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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 분위기상 ‘힘들다’ 표현 못해… 결국 극단적 선택에 이르는 카자흐스탄의 남성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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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 분위기상 ‘힘들다’ 표현 못해… 결국 극단적 선택에 이르는 카자흐스탄의 남성들
      사회 분위기상 ‘힘들다’ 표현 못해…  결국 극단적 선택에 이르는 카자흐스탄의 남성들
      19.02.2026
      그간 본지에서도 여러 차례 다룬 바 있듯 카자흐스탄은 오늘날 세계에서 자살률이 가장 높은 국가들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가 가장 최근 발표한 국가별 자살률 현황 통계(2021년)에 따르면 카자흐스탄의 자살사망자 수는 인구 10만 명당 14.6명으로 세계 17위(한국은 10만 명당 20.6명으로 12위, 러시아는 21.4명으로 11위)를 기록하고 있다.

      카자흐스탄의 자살사망자 성비를 살펴보면 남성 자살자의 수(10만 명당 24.4명)가 여성(5.3명)보다 압도적으로 많은데, 이는 무려 5배 가량 차이가 나는 수치다(한국의 경우 남성 28.2, 여성 13.6). 지난해 말 카자흐스탄 정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25년 1월부터 8월 사이의 기간 동안 집계된 국내 2천 134명의 자살사망자와 2천 127명의 자살시도자 전체를 통틀어 과반이 30대 이상의 남성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물론 남성 자살자의 수가 여성 대비 더 많은 것은 전세계 모든 국가들에서 공통적으로 보여지는 현상이기는 하나, 카자흐스탄을 포함한 구소련권/동유럽 국가들에서는 그 차이가 5~8배 수준에까지 이르고 있는 실정이다.

      서구권은 물론, 한국을 비롯한 현대의 동아시아 국가들과 비교해서도 ‘남성은 강인해야 한다’, ‘남자는 결코 약점을 드러내서는 안된다’는 식의 사고방식이 아직 강하게 자리 잡혀 있는 까닭일까. 오늘날 이처럼 카자흐스탄의 남성들을 극단적 선택으로 내모는 요인들은 무엇인지, 그들이 사회적으로 어떠한 중압감을 안고 살아가고 있는지에 대해 현지 언론에서 심층적으로 접근하여 다룬 내용을 소개한다. 현대의 카자흐스탄 사회에서는 자국 남성들의 자살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또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는 무엇을 제시하고 있는지 살펴본다.

      *아래 내용은 카자흐스탄 매체 ‘Tengrinews’에서 발췌하여 우리말로 재구성한 것이다.

      좀처럼 힘든 심경을 토로하기 힘든 문화 속에서 살아가는 남성들의 ‘우울장애’

      자살예방 상담전문가로 활동하는 예카테리나 미로노바(Екатерина Миронова)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는 카자흐스탄의 남성들에게서 정신건강과 관련한 문제들이 대개 표면적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 까닭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우리나라 남자들의 경우 정신건강상의 문제들은 대체적으로 ‘말’이 아닌 ‘행동’을 통해 드러납니다. 그들은 여성들과 비교해 평소 ‘힘들다’, ‘아프다’ 등의 표현을 하는 빈도가 상대적으로 적습니다. 어려서부터 연약함을 드러내지 않고 고통을 참는 것에 길들여졌기 때문이죠.”

      미로노바 전문의는 남성들의 우울장애는 흔히 ‘눈물’ 대신 짜증, 분노 표출, 냉담한 태도 등으로 표출되거나 소통을 피하는 대신 과도한 업무, 스마트폰 사용, 음주, 운동 등에 몰두하는 형태로 드러나는 경우가 흔하다고 설명하면서 이러한 내면 상태에 처한 남자들은 날 서있고 참을성 없는 모습, 모든 것을 과도하게 통제하고 지나치게 비판적인 행동을 보이기도 하는데, 이는 실제로 주변인들에게 화가 나 있는 것이 아니라 심리적으로 자신만의 ‘영역’을 잃을 것 같은 두려움에 직면해 있기 때문이라고 부연한다.

      그러면서 그녀는 “카자흐스탄에서 자살예방상담센터 및 관련 전문가들을 찾는 사람들은 왜 대부분 여성인가”라는 질문에 다음과 같이 답변한다.

      “대체적으로 남성들은 우울장애를 겪는 자신에 대해 ‘부끄럽고 수치스럽다’는 감정을 가지기 때문이죠. 많은 남성들은 정신적 고통, 우울장애 등과 관련된 문제들을 오롯이 스스로 극복하고 해결해야 한다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 ‘외부에 도움을 요청한다는 것은 곧 스스로 나약하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꼴’이라고 인식하는 것이지요. 이 때문에 많은 남자들이 끝내는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가 무너지며 건강이 악화되고 사회·직장생활 상에서도 문제가 생길 때까지 우울감을 억누르며 참습니다. 이처럼 남성들은 고충을 토로하는 것은 스스로의 ‘무능함’을 드러내는 것과 다름 없다고 여기면서 제 3자에게 도움을 청하는 대신 술, 마약류 및 기타 향정신성약물에 의존하는 방식으로 현실 도피를 시도하는 경우가 많고, 상황은 계속 악화되어 종국에는 극단적인 선택으로까지 이어지는 것이지요.”

