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일이든 일정한 시점에 중간 결산을 내리고 지나온 길을 돌아보며 의미를 되새기는 과정이 필요하다. <고려인 도서관> 프로젝트도 마찬가지다. 창립 5주년은 목표와 사명을 생각할 때는 짧은 시간일 수 있으나, 성과를 평가하기에는 충분한 기간이다. 이 시간을 통해 우리가 걸어온 길이 올바른지 그리고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를 가늠할 수 있다.
며칠 전 저명한 한국학 학자 안드레이 란코프 교수는 전 세계 고려인 수가 약 70~80만 명에 이른다고 전했다 (그는 사할린 고려인은 별도로 분류했다).
강 게오르기 병율오비치,
고려인 도서관 공동창립자
창립배경
고려인 도서관은 ‘러시아어를 사용하는 고려인들에게 새로운 미디어 플랫폼을 만들어 보자’는 발상에서 출발했다. 여기에는 고려인에 관한 방대한 자료와 한국 역사에 대한 지식, 사람들의 삶, 문화, 언어, 전통과 관습, 조국의 자유와 독립을 위해 싸운 인물들, 학문·예술·체육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낸 유명 고려인들의 업적과 삶의 이야기 등이 담겨 있다. 이는 곧 우리 민족의 특징을 보여주고, 근면함과 애국심, 고유성을 증명하는 귀중한 기록이기도 하다.
당시에도 이미 잘 알려진 웹사이트들이 존재했다. 한 블라디슬라프가 운영하는 <고려사람 (Корё Сарам)>, 신 드미트리의 <Arirang.ru>, 그리고 계 니콜라이의 <koresaram.kz>가 그것이다. 이들 사이트는 고려인에 관한 정보를 전하고 이 주제에 관심 있는 이들을 계몽하는 데 중요한 기여를 해왔다.
그러나 우리는 보다 방대한 자료를 한곳에 모으고 체계화한 ‘고려인 지식 도서관’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탄생한 웹사이트 <고려인 도서관 (БКС)>은 이용자들이 익숙한 인터넷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SSL 암호화 등 보안 조치도 갖춘 편리한 서비스로 자리 잡았다.
또한 도서관 자료의 지속적인 확충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 다만 이 과정에서 몇 가지 어려움이 있다는 점은 아래에서 따로 언급하고자 한다.
고려인 도서관이란 무엇인가?
안타깝게도 포스트소비에트 지역 전체를 통틀어 고려인 관련 자료를 본격적으로 소장한 도서관은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 우즈베키스탄과 카자흐스탄에서 대규모 도서관 건립 계획이 논의되고 있지만, 실제로 문을 열기까지는 시간이 더 필요하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도서관 자료를 어떻게 채워나갈 것인가이다. 소련 시대에 발간된 고려인 관련 서적들은 이미 희귀본이 되었고, 애초에 그 수량도 많지 않았다. 소련 해체 이후에는 개별 연구자나 민간 출판사에서 소규모로 책을 내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는데, 이마저도 구하기가 쉽지 않다. 체계적인 수집 기관이 없다 보니 책들이 흩어져 버렸고 그나마 기대할 수 있는 것은 고려인 연구자들의 개인 서재나 개인 수집가들의 장서뿐이다. 그러나 그 책들조차 대부분 단 한두 권씩에 불과하다.
한 세기 넘는 시간 동안 고려인 사회는 막대한 역사와 문화 유산을 쌓아왔다. 그것은 우리에게 힘과 영감을 주고, 정체성과 미래에 대한 믿음을 굳건히 하는 소중한 자산이다. 하지만 지금 그 유산은 국가, 개인, 가정의 아카이브 또는 어떤 사람의 기억 속에 흩어져 있을 뿐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고 있다. 언제든 사라져버릴 위험에 놓여 있는 것이다.
이제는 그 모든 것을 모으고 보존하며 새롭게 만들어야 할 때다.
웹사이트 <library-koresaram.com> ‘고려인 도서관’은 전 세계 모든 러시아어 사용자들이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도록 전자 형태로 운영되고 있으며, 고려인 주제에 관심 있는 누구에게나 유용한 자료원이 되고 있다. 연구자나 애호가뿐 아니라 학문적∙전문적 목적을 가진 사람들, 그리고 자신의 작품을 독자들에게 소개하고 재능을 나누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도 열린 공간이다.
<고려인 도서관>은 이미 방대한 지식 컬렉션을 갖추고 있다. 이곳에는 책, 신문, 잡지의 전자 사본과 오디오∙비디오 콘텐츠, 논문 및 다양한 자료 모음이 주제별∙분야별∙소그룹별로 체계적으로 분류되어 있으며, 빠른 검색을 돕는 검색 시스템이 마련돼 있다. 우리는 소장하고 있던 책과 소책자를 직접 스캔∙디지털화하여 사이트에 올렸다.
현재 도서관에는 총 25개 카테고리가 마련돼 있다. 역사, 문화, 한국학, 과학 및 기술, 비즈니스와 노동, 고려인 단체, 명예의 갤러리 등이다. 예를 들어 ‘문화’ 카테고리에는 ‘문학’, ‘고려극장’, ‘성악 및 무용’, ‘민속과 요리’ 등이 포함되며, ‘문학’ 항목 안에는 산문∙희곡, 시, 회고록, 작가별 페이지 등 다양한 장르가 세분화되어 있다. 이는 마치 전통적인 도서관의 카드분류 체계를 떠올리게 한다.
