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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포들 속의 이방인 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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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포들 속의 이방인 ③
      동포들 속의 이방인 ③
      03.07.2026
      지난 호에서 필자는 젓가락과의 작은 전쟁, 매운 음식과의 협상, 그리고 번데기를 마주한 원초적 공포를 유쾌하게 풀어냈다. 이번 호에서는 한국식 인사와 예절, 언어의 함정 속에서 ‘동포들 속의 이방인’으로 살아갔던 또 다른 이야기가 이어진다.

      (지난 호에 이어서)

      역설적이게도 사람들은 때때로 낯선 점에 호감을 느낀다. 그리고 나의 그런 ‘다름’은 뜻밖에도 한국 여성들에게 좋은 인상을 남겼다.

      내 손은 오래전부터 차나 버스에서 내릴 때 여성에게 자연스럽게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데 익숙해져 있었다. 문을 열어 주거나, 외투를 입고 벗는 것을 도와주거나, 혹시라도 필요할 때 부축할 수 있도록 팔꿈치를 내어주는 것은 우리에게 자연스러운 예의다. 건물에 들어갈 때는 여성을 먼저 들여보내고, 엘리베이터에서 나올 때는 상대를 배려해 한 걸음 물러서는 것도 마찬가지다.

      학생 시절 몸에 밴 이런 예절들은 머리로 생각하기 전에 먼저 몸이 움직였다. 나에게는 너무나 익숙한 몸짓과 손동작이었지만 20세기 마지막 10년을 살던 한국 여성들에게는 거의 사회풍자극과 공상과학이 결합된 작은 공연처럼 보였던 모양이다. 어떤 이는 당황했고, 어떤 이는 내가 손을 내미는 순간 마치 법원 출두 통지서라도 건네려는 사람을 본 것처럼 흠칫 물러났다. 또 어떤 이는 자기 남편을 바라보았다. 마치 숙제를 또 해오지 않은 학생을 바라보는 선생님처럼 말이다.

      가끔 용감한 여성은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한국 남자들도 좀 배우면 좋겠네요.”

      그럴 때마다 나는 겸손한 표정을 지으려 애썼다. 하지만 속으로는 어깨가 조금쯤 펴졌던 것도 사실이다. 드디어 소련식 교육이 ‘배당금’을 안겨 주는 순간이었던 셈이다.

      당시 한국의 많은 남성들에게는 짧은 신사 예절 강좌가 필요했을지도 모른다. 물론 세월이 흐르면서 세상은 크게 달라졌다. 전통문화는 현대화의 거센 물결 속에서 조금씩 변화했고, 그 변화는 컴퓨터와 휴대전화, 공항과 커피숍뿐 아니라 사람들의 생활방식과 예절에도 영향을 미쳤다. 오늘날에는 동양의 남성들도 자연스럽게 문을 열어 주고, 세계화된 예의범절은 커피숍의 카푸치노만큼이나 익숙한 풍경이 됐다. 하지만 1990년대 초만 해도 나의 다소 구식인 몸짓들은 일종의 문화적 돌발행동처럼 보였다. 특별할 것 없는 행동이었지만 그 효과만큼은 의외로 컸다.

      하지만 더 어려운 문제는 인사법이었다.

      내가 자란 세상에서 사람들은 '동무', '시민', '아가씨', '총각' 같은 말로 인사를 나눴고, 친한 사이에서는 가볍게 어깨를 두드리는 것으로도 충분했다. 악수는 평등의 상징이었다. 내 손바닥과 당신의 손바닥이 만나면 인사는 성립되었고, 적어도 그 짧은 순간만큼은 계급적 모순도 발견되지 않았다.

      반면 절은 계산이 필요했다.

      한국에서는 상대의 나이와 사회적 지위, 친분의 정도, 손의 위치, 허리를 숙이는 각도, 어쩌면 바람이 부는 방향까지 고려해야 하는 것처럼 보였다. 잘못했다가는 단순히 예의 없는 사람이 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자칫하면 척추의 유연성이 수상한 사회적 위험인물로 분류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내 경우에는 사람을 만나면 오른손이 먼저 앞으로 튀어나갔다. 그 손은 오랫동안 소련식 삶에 길들여져 있었고, 유교적 위계질서 앞에서 쉽게 항복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상대방이 인사를 하며 허리를 숙이는 동안 내 손은 허공에 떠 있었다. 마치 아무도 답하지 않은 외교문서처럼 말이다. 때로는 절을 하면서 동시에 악수를 청하려고 애쓰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인사를 하려는 사람인지, 아니면 바닥에 떨어진 지갑을 주우려는 사람인지 알 수 없는 모습이 되곤 했다. 아마 사람들은 나를 인사도 제대로 할 줄 모르는 건방진 젊은이쯤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사실 나는 고민하느라 바빴다. 15도쯤 숙여야 할지, 30도쯤 숙여야 할지, 아니면 아예 허리를 깊이 굽혀 확실하게 예의를 갖춰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았던 것이다. 한국에서 내가 깨달은 것은 이것이었다. 존경의 표현이 부족한 것보다는 허리를 조금 더 숙이는 편이 낫다는 사실이다. 신기하게도 내 머리보다 등이 그 진리를 더 빨리 배웠다.

