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호에서 필자는 처음으로 한국 땅을 밟은 뒤 ‘동포들 속의 이방인’이 된 사연을 들려주었다. 토끼털 모자 하나 때문에 서울 거리에서 뜻밖의 시선을 받고, 젓가락과의 작은 전쟁을 치르며 조상의 나라에서 오히려 낯선 사람처럼 느껴졌던 순간들을 회상했다. 이번 호에서는 식탁 위에서 마주한 또 다른 문화적 충격과 음식에 얽힌 유쾌한 에피소드를 소개한다.
(지난 호에 이어서)
돌이켜보면 식사는 늘 ‘내 편인가, 남인가’를 가르는 또 하나의 시험장이었다. 식탁 위에서는 문화적 차이가 가장 선명하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처음 한국에 왔을 때 나를 가장 당황하게 만든 것 중에 하나는 사람들이 만날 때마다 “Сикса хяссэё? (식사하셨어요)?”라고 묻는 것이었다. 마치 내가 굶주린 땅에서 막 탈출해 온 사람이라도 되는 것처럼 말이다. 나중에야 그것이 단순한 인사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어쩌면 “Аннёнгхассэё! (안녕하세요?)” 대신 써도 될 만큼 자주 쓰이는 말이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식사 전에도, 식사 중에도, 식사 후에도 사람들은 끊임없이 물었다. “Масиссэйо? (맛있어요?) ”.
잠시 후에는 다시 확인했다. “Чонгмаль масиссэйо? (정말 맛있어요)?”
그리고 마지막에는 결정타를 날렸다.
“Аджу масиссэйо? (아주 맛있어요?)”
마치 내 대답 하나에 한국 음식의 미래와 한소 관계의 운명이 달려 있기라도 한 듯했다.
나 역시 늘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때로는 매운 음식이 이미 내 위장과 치열한 협상을 벌이고 있었지만, 겉으로는 정말 맛있게 먹는 사람처럼 행동했다.
반면 내 머릿속에는 늘 다른 질문이 맴돌았다.
'왜 이렇게 쩝쩝 소리를 내며 먹을까?'
한국 사람들은 정말 거리낌 없이, 그리고 자신감 넘치게 식사를 했다. 국물은 후루룩거렸고, 면발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입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반찬들은 마치 진흙길에서 장화가 척척 달라붙는 듯한 소리와 함께 사라졌다. 심지어 서구에서 유학한 교수들조차 식탁에 앉으면, 소리 없이 식사하는 사람을 오히려 수상하게 여길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나는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다. 구내식당과 알루미늄 포크, 유리컵에 담긴 차와 함께 자라난 나의 소련식 예절은 단 한 가지를 견디지 못했다. 바로 쩝쩝거리는 소리였다. 내가 살던 세상에서는 그런 소리를 냈다가는 안경 너머로 날아오는 한 번의 눈빛만으로도 스스로 예절 학원에 등록하고 싶어질 정도였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전혀 달랐다. 소리를 내며 먹는 것은 무례함의 표시가 아니라 건강한 식욕과 음식에 대한 만족감, 그리고 음식을 만든 사람에 대한 존중의 표현이었다. 맛있게 먹는다는 것은 곧 음식이 성공했다는 뜻이다. 반대로 지나치게 조용히 먹으면 몸이 아프거나 기분이 좋지 않거나, 심지어 음식에 별 관심이 없는 사람처럼 보일 수도 있다. 훗날 사극을 보면서 조선 시대 임금들까지 비슷한 소리와 함께 식사하는 모습을 보고 나서야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그것은 단순한 식습관이 아니라 오랜 전통에 뿌리를 둔 문화였던 것이다.
한국 음식은 내게 또 하나의 외교 무대였다. 수없이 많은 한국 음식 가운데 내가 즐겨 먹은 것은 기껏해야 열 가지 남짓이었지만, 그만큼은 누구보다 충실하고 열정적으로 먹었다.
“Мого босеё! (먹어 보세요!)” 라는 권유를 받을 때마다 나는 한 번 이미 먹어 본 경험이 있고 그 이후로는 자신의 목숨을 더욱 소중히 여기게 된 사람의 미소로 응답하곤 했다.
“전혀 안 매워요” 라는 말에는 정중히 고개를 끄덕였다. 한국에서 ‘전혀 안 맵다’는 말은 때때로 영혼이 몸을 빠져나갔다가 뒤를 돌아보며 되돌아오는 길을 물을 정도로 맵다는 뜻일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처음 보는 낯선 음식들이 식탁 위에 올라올 때마다 나는 문득 고향 집 식탁이 그리워졌다. 거기에는 한식과는 아무 관련도 없는 음식들이 놓여 있었지만 적어도 모두 익숙한 것들이었다. 보르시(борщ), 플로프(плов), 만티(манты), 커틀릿(котлеты), 베시바르막(бешпармак), 그리고 물론 소시지와 치즈도 빠질 수 없었다. 한국 사람들이 육회나 도토리묵 그리고 살아 있는 문어 다리처럼 꿈틀거리는 산낙지를 아무렇지 않게, 오히려 맛있게 먹는 모습을 처음 봤을 때 나는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미식가들 중에는 살아 있는 문어를 통째로 먹는 사람도 있다고 들었다. 다행히도 그런 미식 공포영화 같은 장면을 직접 목격한 적은 없다. 하지만 길거리에서 산 번데기를 건네며 마치 해바라기씨라도 까먹듯 함께 먹자고 권하는 친구들을 만날 때마다 나는 거의 원초적인 공포심을 느끼곤 했다. 번데기에서 풍기는 특유의 냄새는 아무리 좋게 표현해도 식욕을 자극하는 종류의 것은 아니었다.
이처럼 음식과 식문화의 차이는 내가 여전히 '다른 사람'이라는 사실을 끊임없이 일깨워 주었다. 한국인들이 생각하는 별미와 진미는 내가 익숙해 온 입맛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었다…
김 게르만 교수,
알마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