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절 맞아 열린 ‘한국 문화의 날’…내년 고려인 정착 90주년 의미도 되새겨
지난 8월 15일 알마티에서 전통적인 ‘한국 문화의 날’ 축제가 열렸다. 올해 행사는 광복 81주년을 기념하는 동시에 2027년 카자흐스탄 고려인 정주 90주년을 앞두고 그 의미를 되새기는 자리로 마련됐다. 로즈바키예바 거리에 위치한 ‘메가 센터’ 야외공연장에서 열린 행사에는 약 1,500명의 관람객이 찾석했다.알마티 고려민족중앙회가 주최한 이번 축제에는 고려인 동포를 비롯해 알마티 시민, 한국에서 온 방문객, 외교 관계자와 사회단체 인사 등이 참석했다. 무대에는 약 30개 예술단체가 올라 한국의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는 다채로운 공연을 선보였다.
올해 축제는 ‘뿌리에서 미래로’라는 콘셉트로 꾸며졌다. 공연뿐 아니라 무대 영상에도 이 같은 흐름을 담았다. 화면 속 고대의 이미지와 전통 북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점차 디지털 기술과 스마트 기기로 전환되며 시대의 변화를 보여줬다. 시대와 표현 방식은 달라져도 문화는 세대를 넘어 계승되며 미래로 나아간다는 의미를 담았다.
개막식에서 신 안드레이 알마티 고려민족중앙회장은 역사적 기억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고려인들이 민족문화와 정체성을 지켜나갈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준 카자흐스탄에 감사의 뜻을 전했다. 신 회장은 “우리 축제는 과거에 대한 존중뿐만 아니라 미래를 향한 확신을 상징한다”며 “그 미래에서 문화는 모든 세대를 하나로 잇는 가장 중요한 연결고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메시지는 축제 프로그램 곳곳에서도 드러났다. 한국 전통춤과 음악에 현대적인 공연과 K-pop 무대가 어우러졌고, 관객석은 고려인 사회의 원로 세대부터 젊은 세대까지 다양한 연령층으로 채워졌다.
전통의 리듬에서 현대음악까지, 축제 무대는 시대를 넘나들며 한국문화의 다양한 모습을 펼쳐 보였다. 화려한 무대 뒤에는 수십 명의 참가자와 관계자들의 숨은 노력이 있었고, 준비 과정에서는 예상치 못한 상황도 있었다.
손전등 켜고 이어간 마지막 리허설
축제를 하루 앞두고 최종 리허설이 한창이던 8월 14일, 중앙아시아 여러 지역을 덮친 대규모 정전 사태가 발생했다. 알마티와 알마티주를 비롯한 카자흐스탄 여러 지역은 물론 키르기스스탄, 우즈베키스탄에서도 전력 공급에 차질이 빚어졌다. 행사장인 ‘메가 센터’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러나 리허설은 중단되지 않았다. 갑자기 불이 꺼진 행사장에서 참가자들은 손전등을 켜고 배터리로 작동하는 휴대용 스피커를 이용해 무대 동선과 프로그램을 하나씩 맞춰나갔다. 쇼핑센터 내 시설 이용조차 쉽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다음 날 관객들에게 선보일 공연을 처음부터 끝까지 점검해야 했다.
설상가상으로 이날 저녁 알마티에는 천둥·번개를 동반한 강한 비와 바람까지 몰아쳤다.
하지만 다음 날 축제 무대에서는 전날의 이런 우여곡절을 짐작하기 어려울 만큼 모든 프로그램이 예정대로 펼쳐졌다.
이번 축제에서는 마리나 주마셰바가 처음으로 예술감독을 맡았다. 주마셰바는 ‘Dance Excellent’를 이끌고 있으며, 이 단체는 최근 ‘국민예술단체’ 칭호를 받았다.
한국에서 온 손님, 알마티의 예술인들
이번 축제의 특별 초청팀으로 한국에서 온 정선국립아리랑예술단이 무대에 올라 ‘뗏군’을 선보였다. ‘뗏군’은 일제강점기 정선에 실존했던 인물들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재창작한 작품이다.
카자흐스탄 국립아카데미 고려극장 배우들과 알마티 고려민족중앙회 소속 예술단체, 러시아 공훈예술가 마리나 채도 무대에 올라 축제를 풍성하게 했다.
젊은 세대가 준비한 현대적인 공연도 이어졌다. 축제의 마지막은 대규모 K-pop 랜덤댄스였다. 참가자와 관객들이 한데 어우러져 춤을 추며 축제의 열기를 끝까지 이어갔다.
전통의 음악과 춤에서 오늘날 젊은 세대가 즐기는 대중문화까지, 이날 무대는 축제의 주제인 ‘뿌리에서 미래로’를 자연스럽게 보여줬다.
두 나라를 잇는 역사
이번 축제는 8월 15일 광복절에 열렸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었다.
하태욱 주알마티 대한민국 총영사는 SteppeNews.kz와의 인터뷰에서 광복절과 카자흐스탄이 지닌 역사적 인연에 주목했다. 한국 독립운동가들의 발자취가 카자흐스탄을 비롯한 중앙아시아에도 남아 있다는 것이다.
하 총영사는 “광복절은 카자흐스탄과도 특별한 인연이 있다”며 “한국의 독립운동가들이 카자흐스탄에 왔고, 이곳에는 지금도 그들의 활동과 유산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러한 공동의 역사적 기억을 보존하고 다음 세대에 전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역사적 유산과 문화 교류가 양국 관계를 더욱 발전시키는 든든한 기반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역사적 인연 속에서 하 총영사는 카자흐스탄 고려인들의 역할에도 주목했다. 고려인들은 지난 수십 년 동안 민족문화를 지켜오는 동시에 카자흐스탄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왔다. 하 총영사는 카자흐스탄에 사는 동포들이 양국을 잇는 중요한 가교가 될 수 있다며 “앞으로도 굳건한 한·카자흐스탄 관계를 만들고 함께 미래로 나아가는 중요한 통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의미는 카자흐스탄 고려인 정주 90주년을 맞는 2027년을 앞두고 더욱 특별하게 다가온다. 지난 세월 고려인들은 가정에서, '고려일보' 지면에서, 고려극장 무대에서, 민족문화센터와 예술단체에서 문화를 지켜왔다. 오늘날 그 문화는 새로운 모습으로 발전하며 카자흐스탄과 한국을 잇는 문화교류의 한 축이 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축제의 주제 ‘뿌리에서 미래로’는 단순한 무대 콘셉트에 그치지 않았다. 누군가에게 한국문화는 가족의 역사와 선조에 대한 기억에서 시작되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K-pop을 비롯한 현대문화가 그 첫 만남이 된다. 세대와 표현 방식은 달라도 문화는 그렇게 이어지고, 새로운 세대와 함께 미래로 나아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