      언어에 관한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

      죽기 살기로 석 달 동안 한국어를 외운 끝에 나는 간단한 대화 정도는 할 수 있게 됐다. 발음도 제법 서울 사람처럼 들렸고 후원자들이 마련해 준 옷을 입고 있으면 겉모습만으로는 현지인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였다. 하지만 그것은 위험한 시기이기도 했다. 겉으로는 이미 사람들을 속일 수 있었지만 정작 내 안에는 스스로의 정체를 솔직하게 드러낼 만큼의 어휘가 아직 없었기 때문이다.

      대화가 교과서에서 배운 표현 안에서 이루어질 때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나는 자신 있게, 정확하게, 심지어 제법 감정을 담아 대답하기도 했다. 그러나 상대방이 한국어 교재의 범위를 조금이라도 벗어나는 순간 상황은 달라졌다. 그때부터 내 말은 마치 전달 도중 어딘가에서 훼손된 전보 같았다. 단어는 있었지만 의미는 가끔 사라졌고, 문법은 간신히 체면만 유지하고 있었다.

      어느 날 길을 가다가 마주친 아주머니 한 분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말투로 보아 지방에서 올라온 분인 듯했다. 나는 용감하게 대답을 시도했다. 결과는 애매했고 용감했으며, 무엇보다도 전혀 뜻이 통하지 않았다. 아주머니는 못마땅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더니 대충 이런 뜻의 말을 남겼다.

      “아니, 아직 아침인데 벌써 취했네!”

      그렇게 나는 처음으로 알게 됐다.

      외국어 실력이 부족하다는 것이 때로는 상당히 설득력 있는 알코올 중독의 증거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또 다른 언어적 충격은 서울대에서 러시아어 보충수업을 맡게 되면서 찾아왔다. 당시 소련과 한국의 관계가 막 형성되기 시작하던 시기였는데, 러시아어를 전공하던 학생들은 한때 볼셰비키 혁명(1917년 두 차례의 혁명을 따로 나누어 2월 혁명, 10월 혁명으로 부르거나 두 사건을 묶어서 볼셰비키 혁명으로도 부른다)을 피해 미국으로 망명한 러시아인들이 집필한 교재로 러시아어를 배우고 있었다.

      덕분에 강의실에서 들리는 러시아어는 몹시 고풍스러웠다. 마치 담배 향과 장교들의 금빛 견장, 무도회 드레스를 입은 귀부인들, 그리고 혁명 이전 시대의 예절이 그대로 살아 있는 듯했다.

      그 교재에 실린 한 대화에서는 이바노프 대위가 니콜라예프 중위에게 페트로프 씨의 담배 가게에 들르자고 권하고 있었다. 거기에는 품질 좋은 궐련이 새로 들어왔다는 설명까지 덧붙어 있었다.
      학생들은 이런 대화를 열심히 암기했다.

      “실례지만 먼저 지나가시겠습니까, 선생?”

      “감사히 그러겠습니다, 중위님.”

      나는 그 대화를 들으며 러시아어 수업이 아니라 역사박물관 수장고에 들어와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현대 소련의 젊은이들은 서로를 ‘선생’이라고 부르지도 않고, 궐련을 매개로 한 외교도 하지 않는다고 설명해 주어야 했다.
      학생들은 그 설명을 즉시 받아들였다.

      그날 수업이 끝난 뒤 한 학생이 환한 얼굴로 내게 물었다.

      “교수님, 점심 먹으러 같이 갈래?”

      수업이 끝나는 모습도 나를 적잖이 놀라게 했다.

      학생들은 하나같이 “교수님, 감사합니다!”를 외치며 연신 허리를 굽신거렸다. 그리고는 작은 걸음으로 뒷걸음질을 치며 강의실 문 쪽으로 물러났다. 마치 임금에게 등을 보이는 것이 금지된 궁중 신하들 같았다.
      다른 차이도 있었다.

      지하철에서 서서 가다 보면 내 눈에 들어오는 것은 주로 남성들의 정수리였다. 듬성듬성 머리카락이 빠진 사람도 있었고, 완전히 대머리가 된 사람도 있었다. 키가 거의 170센티미터였던 나는 당시만 해도 많은 사람들을 내려다볼 수 있었다.

