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신문사는 고려인들의 삶에 대해 자주 이야기한다. 카자흐스탄에 살고 있는 고려인들, 카자흐스탄의 드넓은 초원에서 태어나 고국으로 돌아온 고려인들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다룬다. 고려인들의 사연은 각기 다르지만, 모두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얼마 전, 한 젊은 여성이 신문사를 찾아왔다. 그녀는 자신을 이렇게 소개했다. “저는 고려인입니다. 심켄트에서 태어났고, 어릴 때 가족과 함께 뉴질랜드로 이주했습니다. 이후 우리는 호주로 다시 이사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이야기는 신문사에서도 쉽게 접하기 어려운 사연이었다. 그녀의 삶의 여정을 듣고 보니, 꼭 소개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 율리야는 카자흐스탄 남부 심켄트에서 태어났다. 11살까지 고려인 다자녀 가정에서 자랐으며, 학교를 다니고 친구들과 뛰놀며 평범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러나 1998년, 그녀의 부모님은 먼 타국으로 이주하기로 결심했다. 가족에게는 낯설고도 새로운 나라, 뉴질랜드에서의 삶은 김씨 가족에게 새로운 시작이었고, 미지의 세계로 향한 도전이었다.
- 그 당시 뉴질랜드에 대해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어요. 지리수업 시간에 친구들과 지도에서 그 나라를 찾아보려고 했는데 끝내 찾지 못했던 것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요. 정말 우스웠어요. 마치 뉴질랜드가 지도에 없는 나라처럼 느껴졌거든요 – 율리야가 회상한다.
율리야는 뉴질랜드로 이주한 후, 공식적으로 이름을 ‘줄리야’로 변경했다. 그는 지금도 카자흐스탄과 고향 도시를 그리워하며, 대양 건너에 남아 있는 친척들과 친구들을 자주 떠올린다.
“처음 뉴질랜드에 왔을 때, 할머니, 할아버지, 친척들 그리고 친구들이 너무 보고 싶었어요. 다니던 학교, 선생님, 친구들과 함께했던 시간들이 많이 그리웠죠. 90년대는 어려운 시기였지만 제 기억 속에는 사람들의 따뜻한 배려와 깊은 우정만 남아 있어요”.
뉴질랜드에서 김씨 가족은 오클랜드에 정착했다. 줄리야는 우편 배달부를 문 앞 계단에 앉아 몇 시간씩 기다리곤 했다.
''그때는 친척들에게서 편지가 오는 것이 몇 달씩 걸렸어요''.
뉴질랜드에는 다양한 나라에서 온 이민자들이 살고 있었지만, 대부분이 중국, 싱가포르, 필리핀 등 아시아 출신이었다.
러시아어를 쓰는 사람도 적었고, 고려인은 더욱 드물었다. 줄리야는 처음에는 문화와 사고방식의 차이를 크게 느꼈다. ''너는 어디에서 왔어?''라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저는 자랑스럽게 '카자흐스탄에서 왔어요!'라고 대답했어요. 하지만 현지인들에게는 이 나라 이름이 마치 다른 언어처럼 들렸던 것 같았어요.''
줄리야는 부모님 그리고 맏오빠와 함께 뉴질랜드로 이주했다. 오클랜드, 아니 어쩌면 뉴질랜드 전체에서 카자흐스탄 출신 고려인은 그들 뿐이었을 수도 있었다. 이런 환경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 당시 저는 우리가 세상과 단절된 것 같은 기분이었어요. 처음에는 러시아에서 온 고려인 가정이 우리를 도와줬지만, 가까운 사이가 되지는 못했어요. 부모님은 생계를 위해 바쁘셨고, 저는 고려사람들에게 속하는 감정이 느껴지지 않았어요. 모든 것이 낯설었거든요.''
이후, 줄리야는 가족과 함께 호주로 다시 이주했다. 그곳에서 줄리야는 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온 친구들을 사귀었으며, 비록 소수였지만 고려인들도 만날 수 있었다.
‘’몇 년이 지나 2008년이 되어서야 호주에서 카자흐스탄 출신 고려인들을 만나게 되었어요. 그들은 ‘볼라샤크’ (Bolashak) 장학프로그램을 통해 유학 온 사람들이었어요. 그때 저는 처음으로 고향과 다시 연결된 느낌을 받았어요.’’
줄리야는 시드니에서 법학을 전공했고, 졸업 후 글로벌 로펌 DLA Paper사에 입사했다. 이 회사는 세계 30여 개국에 지사를 두고 있다.
‘’이 일을 하면서 저는 다시 유라시아 대륙에서 일할 기회를 얻게 되었어요. 얼마 지나지 않아 두바이에 있는 지사로 발령을 받았고, 그곳에서 다양한 국적의 변호사들과 함께 일하게 되었다. 그중에는 한국 출신의 변호사들도 많았어요. 우리는 대부분 영어로 대화했죠.’’
현재 줄리야는 미국 워싱턴 D.C.에서 석사 과정을 밟고 있으며, 카자흐스탄을 포함한 중앙아시아 국가들과 협력하는 일을 하고 있다. 줄리야는 미국에서 부모와 함께 어린 시절을 보낸 한인들과 자주 교류한다.
‘’우리 가정에서는 고려인 전통이 많이 잊혀졌지만, 저는 제 정체성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줄리야는 오래전부터 가족의 역사를 기록하기 위해 사진과 비디오 자료를 모아 디지털로 보관해 왔다.
‘’얼마 전 부모님과 인터뷰를 했어요. 어린 시절의 이야기, 조부모님의 기억, 우리 가문의 역사를 듣고 기록하는 과정이 저에게 정말 의미 있었어요...’’
줄리야는 조부모님과 직접 이야기를 나누지 못한 것이 가장 안타깝다고 말한다.
‘’어머니의 부모님 (황철신, 정 엘미라)은 우리가 카자흐스탄을 떠나기 직전에 세상을 떠나셨어요. 그래서 장례식에도 가지 못했죠. 아직도 그게 너무 마음 아파요. 아버지의 부모님, 김 이노켄티와 김 류보비는 우리 가문의 뿌리가 한국의 안동이라고 말씀한 적이 있습니다.’’
작년 12월, 줄리야의 가족은 한국을 방문해 선조들의 고향인 안동을 찾았다.
‘’안동에서 우리는 따뜻한 환영을 받았고, 문화유적지를 둘러볼 기회도 있었습니다. 우리 가족에게 이 여행은 단순한 관광이 아니라, 조상의 발자취를 되짚어 보는 뜻깊은 시간이었어요.’’
한국 여행은 줄리야에게 새로운 목표를 심어주었다.
‘’한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고려인에 대해 잘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저는 법률가로서 고려인 디아스포라의 사회적 권익을 보호하는 데 관심이 많아요.’’
현재 줄리야는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는 동시에, 고려인의 역사와 문화를 세계에 널리 알리는 일에도 힘쓰고 있다.
아직 줄리야의 여정은 끝나지 않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줄리야가 어디에 있든, 태어나 처음 여정을 시작한 그 고향의 기억은 언제나 그녀의 마음속에 남아 있을 것이다.
김 알렉산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