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에 알마티 시의 레스토랑에서 박 알라 재수노브나의 팔순 기념행사가 열렸다. 알마티 시에서는 물론 카자흐스탄의 지역들에서도 알라 재수노브나를 모르는 사람들이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30여 년간 공화국 중앙통계국 (이 기관은 부(部)에 해당했다 )국장, 28 년간 카자흐스탄고려인협회 감사위원장으로 봉직했다 – 이 경력은 많은 것을 말해 준다. 소련시대에 카자흐공화국의 모든 통계자료를 안고있던 중앙통계국을 날마다 수많은 사람들이 드나들었다.
이 날 따뜻한 축하의 말을 전하기 위해 찾아온 손님들 중에는 현재 은퇴한 전 중앙통계국장 주마스딸리예프 부부가 참석했고, 다음 날에는 일부러 알마티 시 통계국장 다르한 이사예브가 찾아왔다. 이사예브 국장은 사정이 있어 당일 행사에 참석하지 못했다. 그들은 박 알라 재수노브나의 직업적 능력, 높은 책임성, 성실성을 강조하였다. 이사예브 국장은 카지흐스탄 정부를 대표해 알라 재수노브나께 축하장과 꽃다발을 전했다.
- 저를 잊지 않고 찾아와서 축하해주는 것이 저에게는 뜻밖이었습니다. 우선 저의 겸손한 노력을 이렇게 평가해주는데 대해 정부에 감사를 표하는 바입니다 - 알라 재수노브나가 감동된 어조로 말한다.
… 박 알라 재수노브나는 우슈토베 시에서 1945년에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1937년도 강제이주 시기에 우슈토베에 실려 온 고려인들에 속한다. 토굴에서 보낸 그 해 엄혹한 첫 겨울, 카자흐인들의 도움에 대해 알라는 철이 든 후에 부모들에게서 이야기를 듣고 알게 되었다. 알라가 학교에 갈 무렵에는 고려인들의 생활이 어느 정도 자리잡혔고 고려인들의 꼴호스도 나타났다. 아버지는 꼴호스의 연료공급소에서 일했고 어머니는 유치원에서 요리사로 일했다. 알라는 우슈토베에서 3키로미터 떨어진 프룬세 꼴호스에서 공부했다. 중학 11학년은 알마아타에서 이미 가정을 이루고 살던 언니 집에 와서 공부하면서 마쳤다. 알라는 학교에서 공부할 때부터 수학에 뛰어났고 때로는 수학교사가 새 테마를 다시 설명하는 것을 알라에게 맡기기도 했다. 그만큼 알라의 수학능력을 믿었던 것이다.
과목중에서도 수학을 특히 좋아했던 알라는 중학을 마친 후에 알마아타 (현 알마티) 인민경제 대학을 진학했다. 알라는 상기 대학의 경제정보기계화 학부에서 5년동안 공부한 후 카자흐 공화국 중앙통계국으로 파견되었다. 알라 재수노브나는 여기에서 보통 직원으로부터 통계국 국장까지의 길을 걸어왔다. 그는 1976 - 1986년에 카자흐 재정관리국 기관에서, 1986 - 2005년까지는 알마아타 시 통계국 국장으로 근무하였다. 박 알라 재수노브나의 노동수첩에는 통계국과 관련된 기록뿐이다.
- 알라 재수노브나, 통계국의 사업에 대해 좀 이야기해 주십시오.
- 알마티 시 중앙통계국에는 인민경제의 모든 분야에 대한 통계자료가 집중되어 있었습니다. 부서만해도 15여개가 되었습니다. 그러니 인원들이 300여명이 되었지요. 통계국에는 자체 인쇄소도 운영했습니다. 우리는 알마티 시 인민경제 모든 분야의 사업총화에 대한 소책자를 발행했습니다. 필요한 통계정보를 받기 위해 찾아오는 손님들의 요구를 충족시켜 주려고 항상 노력했습니다. 우리는 공화국의 모든 주들이 참가하는 사회주의 경쟁에서 늘 선두를 달했습니다.
반생을 통계사업에 이바지한 박 알라 재수노브나가 받은 표창을 다 헤아릴 수 없다. 그는 1990년에 전러인구조사를 성과적으로 진행한데 대해 소련최고소베트의 결정에 의해 <영예> 훈장을 받았다. 그외에도 소련중앙 통계국 <특수자> 메달, 카자흐공화국 중앙통계국 <특수자> 메달, 카자흐공화국 통계국 90주년 메달, 카자흐스탄민족회 20주년 기념메달, 카자흐스탄고려인 협회 기념메달을 비롯하여 영예표창장들도 수다하다.
알마티 시청은 박 알라 재수노브나를 항상 존대했다. 그는 오랜 기간 시청에서 <여성 및 가정>위원회 위원장으로 활약하면서 저소득 가정을 돕는 사업에 크게 기여하였다.
- 알라 재수노브나, 카자흐스탄고려인협회의 사업에 적극적으로 참가하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 예, 28년 동안 카자흐스탄고려인협회 감사위원회 회장으로 사업했습니다.
- 그렇게 오래동안 협회의 생활에 몸담고 있으면서 고려인들에 대해 느낀 점이 무엇입니까?
- 우선 우리 동포들에 대한 긍지감을 느꼈습니다. 단결심이 강하고요. 모든 분야에서 모범을 보이는 유명한 고려인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한마디로 말해서 1977년에 카자흐스탄에로의 고려인 강제이주 60주년에 즈음한 기념 행사에서 나자르바예브 대통령이 말했듯이 <…많은 민족들과 달리 고려인들은 역사의 먼지로 변하지 않고 자기의 문화, 전통과 풍습을 보존하고 풍부화시키면서 다민족 카자흐스탄의 당당한 일원으로 되었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습니다.
오랜 기간 고려인협회 활동에 참여하면서 박 알라 재수노브나의 곁에 있었던 협회 감사위원회 위원 김 울리야나 니꼴라예브나의 의견을 들어본다.
- 우리는 협회 감사위원회의 사업을 맡아 일하면서 특히 전원회의를 앞두고 출장도 다니면서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습니다. 그의 높은 직업적 면에 대해서는 말할 여지도 없습니다. 통계국 국장의 책임 있는 자리에서 30여 년 동안 빈틈없이 일한다는 것은 그의 직업적 능력, 그에 대한 정부의 깊은 신임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그의 인간적 품성에 대해 말한다면 높은 직위에서 일함에도 불구하고 아주 겸손하며 동점심이 많고 우선 주위 사람들에 대해 배려하는 분입니다.
남편을 먼저 보낸 박 알라 재수노브나의 딸과 사위, 손주 셋의 배려속에서 편안한 노년을 보내고 있다. 갈리나 역시 어머니가 졸업했던 인민경제 대학을 졸업했다. 며칠 전에 체코의 카를로비 바리에서 반가운 전화가 걸려왔다. 현재 그 곳에 가 있는 갈리나는 딸 빅토리야가 그 곳 대학에 입학했다고 어머니에게 전했다. 물론 할머니의 기쁨은 끝이 없었다.
- 알라 재수노브나, 한가한 시간을 어떻게 보냅니까?
- 이전에는 친구들과 함께 여행을 다니기를 좋아했거든요. 유럽 나라들을 거의 다 돌아봤어요…지금은 나라에서 주는 무료요양권을 가지고 일년에 한번은 꼭 치료도 받고 휴식도 합니다.
남경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