      유럽에서는 좀처럼 누리기 어려웠던 특권이었다. 그런 점은 은근히 나의 자존심을 만족시켜 주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오늘날 서울 지하철에서 젊은 남성들은 나보다 훨씬 키가 크다. 이제는 내가 그들을 올려다보고, 그들은 나를 내려다본다. 세월은 그렇게 조용하지만 정확한 농담을 내게 건넸다. 예전에는 키가 큰 편이라 눈에 띄었다면, 이제는 키가 작은 편이 되어 눈에 띄게 된 것이다. 하지만 가장 큰 차이는 키에 있지 않았다.

      젓가락에도, 토끼털 모자에도, 인사법에도, 심지어 내가 충분히 그럴듯하게 쩝쩝 소리를 내며 먹지 못했던 데에도 있지 않았다. 내가 여전히 이방인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순간은 따로 있었다. 그것은 내가 한국에 대해서는 너무 적게 알고 있었고, 한국이 아닌 또 다른 세계에 대해서는 너무 많이 알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할 때였다.

      나는 사람들이 다니엘 디포와 『로빈슨 크루소』를 모르고, 세르반테스와 『돈키호테』를 모르며, 비발디와 『사계』를 모르고, 모딜리아니와 그의 목이 긴 여인들을 모른다는 사실에 놀라곤 했다.

      하지만 그들 역시 나에게는 낯설기만 한 이야기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꺼내 놓았다. 그들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것들이었지만, 나에게는 이정표 하나 없는 깊은 숲과도 같았다. 물론 모른다는 것 자체가 가장 큰 문제는 아니다. 모르는 것은 얼마든지 배울 수 있다. 훨씬 더 어려운 것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무지(無知)란 눈앞에 있는 것이 문이라는 사실조차 모르는 상태다. 하지만 불이해(不理解)는 그것이 문이라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으면서도 왜 사람들은 모두 창문으로 드나들고 있는지, 그리고 어째서 이상한 사람은 그들이 아니라 바로 나라고 생각하는지를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는 상태다.

      한국에서 나는 종종 그런 ‘문’과 ‘창문’ 앞에 서 있었다.

      어떻게든 문화인처럼 보이려 애썼지만, 잘해야 성실해 보이는 정도에 그쳤다. 하지만 어쩌면 바로 그 성실함이 나를 구해 주었는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낯선 이가 실수하는 것을 비교적 쉽게 용서한다. 다만 그 낯선 이가 처음부터 모든 것을 알고 태어난 사람처럼 행동하지 않을 때에만 말이다.

      나는 ‘내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한국에 왔다. 하지만 곧 깨달았다. ‘내 사람’이라는 것은 피부색이나 눈매, 성(姓)의 길이만으로 알아볼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때로 ‘내 사람’이란 서툰 젓가락질을 보며 웃으면서도 조용히 접시를 내 쪽으로 밀어주는 사람이다. 각도가 조금 엉뚱하고 허리가 아직도 요령을 제대로 익히지 못한 듯한 절이라도 기꺼이 받아주는 사람이다. 내 얼굴만 봐도 내 위장이 이미 별도의 협상에 들어갔다는 사실이 분명한데도 끝까지 “맛있어요?”라고 물어봐 주는 사람이다. 나의 어색함과 낯섦을 알아차리면서도 그것을 흠이나 결점으로 단정하지 않는 사람이다.

      결국 ‘다름’은 결함이 아니었다.

      그것은 익숙한 가면을 벗고 자신과 타인을 새롭게 바라보게 해 주는 하나의 방식이었다. ‘동포들 속의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일이 불편한 것은 처음 며칠뿐이다. 그때는 마치 모글리(러디어드 키플링의 원작 소설 정글북의 주인공)처럼 하루라도 빨리 늑대 무리의 일원임을 증명하고 싶어진다. 젓가락을 떨어뜨리지도 말아야 하고, 절하는 각도도 틀리지 말아야 하며, ‘전혀 안 맵다’는 김치를 먹고 비명을 질러서도 안 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조금씩 깨닫게 된다.

      같은 뿌리를 가졌다고 해서 차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며, 차이가 있다고 해서 같은 뿌리마저 사라지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그리고 진정으로 ‘내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솔직하게 ‘이방인’으로 살아볼 필요가 있다는 사실을.

      가능하다면 유머 감각과 튼튼한 위장을 갖춘 채 말이다.

      그리고 때로는 토끼털 모자뿐 아니라 자신의 지나친 자신감도 함께 쓰레기통에 버릴 준비를 하면서…

      AI로 생성한 이미지

      김 게르만 교수, 알마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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