이 웹사이트는 해외 파트너들과 잠재적 이용자들의 관심도 끌고 있다. 미국의 한 대학 도서관에서 도서를 구입하고 싶다는 요청이 들어온 적이 있고, 러시아에서 한국 관련 자료 출판 협력 요청, 러시아∙우즈베키스탄∙카자흐스탄 도시로부터 도서 구입 문의도 있었다. 현재 한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의 파트너들과 새로운 공동 프로젝트를 모색하면서 협력의 폭이 점차 확대되고 있다.
고려인 도서관의 목표와 과제
고려인 도서관 프로젝트의 가장 큰 목적은 동포들에게 고려인 주제의 책을 접할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독서 문화를 확산하는 데 있다. 이를 위해 도서관 자료에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고, 웹사이트를 질 높은 콘텐츠로 채우며 독자들의 관심을 지속적으로 이끌어내는 것이 핵심 과제다. 이를 지원하기 위해 같은 이름의 페이스북 그룹도 개설됐다.
도서관의 자료들은 누구나 자유롭게 읽고 다운로드할 수 있도록 공개되어 있다. 페이스북 그룹은 빠르게 인기를 얻어 현재 구독자가 1,400명을 넘어섰다. 또한 여러 저병한 작가, 시인, 화가, 예술가들과의 교류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각 인물별로 도서관 내 전용 페이지가 개설돼 그들의 전기, 작품 목록, 관련 기사 등이 소개되고 있다.
그러나 운영 과정에서 저작권과 관련된 어려움도 있었다. 최신 문학 작품은 저작권 문제로 직접 게재할 수 없어, 책을 구입해 서평을 작성하는 방식으로 대신해야 했다. 한 번은 한 역사적 인물의 사진을 저작권 계승자 동의 없이 올린 사실이 지적되었지만, 사과와 함께 출처를 명시한 후 사이트 게재 허락을 받을 수 있었다. 이처럼 저작권 제약 때문에 일부 저자들과의 협력에는 한계가 따르고 있다.
고려인 도서관은 방대한 과제를 안고 있는 만큼, 한정된 자원 속에서 우선순위를 정해 집중적으로 추진해 왔다. 그중 하나가 지금까지 다루어지지 않았던 주제와 시의성 있는 콘텐츠 발굴이다.
도서관은 첫해에 이미 고(故) 서 (셰가이) 안드레이의 글을 모은 전자집을 출간했다. 그는 페이스북에서 널리 알려진 블로거로, 2020년 말 한창 활동하던 시기에 세상을 떠났다. 이어 출간된 책은 김하이 니키포르가 1984년에 집필한 『불을 전한 세 세대』로, 원고는 저자의 조카 채 루드밀라와 그녀의 오빠 레프가 제공하여 작가의 오랜 꿈을 이루게 했다. 이후에도 『하락시』, 『아리랑 앙상블』 관련 서적을 비롯해 여러 책들이 도서관을 통해 세상에 나왔으며, 고려인 연구자 김 게르만이 집필한 『북한의 소비에트 고려인 3부작』, 『극동의 고려인 정착사』 등도 출판되었다. 현재도 몇 권의 신간이 준비 중이다.
도서 출판은 도서관이 장기적으로 추진해야 할 중요한 과제이자 반드시 필요한 방향이다. 앞으로는 ‘고려인 도서관 총서’를 발간해 ▲「위대한 고려인들의 삶」▲ 「고려인 문화」 ▲「고려인 위대한 선수」 등 다양한 시리즈를 포함시킬 계획이다. 이러한 주제와 목록은 『고려일보』 지면을 통해 대중과 함께 논의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작업은 광범위하게 추진되어야 하며, 집필에는 우리 문단의 대표적 작가와 언론인, 극작가들을 참여시킬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은 대규모 출판 사업은 우리 디아스포라의 지도부와 전체 고려인이 힘을 모아야 할 과제이며, 훗날 역사에 뚜렷한 발자취를 남길 수 있는 소중한 작업이다.
앞으로의 계획은?
세월은 참 빠르다. 어느새 5년이 흘렀다. 이제 전 세계가 한민족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우리의 과거와 현재를 연구하며 우리 민족의 영웅들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그들을 감탄하고 있다.
그동안의 성과는 분명하다. 고려인 도서관은 꼭 필요한 존재이며, 그 의미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곳은 고려인들의 '힘의 원천'이다. 언제든 마음의 평안을 찾을 수 있고 영감을 얻을 수 있으며, 더 나은 삶을 살아가고 싸워 나갈 용기를 얻을 수 있는 자료들을 찾아볼 수 있다.
이 프로젝트는 본질적으로 큰 자원(우리의 경험)을 필요로 하지 않지만 새로운 자료가 축적될수록 시간이 지날수록 그 가치는 점점 더 커진다.
그러나 한 가지 문제를 예상할 수 있다. 바로 계승성이다. 불행히도 자발적인 공익 프로젝트는 주도했던 사람들이 떠나면 이어지기 힘든 경우가 많다… 하지만 고려인 도서관은 반드시 이어져야 한다.
아마도 더 공식적이고 제도적인 기반 위에서 운영되는, '미래형 도서관'을 만드는 것이 바람직할지도 모른다. 국립도서관 수준의 목표와 기능을 갖춘 전문적 조직 말이다.
꼭 지금의 '고려인 도서관'이 그 모델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이룬 성과와 축적된 경험은 분명히 활용할 만한 가치가 있다.
어떤 경우든 우리는 낙관적으로 미래를 바라보며, 이 일을 계속해 나갈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