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고려극장과 위구르극장이 한 건물에 있던 시절. 운명의 장난처럼 한 위구르 청년은 극장 한쪽 문을 통과하지 못했고, 결국 옆에 있던 극장 문을 두드렸다. 연극가족 출신의 알리세르 마흐피로프는 그렇게 고려극장에 발을 들인 후 거의 30년 동안 그 무대에 서 왔다. 그의 첫 무대는 손 라브렌티와 리 스타니슬라프의 희곡 『추억』을 바탕으로 한 연극이었다. 그리고 바로 지난 주금요일, 고려극장 무대에서는 그 작품을 새롭게 재구성한 연극 『집으로 가는길』이 다시 오른다. 알리세르 마흐피로프는 또다시 그 무대에 선다.
— 알리세르 씨, 고려극장에서의 첫 배역은 무엇이었나요?
— 1997년이었습니다. 그때는 취업이 쉽지 않았어요. 처음엔 위구르극장에 가보았는데 공사 중이더라고요. 아는 분이 고려극장을 추천했는데, 급여도 약간 더 준다고 하더군요(웃음). 저는 막 군 제대를 마치고 무대 설치 직원으로 들어갔습니다. 마침 『추억』이라는 연극을 준비 중이었는데 배우 한 명이 부족하다고 해서 운전사 역을 맡게 되었죠.
— 줄곧 고려극장에서만 활동하신 건가요?
— 1999년에 연극학교에 입학해 아르바이트도 했습니다. 졸업 후에는 우리 반이 악타우에 새 극장을 세우러 갔지만, 저는 고려극장에 남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지금까지 머물게 되었죠.
— 젊은 시절의 극장은 어땠나요?
— 저는 연극계의 거장들을 직접 뵐 수 있었어요. 마야 산초노브나, 림 로자 블라디미로브나, 문 알렉산드르 하리토노비치, 그리고 당시 고령이었던 최 국인 선생님도 계셨습니다. 모두 극장의 2세대 분들이셨죠. 우리는 자체 건물이 없어서 주로 알마티 교육원에서 연습했어요. 저는 제 역할이 어떤 내용인지 이해하려고 그곳에서 한국어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 한국어 대사 연기는 어렵지 않았나요?
— 처음엔 정말 힘들었어요. 말의 의미를 모르고 외우기만 하면 무대에서 바로 티가 나거든요. 그래서 언어 공부에 시간을 들였죠. 연극학교 졸업 후 외국 언어학과에 들어가 2년간 한국어를 배웠습니다. 결혼 후 학업은 중단했지만, 그 경험이 큰 도움이 되었어요.
— 어떤 역할을 선호하시나요?
— 역할이 어떤 것이든 즐기며 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스타니슬라브스키가 말했듯, 재능이 있다고 해도 노력 없이는 안 돼요. 개인적으로는 악역, 특히 ‘푸른 역할’이라 불리는 캐릭터들이 좋아요. 『흥부와 놀부』의 놀부나, 홍범도 장군 이야기에 나오는 일본군 야마다 같은 역할이죠.
— 무대에서 대사를 까먹으면 어떻게 하시나요?
— 무대는 리얼리티 쇼와 같아서 한번 시작되면 멈출 수 없죠. 실수도 하게 마련입니다. 중요한 건 전체 흐름과 상황을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는 거예요. 예전에 하바롭스크에서 『춘향전』 공연 중 그런 일이 있었어요. 순간 멍해졌고, 한국어가 머리에서 날아갔죠. 그때 동료 배우들이 분위기를 살려줘서 무사히 넘겼어요. 무대에서는 서로를 느끼는 감각이 정말 중요해요.
— 지금 준비 중인 『집으로 가는길』은 예전과 어떻게 달라졌나요?
— 극의 내용은 거의 그대로예요. 물론 연출이 바뀌었고 해석도 약간 달라졌죠. 그래도 본질은 같아요. 이 작품은 신분제 문제를 다루고 있어요. 김 씨 집안은 양반이었고, 박 씨 집안은 과거 김 씨 집안의 노비였죠. 지금도 한국에선 이런 계층 문제가 남아 있다고 생각해요.
— 이번에는 어떤 역할을 맡으셨나요?
— 저는 이 작품에서 여러 역할을 맡아봤어요. 처음엔 운전기사, 그다음엔 비밀경찰, 그리고 카자흐인 오람바이 역이었죠. 이번에는 김 씨 집안 출신의 지식인 ‘길만’의 역을 맡았습니다. 갈등 속에서도 공정함을 지키려는 긍정적인 인물이에요.
— 가족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위구르극장 쪽으로 가고 싶진 않으셨는지요?
— 처음엔 가족들도 그냥 잠깐 해보는 줄 알았을 거예요. 그런데 1998년 한국에 처음 다녀오고 나서 모든 게 바뀌었죠. 21살 때였는데, 해외는 처음이었고 한국은 정말 다른 세계였어요. 문화적·경제적으로 충격이 컸어요.
그래서인지 다들 제 아내도 고려인일 거라 생각했지만, 저는 위구르 여성과 결혼했고, 제 동생은 고려인 여성과 결혼했어요. 동생도 오랫동안 고려극장에서 일했죠.
제 아이들도 가끔 공연을 보러 오는데, 늘 물어요. “왜 고려사람들이 카자흐스탄에 와 있게 된 거예요?” 그래서 저는 말해요. “우리가 그들을 맞이했고, 그들도 우리를 맞이했단다.” 『집으로 가는길』에는 이런 대사가 있어요. “이제 우리 아이들과 손자들의 고향은 이곳이다.”
— 집에서도 한식 드시나요?
— 물론이죠. 여동생은 라그만 (위구르 전통 음식)을 좋아해서 저를 ‘배신자’라고 부르지만(웃음), 저는 한식이 더 익숙해요. 한국에 갈 때마다 음식 이름을 적었는데, 나중엔 너무 많아서 포기했죠. 그래도 한식은 다 좋습니다.
알리세르 마흐피로프는 진정한 연극인이다. 무대 위에서 그를 지켜보며 <고려일보>기자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그의 이미지를 그려왔지만, 실제로 마주한 그는 놀라우리만치 겸손한 사람이었다. 무대에서는 악역부터 따뜻한 인물까지 모두 소화하며, 조용히 에너지를 응축하고 있다가 무대 위에서 완전히 변신하는 진정한 배우였다. 그가 바로 고려극장의 얼굴이다.
송 디아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