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명절이면 으레 고운 한복을 입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에는 어머니께서 직접 지어 주셨다. 고학년 때쯤에는 시장에 그럴듯한 한복집이 있어서 그곳의 옷을 입기 시작했다. 실상 어머니의 일이 많아지면서 명절빔을 지으실 시간의 여유가 없었다. 명절빔을 입는 날은 설날과 추석이었다. 설날에는 노란색, 또는 녹색 저고리에 붉은 치마, 그리고 나보다 어린아이들은 색동저고리를 입기도 했다. 명절빔에 대하여 오늘날까지 잊히지 않는 어머니의 말씀이 있으니, 그것은 추석빔과 관련된 이야기이다. 어머니 말씀에 의하면 추석에는 ‘분홍 저고리에 남치마’를 입는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추석에 한복을 명절빔으로 입는 경우는 우리 동네에서는 드문 일이었다. 특히 동네에서 추석날 한복으로 명절빔을 입었던 어린이는 나뿐이었다. 어느 해인가, 어머니께서 연한 베이지 바탕에 잔잔한 벼 모양의 무늬가 있는 옷감으로 추석빔을 해주셨다. 나는 아줌마 같은 무늬라고 맘에 들어 하지 않았으며 동네 친구들 앞에서도 부끄러워했다. 나이 든 부모를 둔 탓인지 우리 집에서는 당시 ‘구식’ 생활방식이 적지 않았다. 지금으로 말하면 전통문화를 많이 지켰다. 설날과 추석 명절뿐 아니라 단오와 유두, 칠석날도 우리 집에서는 각별했다. 여름 명절에는 밀전병으로 절식을 마련했으며 이때에는 친척은 물론 이웃이 우리 집에 모여 음식을 먹으며 정담을 나누었다. 당시 대체로 어려운 시절이라 철철이 명절 식을 마련하는 일은 예삿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명절을 꼭 지키셨으며 설날과 추석에는 나에게 명절빔까지 장만해 주신 것이다.
설날에 입는 설빔에 대해서는 조선조 후기 세시기(歲時記)에 나타난다. 유득공의 『경도잡지』에 “남녀가 모두 새 옷을 입는데 이를 세장(歲粧)이라고 한다.”라는 기록이 있다. 김매순의 『열양세시기』에는 “남녀노소가 모두 새로 만든 의복 한 벌을 입는데 이것을 세비음이라 한다.”라는 기록이 있다. 가장 후대에 나온 홍석모의 『동국세시기』에는 “남녀 어린이들은 모두 새 옷으로 단장하는데 이것을 세장이라고 한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처럼 조선 후기 자료에 설빔 기록이 있다는 것은 이미 그전에도 설 명절이면 설빔을 입었을 것이라는 추정을 가능하게 한다. 근대국가에 와서도 남녀노소가 설빔을 입는 풍속은 오래 지속되었으며 오늘날에도 간간이 볼 수 있다.
설빔과 함께 단오빔도 있다. 설빔을 설비음이라고 하듯 단오빔은 단오비음이라고도 한다. 원래 비음은 명절이나 잔치 때 새 옷으로 치장하는 일을 일컫는 말인데 ‘비음’이 줄어서 ‘빔’이 되었다고 한다. 설빔도 화려하지만, 단오장(端午粧)이란 말이 있을 만큼 단오 때에는 호사스럽게 치장한다. 신윤복의 풍속화 <단오풍정>에서도 단오장을 상상할 수 있다. 근대국가에 들어서는 단옷날 대표 놀이인 그네를 주제로 1941년에 만든 노래 <그네>(김말봉 시, 금수현 작곡)의 “세모시 옥색치마 금박물린 저 댕기가……”라는 노랫말에 단오장이 나타난다. 단오에는 세모시를 비롯하여 명주실로 얇게 짠 갑사(甲紗)와 같은 옷감으로 지은 단오빔을 입는다.
사실상 ‘추석빔’은 두 명절빔에 비해 그다지 알려져 있지 않다. 더욱이 그 역사를 알 수 있는 자료도 없다. 옛 선비들의 문집에는 달의 명절답게 추석의 달[月]과 관련된 시문(詩文)이 중심을 이루고, 후대에는 ‘곱게 단장한 부녀자들’이 강강술래를 한다는 놀이에 관한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어머니가 말씀하신 추석빔은 기억으로 남아 있는데 실제로 나는 추석날 분홍 저고리에 남치마를 입었던 적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추석빔에 대한 기록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어머니께서는 왜 그런 말씀을 하셨는지 늘 궁금했을 따름이다. 그러다가 숙제를 풀 기회가 생겼다.
국립민속박물관의 『한국 의식주 생활 사전』(2017년 발간)을 발간할 때 ‘추석빔’이란 용어에 관하여 써달라는 청탁을 받았다. 자료가 좀처럼 보이지 않았는데 나름 기대하고 정학유의 <농가월령가>를 찾아보았다. 거기 8월령에는 “초록 장옷에 반물치마(남빛 치마) 차려입고……”라는 구절(句節)이 나온다. 또한 “명주를 끊어 내어 추양에 마전하여(가을 햇볕에 널어 말리고) 쪽 들이고 잇들이니(남빛과 빨강으로 물을 들이니) 청홍이 색색이라…”라는 구절도 있다.
바로 <농가월령가>에 추석날의 옷으로 ‘분홍 저고리 남치마’라는 기록이 있었던 것이다. 이를 본 나는 놀랐다. 신식교육을 받은 적이 없는 데다 뒤늦게 잠시 야학(夜學)에 다니고 거의 독학으로 한글을 깨친 어머니가 <농가월령가>를 아실 리 만무하다. 그럼, 어머니가 젊은 시절만 해도 <농가월령가>의 여운이 남아 있을 때인가. 별의별 생각을 해보았지만, 해답은 찾을 수 없었다. 어머니는 이미 오래전에 세상을 떠나셨다.
추석빔은 명절옷일 뿐 아니라 계절을 가늠하는 옷의 의미를 지닌다. 단오빔이 여름철 옷의 분기점이라면 추석빔은 가을철, 그리고 이어지는 겨울철 옷의 분기점이라 할 수 있다. 2023년 ‘추석’을 비롯하여 설·대보름, 한식, 단오, 추석, 동지 등 5개 명절이 국가 무형유산으로 지정되었다 (국가 무형유산(國家 無形遺産). 지정 당시는 무형문화재였으나 2024년부터 무형유산으로 변경). 지정을 위한 프로젝트를 맡은 단체에서 나는 자문위원으로 참석하여 의견을 제출했는데 이들 명절이 모두 국가 무형유산으로 지정되어 뿌듯하다.
멀어져가는 듯한 우리의 명절이 이렇게라도 전승력을 가진다는 것은 참으로 반가운 일이다. 그중에서도 추석 명절에 대해서는 가장 먼저 작업을 했는데 당시 의견을 작성할 때는 “추석에는 분홍 저고리에 남치마를 입지.”라고 말씀하시던 어머니의 모습이 떠올랐다. 세상을 떠나신 지 아무리 오래되어도 추석빔에 대한 어머니의 말씀은 늘 귓전을 맴돈다.
글 | 김명자_국립안동대학교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