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날은 역사 속에서 큰 변화를 겪은 기념일 중 하나이다. 여성의 권리를 위한 투쟁의 날에서 ‘봄, 아름다움, 여성성의 축제’로 변모했으며, 최근 몇 년 동안 다시 본래 의미를 되찾고 있다.
3월 8일의 역사
3월 8일의 역사는 190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때 뉴욕에서 여성들이 시위를 벌이며 남성과 동등한 권리와 노동환경 개선을 요구했다. 그들은 노동시간 단축, 임금 인상, 아동 노동 금지, 그리고 여성 참정권 보장을 요구했다.
여성의 날을 국제 기념일로 만들어야 한다는 제안은 클라라 제트킨(Clara Zetkin)이 1910년 8월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린 제2차 세계 사회주의 여성 회의에서 했다. 그 자리에 17개국에서 온 100명의 여성이 있었고 만장일치로 그녀의 제안에 찬성했다. 1911년 3월 19일 독일, 오스트리아 등 일부 국가에서 세계 여성의 날 행사가 처음으로 개최되었다.
1912년 3월 8일, 한 시위에서는 여성들이 “빵과 장미(Bread and Roses)”라는 노래를 불렀다. 빵은 생계를 위한 필수 요소, 장미꽃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품위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나중에 이 노래는 세계 여성의 날을 대표하는 상징적인 노래가 되었다.
1917년 3월 8일 페트로그라드(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방직 공장 여성 노동자들이 “빵과 평화!”를 외치며 파업 시위를 시작했다. 이 사건은 2월 혁명의 촉매제가 되었고, 이후 러시아 여성들은 영국보다 1년, 미국보다 3년 먼저 참정권을 획득했다. 그러나 이후 여성 문제는 국가가 독점하는 정치적 도구가 되었다.
소련 시대의 3월 8일
소련에서 국제 여성의 날은 국가 정책의 상징이 되었으며, 본래의 의미는 점차 희미해졌다. 대신, 여성은 어머니, 노동자, 그리고 공산주의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는 존재로 찬양받았기 시작했다. 이는 여성들을 산업화와 현대화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시키려는 국가 전략의 일부였다.
이 기념일은 여성들의 사회 참여도를 늘어나는 캠페인으로 변질되었다. 1930년대 신문에는 노동 현장에서 뛰어난 성과를 낸 ‘노동 영웅’들이 등장했지만, 이는 여성운동가들이 아니라 기업에 기여한 여성 노동자들이었다. 소련 선전은 여성의 날을 소련 사회의 진보성의 증거로 강조했다. 여성의 역할은 국가를 위한 노동에 국한되었다. 소련에서 국제 여성의 날은 국가 정책의 상징이 되었다.
소련 붕괴 이후에도 카자흐스탄을 포함한 여러 국가들은 여성의 날은 국가 공휴일로 유지했다. 이 날, 남성들은 여성들에게 꽃을 선물하며 언론은 이를 ‘봄과 아름다움의 날’로 자리 잡게 만들었다.
시장 경제로 전환되면서, 여성의 날은 본격적으로 상업화되기 시작했다. 기업들은 선물 문화를 적극 장려하며 여성의 전통적인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을 더욱 강화했다.
오늘날의 3월 8일
최근 몇 년 동안 여성의 날이 본래의 뜻을 되찾고 있다. 2021년, 알마티에서 국제 여성의 날을 기념하는 행진이 처음으로 공식적으로 허가되었다. 이전까지 카자흐스탄에서 이런 행사가 개최된 적은 없으며 이는 카자흐스탄의 사회의 변화를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성폭력 및 성차별 반대를 위한 다양한 캠페인도 진행되고 있다. 그중 하나가 UN 주도의 ‘16일간의 젠더 기반 폭력 반대 운동‘ (16 Days of Activism Against Gender-Based Violence)이다. 이 캠페인은 매년 11월 25일부터 12월 10일까지 진행되며, 워크샵, 마스터 클래스, 홍보 캠페인 등을 통해 사회의 관심을 끌고 있다.
정치적 저항에서 가족 기념일, 여성성을 찬양하는 날에서 다시 여성의 권리를 논하는 날로—이 기념일은 사회의 변화를 반영하고 있다. 오늘날 3월 8일은 다시 차별과 가정 폭력 문제를 이야기하는 날이 되고 있다. 3월 8일은 ‘봄의 축제’가 아니라, 여성들이 권리를 위해 싸워온 길을 되새기고 앞으로도 극복해야 할 문제가 많다는 것을 상기시키는 날이다.
최야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