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 ( 1931 – 1993), 소련작가동맹 맹원
아래에 게재하는 기사가 발표된지 이미 33년이 지났다. 그러나 우리 신문의 수자화한 문서보관소에서 발견한 한진 선생의 생각은 오늘도 절박성을 띠고 있다. 젊은 작가들, 민족문학의 장래, 모국어에 대한 한진 선생의 신중하고 명민한 견해…바로 30년이란 거리가 본 기사의 내용에 중요성을 부과한다. 왜냐 하면 바로 지난 30년간에 고려인 극작가와 작가를 불안스럽게 했던 미래를 우리가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그 장래에 즉 우리에게 한해서는 현재에 러시아어로 ( 한진은 <소베트>라고 쓴다) 소통하는 모국어의 위치와 모국어에 대한 고려인 새 세대의 관계가 본질적으로 변했다. 한국어의 인기와 카자흐스탄에서 한국어를 배우는 사람들의 수를 보아 대학이나 언어학교에서 배우는 세가지 동방 언어들 중에서 한국어가 튼튼한 자리를 차지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진의 질문에 대한 답이 여전히 허공에 뜨고 있다, 하긴…
1991년 9월 7일호 <고려>주간지 부록에 게재된 기사의 한 토막
우리 모두가 말을 하기전 그리고 더군다나 글을 쓰기전에 말마디 마다를 신중히 고려하며 음절과 리듬, 호의적인 이성을 꼭 평가 검열할 때가 된지 오래다. 이 모든 것이 물론 우리와 여러분이 창작하고 존재하는 영역에서 임의의 민족어에 관계되는데 유감스럽게도 우리가 일상생활이나 서로 만나보는 수준에서 우리의 교제를 보존하면서 언어학적 계선을 통과하지 않는 사실이 자주 있다.
역사적 경험은 민족 문화와 전통을 발전하며 이어나가기 위해 선조들이 넘겨준 우리의 모국어가 문자 그대로 육체적으로 소멸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소베트 고려인들의 언어도 그런 운명을 피하지 못했다. 많은 사람들은 그것이 큰 비극이 아니라고 간주한다 – 남한과 북한에서 언어가 존재하여 발전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구 소련의 고려인들에게 큰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다. 다수 고려인들은 지구촌의 다른 지역에 사는 동포들과 모국어로 교제를 하지 못한다.
작가는 태여났을 때부터 말하는 언어로 작품을 쓴다. 네가 작가라면 하다못해 한가지 언어라도 완전히 알며 그의 냄새와 맛을 느껴야 한다. 그런데 오늘의 모국어 지식 정도와 작가가 태여나기까지의 거리가 너무나 멀다. 자라나는 세대중에서 한국어로 글을 쓰는 작가가 나타날 것인가? 또한 새 세대가 예술작품을 모국어로 읽겠는가? 믿어지지 않는다. 한가지만은 명백하다 – 구 소련에서 한국어 문학이 불피코 사라질 것이다. 우리 세대에 이를테면 나 자신이 그렇게 될 것이다. 그러나 고려인들이 짧은 성을 가지고 쌀밥을 먹고 자신을 고려인으로 간주하는 동안은 그들중에서 작가가 꼭 태여날 것이다. 그런데 그 작가들이 한국어로 쓰는 것이 아니라 다른 나라 언어로 즉 그들에게 한해서 모국어로 된 러시아어로 작품을 쓸 것이다. 그리하여 나의 세대 다음에는 모국어 작품에 공백이 생긴다. 그 공백을 모국어로 쓰지 않는 고려인들의 작품이 채울 것이다. 아마 그것이 러시아어로 쓴 작품일 것이다.
