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일찍 크즐오르다 공항을 출발해 시옐리(Shieli)로 향했다. 점심을 간단히 먹고는 한낮의 뜨거운 열기 속으로 다시 길을 나섰다. 목적지는 이제는 고려인을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운 마을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꼭 고려인을 만나야 했다. 정확히 말하면, 고려사람을 주제로 새로운 프로젝트를 준비 중인 한국의 사진작가 정연두에게 그들이 필요했다. 예전에는 고려인 국영농장이었던 이곳에도 이제 고려인은 손에 꼽을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고 여러 사람에게 들었다.
그런데 한낮 무더위가 절정인 시간, 거리에는 사람 그림자 하나 없었다. 어디서부터 찾아야 할지 막막했다. 그때 학교에서 나오던 경비원이 우리를 도와주었다. 그는 길 끝에 보이는 검은 지붕의 집을 가리켰다. 찾아갔지만 아무리 불러도 대답이 없었다. 마침 현관에 앉아 있던 카자흐인 이웃이 길 건너편에 사는 고려인 할머니의 집을 알려주었다. 그 집으로 향했다. 마당에 들어가 여러 번 불러 보았지만 집 안은 조용하기만 했다. 그때 문득 시야 한쪽에서 움직임이 느껴졌다. 한 여성이 보여 큰 소리로 불렀더니 고려인이었다. 사정을 설명하려 하자 그녀는 먼저 "혈압이 좀 올라서요."라고 말한 뒤, 급히 덧붙였다. "옆집에 가 보세요. 거긴 개가 없으니까 그냥 들어가셔도 돼요." 그 말을 남기고 그녀는 안으로 들어갔다.
우리는 곧바로 옆집으로 향했다. 문이 열리더니 한 남성이 얼굴을 내밀었다. 그는 우리가 무슨 일로 왔는지 묻지도 않은 채 먼저 집 안으로 들어오라고 손짓했다. 그가 바로 박 게라(Пак Гера) 씨였다. 집 안에서는 아내 김 안나(Ким Анна) 씨가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두 사람 모두 이곳에서 태어나 이곳 학교를 다녔다. 당시 학교에서는 6학년까지 한국어 수업도 이루어졌다고 한다.
촬영을 마친 뒤 함께 따뜻한 과일차를 마셨다. 한국에서 정연두 작가와 함께 온 젊은 스태프들은 차의 맛에는 감탄했지만, 너무 뜨거운 온도에는 쉽게 손을 대지 못했다. 반면 나는 오랜만에 마시는 뜨거운 차가 반가워 거의 끓는 듯한 차를 연거푸 여러 잔 들이켰다.
…
차를 타고 논까지 편하게 갈 수는 없었다.
하지만 이 땅에 처음 정착한 고려인들이 맨손으로 파 놓은 수로에서는 몇몇 남자들이 낚시를 하고 있었다. 사정을 이야기하며 논까지 태워다 달라고 부탁했다.
낡고 먼지투성이인 뜨겁게 달궈진 지굴리(옛 소련에서 생산된 대표적인 승용차 브랜드)에 다섯 명이 몸을 겨우 구겨 넣었다. 울퉁불퉁한 비포장길을 덜컹거리며 달리는 동안 먼지 낀 차창 너머로 키 큰 갈대숲이 끝없이 이어졌다. 한참을 달리던 끝에 초록빛 갈대숲이 살짝 갈라지며 길이 열렸다. 차가 멈췄다. 물을 가득 머금은 논에는 어린 벼들이 푸르게 자라고 있었다.
"오~!"
그 순간 정연두 작가가 아이처럼 환한 표정으로 감탄사를 터뜨렸다.
옛 국영농장 '아방가르드'는 이제 다른 이름을 갖게 되었다. 지금은 '악마야(Aqmaya)'라는 마을이다. 카자흐어로 '흰 암낙타'를 뜻하는 이 이름에는 모성과 고향을 향한 변함없는 사랑이 담겨 있다.
어쩌면 그래서였을까. 박 게라 아저씨는 은퇴한 뒤에도 논을 떠나지 않았다. 그의 부모와 아내의 부모, 그리고 수많은 고려인들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그들은 자신의 땀과 노동, 그리고 삶을 크즐오르다의 땅에 바쳤고 그 덕분에 이곳은 카자흐스탄을 대표하는 벼농사 지역으로 자리 잡았다.
"어릴 적에는 커다란 나무들이 늘어선 거리에서 놀곤 했어요. 나뭇가지가 둥근 지붕처럼 길 전체를 덮고 있었지요." 안나 아주머니의 그 말이 오래도록 귓가에 맴돌았다.
(다음호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