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이 전시장에서 한 시간 반 동안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보냈습니다. 그림 하나하나가 저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고, 감동을 느끼지 않은 관람객이 없었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각기 다른 주제의 작품들이 저의 깊은 감정을 자극했습니다. 오랫동안 이러한 감정을 느껴본 적이 없습니다. 화가로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들에게 깊은 감동을 전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스타나의 쌀쌀한 가을을 따뜻하게 바꿔 주신 뱌체슬라브 니콜라예비치 화가님께 감사드립니다. 새 전시회를 기대합니다.'' / 아스하트 지니케예브
''전시회를 매우 인상 깊게 감상했습니다. 다채로운 색채의 작품들은 사람들 마음속 깊은 곳에 파고들어 자신과 삶, 그리고 인생에서의 사명에 대해 생각하게 만듭니다. 앞으로도 새로운 창작 활동을 기원하며, 건강하시기를 바랍니다.'' / 랴스노바 베.이.
''이 훌륭한 전시회를 준비한 모든 분들께 감사를 표합니다. 화가님께서는 앞으로도 창작적 열정이 식지 않고 계속해서 사람들에게 기쁨을 선사하시기를 바랍니다.
뱌체슬라브 니콜라예비치 화가님, 오래 건강하셔서 늘 창작의 정상에 계시기를 바랍니다.'' / 볼라트 알토브
이것은 리 뱌체슬라브 화가의 전시회를 관람한 후 방문객들이 감상록에 남긴 감사의 글이다. 신문의 지면 제한으로 모든 글을 소개할 수는 없지만, 관람객들의 열렬한 반응은 전시회의 성공을 잘 보여준다.
리 뱌체슬라브 니콜라예비치는 1948년 아스타나 (당시 아크몰라)에서 태어났다. 그의 외할아버지가 독립운동가 황운정이라는 사실만으로도 그는 평범한 가정 출신이 아님을 짐작할 수 있다. 그의 아버지 리창원 (리 니칼라이 니콜라예비치) 역시 저명한 학자다. 이에 대해 더 자세히 이야기하기 전에, 먼저 리 뱌체슬라브 화가에 대해 소개하고자 한다.
중학교를 졸업한 후 그는 카자흐 국립대 물리학과에 입학했고, 이후 레닌그라드 (현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대 물리학을 공부했다. 그는 <고주파 물질에서 탄소를 분석하는 동위원소 분광분석>이라는 주제로 학사 논문을 써서 학위를 받았다. 이후 그는 과학자로서 여러 해 활동하며 교육 분야에서도 성공적인 경력을 쌓았다. 그는 교사와 대학 총장을 역임했고, 교육기관의 책임자로 일했다.
하지만 직업적인 측면 외에도 그는 어릴 때부터 그림을 좋아했다. 그의 아버지 역시 젊은 시절 미술에 큰 관심을 가졌고, 아마추어 화가로서 재능을 인정받았다. 특히 초상화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냈고, 사람들의 주문을 받아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이러한 가정 환경 속에서 리 뱌체슬라브는 미술에 대한 관심을 키웠다. 그는 결국 미술전문학교를 졸업하고 여러 유명 화가들 (유리 알렉사드로브, 자이크 쿠식바예프, 나스타르 마마이 등)과 교류하며 실력을 쌓았다.
그의 작품들은 카자흐스탄뿐만 아니라 러시아, 일본 등 여러 국제 미술 전시회에서도 주목받았다. 2022년에는 러시아 미술 주간과 상트페테르부르크 미술 주간에서 수상을 하였고,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아트 페스티벌에도 참가했다.
리 뱌체슬라브 니콜라예비치의 개인전 <깨어난 사랑> 개막식과 관련하여, 유라시아 미술가 동맹은 다음과 같은 축하문을 보냈다.
''리 뱌체슬라브 니콜라예비치는 유라시아 미술가 동맹의 적극적인 회원입니다. 그는 자신의 작품을 국제 콩쿠르에 정기적으로 출품하며, 카자흐스탄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아름다운 미술을 널리 전파하는 우리 동맹의 대사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는 항상 새로운 길을 탐구하며, 신작으로 방문객들에게 깊은 감동을 선사하고 있습니다.''
리 뱌체슬라브는 꾸준한 탐구 정신과 독창적인 작품들로 국제 미술계에서도 큰 주목을 받고 있다.
그의 작품은 주제 면에서 매우 다양하다. 그 중 가장 주목할 만한 작품 중 하나는 고려인들이 겪은 비극을 묘사한 37년 가을이다. 이 작품은 그의 어머니 황 라이사 운제노브나가 겪었던 고난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카자흐스탄을 배경으로 한 그림들도 많은데, 그중에서도 카자흐인들의 대표적인 음식인 레뾰쉬카가 구워지는 장명을 그린 작품이 특히 흥미롭다. 또한, 인간과 동물 사이의 깊은 유대를 묘사한 그림 슬픔은 관람객들의 눈시울을 적신다. 이 작품에는 하늘나라로 떠난 주인을 기다리는 개와 고양이가 그려져 있다. 개는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 주인의 사진을 바라보고 있으며, 평소 독립적이라 여겨지던 고양이 역시 긴장한 모습으로 참된 친구를 잃은 상실감을 드러낸다. 이 그림을 그리게 된 배경에 대해 리 뱌체슬라브 화가는 나에게 이야기해 주었다. 그림 속 동물들의 주인은 다름 아닌 그의 가까운 친구였다고 한다.