나는 여기에서 이자택일을 볼 수 없다. 생각건대 이것이 가장 나쁜 와리안트가 아니다. 한가지 문학의 말기와 하나의 민족적 의식의 산아로 될 새로운 문학이 나타나는 기간이 될 수 있도록 짧을 것을 하나님께 기도하는 바이다. 우리 동포들이 타국어로 쓴 작품이 유일한 민족 문학에 소속될 수 있는가고 우리들 아니 우리들뿐만 아니라 온 세계가 많이 말하고 논쟁도 했다. 내가 한번은 서울에서 아래의 광경을 목격했다: 위신있는 한국 평론가 인 서울대 교수가 김 아나똘리 작가와 만났다. 그 교수는 김 아나똘리를 한국문학 분야에 소속시키지 못하겠다고 말했다. 그 말에 김 아나똘리가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 그런 결론이 나에겐 상관이 없습니다, 어쨌든 나는 자신을 한국문화에 소속된 사람으로 간주하니까요>. 생활의 사정과 탄생에 관계없이 민족적 문화에 몸담은 자들을 무시할 의미가 없듯이 언어 원칙에 따라 이상에 지적한 민족문화에의 소속을 구분할 필요가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대회에서는 창작적 대화를 나눌 분위기가 그 어느때보다도 잘 조성되지 않았었다.
지금에 와서 보면 그것이 누구에게 필요했던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런데 내가 우리 젊은이들에 대해 몇마디 하지 않는다면 내가 헛말을 한 것으로 되고 말 것이다.
첫째로 그들은 모두 다 이를테면 침체의 시기에 태어나서 교양을 받은 자들이다. 그들은 주위 생활에 있는 모든 비이상적인것과 가짜적인 것을 고칠 수 없는 (투쟁할 수 없는) 현실로 받아들였다. 그 사태를 자각하는 것은 젊은이들에게 일부 무관심과 야유적인 항의를 불러일으켰는바 그것이 반란을 표현하는 것은 아니였다. 젊은이들은 모든 것에 극단적인 태연성으로 대했다. 30세의 젊은이들 중에 dissident ( 반체제 인사)가 없는 것이 우연한 일이 아니였다. 그들이 물결의 흐름에 따라 가다가 창작의 재능이 깨여나자 그 순간에 대해 쓰기 시작하였다. 통례로 그들은 (만일 이렇게 표현할 수 있다면) 우리 사회의 시골에 대해 썼으며 작품의 주인공으로는 우리 사회의 아웃사이더 (outsider)를 택했다. 말이 났으나 말인데 실지에 있어 고려인 모두가 우리 사회의 아웃사이더들이다. 이와 관련하여 나는 박 미하일의 중편소설 <밤의 문턱을 넘어서>를 지적하고 싶다. 소설의 주인공은 완전히 외로움에 시달려 사회의 밑바닥까지 구울러 떨어진다. 그러다가 점차작으로 사회생활로 되돌아온다. 이 소설의 <헤피 엔딩>에 주목을 돌린다면 소설의 줄거리에 억지로 꾸며낸 부분이 있는 것이 물론이다. 이것이 아마 자체검열의 잔재 (rudiment)로 되어야 할 것이다.
강 알렉산드르 작가는 인간의 사명을 보다 엄격하게, 철학적으로 구현한다. 그가 쓴 작품 세가지만 지적하는바 이는 <놀이의 규칙>, <후보자>, <도라지>카페>이다. 강 알렉산드르는 <도라지> 카페>에 정신적 망명에 대해 비교적 설득력있게 이야기하고 있다. 이 테마가 소베트고려인들에게만 한해서 새로운 것이 아니다. 젊은 작가가 외로움과 같은 유력한 현상을 계속 배경으로 하는 것이 흥미있는 사실이다. 한 안드레이 작가가 우리 사회의 주변에 대한 테마를 제 나름대로 엄격하고 확실하게 다루고 있다. 많은 독자들이 처음에는 전위적인 작품이라고 간주한 그의 소설에서 일부 말마디가 때로는 격언적 성격을 띠기도 하였다. 작품명은 <시골>이다.
작품의 주인공들이 유식한 시민들이지만 작가는 자기 주인공들의 성격과 생활의 스타일을 시골 사람으로 보이고 있다. 내가 보건대 병든 사회의 신심을 잃은 사람들의 무관심성을 표현한 같다. 이 경우에 시골은 비유로 된다.
결론에 하고 싶은 말은 새 세대가 창작적 개편의 전반적 상황에 쉽게 적응된다는 것이다. 더 정확히 말해서 그들은 개편할 필요가 없다, 그들이 우리 시대와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