마지막에 그분께 물었어요. “당신은 어느 부족이세요 (Руың қандай/ 카자흐스탄에 ‘루’는 한국에 성 (씨족)과 비슷함)?” 그분이 대답하길, “나 고려인이에요!” 라고 기사가 말하자 제가 러시아말로 반응했죠. “저도 고려인이에요!”. 택시 기사는 약 5분간 아무 말없이 운전하더니, 한참 웃었습니다. ‘두 번이나 속았네!’라며 말이죠. 이런 일이 저에게도 종종 있어요. 사람들이 저에게 어느 부족 출신이냐고 물을 때마다 정체가 밝혀지곤 하니까요”.
초이 스베틀라나는 카자흐 전통 음식 솜씨도 매우 좋다. 직접 질릭 (жілік – 뼈 있는 고기)을 사서 손질하고, 카즈 (қазы – 말고기로 만든 순대와 비슷함)를 만들며, 예트 (ет – 고기요리)와 바우르사크를 만든다. 그는 스스로를 정신적으로도 카자흐 사람이라고 말하며, 한식, 우즈베키스탄, 러시아 요리도 즐겨 만든다.
“스베틀라나 이모의 바우르사크는 정말 특별해요. 다른 사람들은 흉내도 못 내죠. 우리가 상을 차릴 때마다 꼭 그에게 바우르사크를 부탁하곤 해요”라고 동료들이 덧붙였다.
그는 타슈켄트에 있는 친척을 보러 갈 때마다 거기서 크즐오르다식 베슈바르막을 만들기 위해 고기, 카즈, 반죽 등 필요한 재료를 챙겨간다고 말한다. 스베틀라나는 카자흐 전통 행사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베식게 살루’ (신생아를 요람에 눕히는 의식), ‘벳아샤르’ (신부 얼굴 공개식), ‘키즈 우자투’ (신부 보내기), 쿠달리크 (상견례) 등 모든 의식에서 조언까지 해줄 정도로 익숙하다.
가족들은 스베틀라나에게 한국으로 이주하자고 권하지만 그는 단호히 거부한다. 크즐오르다가 그의 고향이자 삶의 터전이기 때문이다.
“지금 저는 한국식 의상 분양에서 ‘독점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어요”라며 그는 미소 지었다. “카자흐스탄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도 주문이 많이 들어와요. 특히 한국에서는 카자흐 전통 스타일이 가미된 의상을 요청하곤 합니다. 카자흐스탄의 고려인들은 정신적으로도 카자흐사람과 비슷해요. 전통과 가치를 존중하고 어르신을 공경하며 문화를 보존하려는 마음이 같아요”.
초이 스베틀라나의 꿈은 ‘특수 아동을 위한 모델 학교’를 설립하는 것이다. 그는 모든 아이들이 사회에 어우러져야 한다고 믿는다. 현재 그의 컬렉션을 선보인 패션쇼에는 14명의 모델 중 3명이 특수 아동이었다.
인터뷰 원문: 카즈프라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