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8년5월15일, 크즐오르다에서 우리 신문이 <레닌 기치> 라는 이름으로 부활했다. 1937년 고려인 강제이주로 발행이 중단됐던 연해주의 《선봉》이 카자흐스탄 공산당 중앙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레닌기치>로 이름을 바꾸고 카자흐스탄 땅에서 발행을 재개했다.
이날 신문에는 '결산∙선거회의는 숨어 있던 불족점들을 폭로하였다'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기사 끝에는 황동훈이라는 이름이 적혀 있다.
오늘날 대부분의 독자에게는 낯선 이름일 것이다. 그러나 황동훈은 강제이주 이후 고려인 신문이 다시 발행될 수 있도록 힘쓴 사람 중 한 명이었다.
당시 신문사 원로들의 증언에 따르면 1937년 강제이주를 앞두고 최호림 주필을 비롯한 <선봉> 편집진이 NKVD(소련 내무인민위원부)에 체포됐다. 당시 <선봉>에서 농업부를 맡고 있던 황동훈은 체포를 피한 편집진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그는 카자흐스탄으로 이주한 뒤 신문 발행을 재개하는 데 힘썼다. 그러나 1938년5월15일 <레닌기치>의 첫 호가 발행된 지 불과 43일 만에 그 역시 체포됐다.
수십 년의 세월이 흘렀다. 신문의 이름이 바뀌고 기자들도 여러 세대를 거쳤다. 오래된 신문 지면에는 잘 알려진 사람부터 거의 잊힌 사람까지 수많은 이름이 남아 있다. 황동훈도 그중 한 사람이다.
1938년5월15일, 그가 발행을 위해 그토록 애썼던 신문의 첫 호를 손에 들었을 때 무슨 생각을 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우리는 그로부터 43일 뒤 그가 체포됐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의 이름은 신문 지면에 남았다. 그리고 거의 90년이 지난 오늘, 우리는 그 이름을 다시 읽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