리 뱌체슬라브 니콜라예비치의 가족은 남다른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의 외할아버지 황운정은 1899년9월11일, 함경북도 온성부에서 태어나 1919년3.1 운동에 참여했다. 일제 탄압을 피해 러시아 연해주로 이주한 그는 추풍 솔밭관 한족공산당* 행정부에서 활동했다. 이후 황운정은 연해주에서 일본군과 러시아 백파군에 맞서 싸웠으며, 1921년 러시아공산당에 입당해 빨치산 부대에서 활동하며 극동 지역 해방 전투에 참가했다.
황운정은 1989년12월31일에 세상을 떠났으며, 대한민국 정부는 2005년 그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2019년에는 그의 유해가 국립 대전 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되었다. 황운정 투사의 유해봉환식에는 그의 아들 황 마이 운제노비치와 외손자 리 뱌체슬라브 니콜라예비치가 참가했다.
이에 대해 리 뱌체슬라브 니콜라예비에게 소감을 물었다.
- 뱌체슬라브 니콜라예비치, 독립운동가의 손자로서 유해 봉환식에 참여하셨을 때 어떤 감정을 느끼셨고, 할아버지와의 추억 중 특별히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으신가요?
- 저와 삼촌 황 마이 운제노비치가 유해 봉환식에 처음부터 끝까지 참가했습니다. 그 굉장하고 장엄한 순간을 직접 보면서 할아버지에 대한 자부심이 너무 커서 말로 표현하기 어렵습니다. 할아버지의 유해가 마침내 조국의 품에 안기는 것이 참으로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어릴 적 여름방학 때는 보통 알마티에 계신 할아버지 댁에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집안일을 조금 돕기도 했지만, 그 방학들은 저에게 정말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할아버지는 항상 저를 아끼셨고, 한 번은 저에게 지붕을 고치는 일을 도와달라고 하셨습니다. 그때는 진짜 남자만이 할 수 있는 일을 맡겼다고 생각해서 무척 자랑스러웠습니다. 평소에는 물을 길어오거나 마당을 청소하는 정도였거든요.
인구시인 아저씨가 지붕을 수리할 때 저는 못이나 도구, 건자재 같은 것을 나르곤 했습니다. 지붕에 올라갈 때마다 할아버지는 제 허리에 밧줄을 묶고, 그 끝을 지붕의 들보에 고정한 후, 다른 끝을 손에 쥐고 제 움직임을 항상 지켜보셨어요. 그러는 동안 외할머니가 여러 번 들르시면서 조심하라고 당부하시곤 했죠.
또, 할아버지가 목욕탕을 아주 좋아하셨던 것이 기억에 남습니다. 집에 있는 욕조는 시원치 않으셨느지, 제가 알마티에 갈 때면 항상 아라산 목욕탕에 모셨습니다. 목욕탕을 마치고 얼굴이 벌개진 할아버지께서 시원한 맥주 한 잔을 마시며 행복해하셨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할아버지의 소원을 자주 들어드리지 못한 것이 후회됩니다…
할아버지 인생에 대해서는 어머니에게 처음 들었습니다. 그때는 고려인들의 명예가 완전히 회복된 시기였어요. 할아버지는 원래 말씀이 많지 않으셨습니다. 특히 강제 이주나 탄압에 대해서는 언급하는 것이 금기시되던 때였으니까요. 할아버지의 파란만장한 삶의 이야기를 들은 후, 저는 할아버지를 완전히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었고, 독립운동가의 손자로서 그 이름에 걸맞게 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 가족에 대해 더 말씀해 주실 수 있을까요?
- 우리 아버지 리창원, 즉 리 니콜라이 니콜라예비치는 경제학 박사이자, 쩰리노그라드 (현 아스타나) 농업대에서 오랫동안 교수로 근무하시며 70여 편 이상의 학술 논문을 남기셨습니다. 어머니 황 라이사 운제노브나는 역시 평생을 보건 사업에 헌신하셨습니다. 저희 가문에는 또 자랑할 분이 있습니다. 삼촌 황 마이 운제노비치인데요, 그는 유명한 스포츠맨이자 재능 있는 스케이트 선수 감독, 그리고 사회활동가로 이미 구소련 시절에 전국적으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삼촌은 지금도 고려인 사회의 중요한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계십니다.
리 뱌체슬라브 니콜라예비치는 1995~2000 년도에 아스타나 고려인 민족 협회 회장으로 활동하며 사회에 큰 기여를 했다. 그는 곧 러시아 연해주 아르쳄 시로 출장을 떠날 예정이다.
‘’11월에 열리는 러시아 한인 이주 160주년 기념 미술 전시회에 초청받아 참석할 예정입니다’’라고 말했다.
- 좋은 전시가 되길 바랍니다!
남경자
* 1920년 6월 연해주 추풍에서 조직된 솔밭관 한족공산당은 러시아 내전 와중에서 연해주 주둔 일본군과 러시아 백위군에 맞서 싸웠으며, 러시아공산당과 적군을 지지하였다. 한족공산당은 주간신문『군성(群聲)』과 잡지『한살림』을 발행하여 항일선전과 맑스주의 보급에 노력하였다. [나무위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