      한편 미로노바 전문의는 자살과 관련하여 사회적으로 만연해 있는 ‘위험한’ 인식에 대해서도 지적한다.

      “사회적으로 ‘평소 스스로 자살을 예고하는 사람들은 실제로 이를 실행에 옮기지 못한다’는 식의 인식이 자리 잡혀 있는데, 이 같은 누군가의 자살 암시 행위를 ‘진실성’ 혹은 ‘공갈성’ 등의 잣대로 구분 짓는 것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그러는 사이에도 숱한 생명들이 결국 유명을 달리하고 있으니까요. 그것이 어떤 형태로 표출되건 간에, 누군가의 입에서 나오는 자살에 관한 언급 혹은 암시는 그 자체로 ‘도움’을 청하는 외침이며, 결코 이를 묵인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미로노바 전문의는 극단적인 선택을 놓고 갈등하는 남성들에게서 흔히 나타나는 몇가지 ‘위험 신호들’에 대해 아래와 같이 소개하면서 “남성들의 자살 충동은 제 3자가 육안으로 뚜렷하게 포착할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니며, 대개의 경우 특정 어휘를 사용한 언어적 표현과 감정 표출, 행동의 변화 등 다양한 요소들의 조합으로 나타난다”고 설명한다.

      • 자살을 고민하는 남성들은 ‘차라리 내가 존재하지 않는 편이 낫겠다’, ‘더이상 못하겠다’, ‘더는 견디기 힘들다’, ‘조만간 나에 대해 신경 쓸 필요가 없어질 것이다’, ‘다음번엔 나는 이 활동에서 빠지겠다’ 식의 표현과 같이 삶에 대한 의욕이 없음을 직·간접적으로 내비칠 수 있다. 이 같은 표현은 덤덤한 어조나 농담처럼 나올 수 있으므로 무심히 지나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 자살을 생각하는 남성들은 스스로의 ‘내면 동굴’ 안으로 들어가 외부 세계와의 소통을 피한다. 무언가를 결심한 듯 평소와는 다른 조용하면서도 결연한 행동으로 일관할 수 있으며, 평소 아끼던 물건을 주변에 나누어 주거나 신변을 정리하는 모습을 보일 수 있다. 불면증과 식욕 저하, 피로감, 집중력 저하, 결정 장애 등이 눈에 띄게 드러나기도 한다.
      • 수시로 심리적 위축과 불안감, 죄책감 등의 감정, 자존감 하락과 미래에 대한 의미 상실을 느낀다.

      그녀는 자살 가능성이 있는 남성들이 예외 없이 뚜렷한 징후를 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상기한 것과 같이 일련의 ‘위험 신호’들이 동시다발적으로 감지된다면, 그것은 당사자가 단순히 ‘기분이 나쁜’ 상태에 있는 것이 아니므로 그가 혼자 있도록 내버려 두지 말고 그 곁에서 수시로 상태를 살피고 챙길 필요가 있다고 설명한다.

      또다른 정신건강의학과 의사이자 남성 자살예방 상담전문가인 누릿진 압둘라예프(Нуритдин Абдуллаев) 또한 비슷한 의견을 보인다. 그는 미로노바 전문의와 마찬가지로 “남자들은 자살충동 문제와 관련해 너무 늦은 시기에 도움을 청한다”고 지적하면서 “우리나라의 남성들은 본인들이 겪는 문제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데, 결국 이것이 높은 남성 자살률의 주 원인으로 작용하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개인적으로 그동안 자살예방 관련 상담을 하면서 반복적인 상황을 마주해 왔습니다. 남자들이 도움을 받기 위해 찾아오는 시기를 보면, 그동안 이미 갖은 정신적 고통으로 인해 삶이 피폐해지고, 주변인들과의 관계가 망가졌으며 자살충동이 더이상 단순히 생각에서만 그치지 않고 실제 시도까지 하는 단계에 와 있는 경우가 빈번합니다. 이 문제는 현재 국가적인 차원에서 매우 심각한 상황입니다.”

      사실 남성보다 여성들 사이에서 더 빈번히 나타나는 자살 충동 및 시도… 그러나 실제 죽음에 이르는 경우는 남성이 압도적으로 높아

      여기서 짚고 넘어갈 점은 본 기사의 주제는 남성의 자살 문제이지만, 그와는 별개로 카자흐스탄의 여성들이 남성들에 비해 우울장애와 자살충동을 더 쉽게 극복한다는 것은 결코 아니라는 사실이다. 오히려 오늘날 카자흐스탄을 포함한 전세계적인 자살시도자 실태 통계를 살펴보면 남성보다 여성의 비율이 높은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즉, 자살시도자 수에서는 여성이 많으며 실제 죽음에 이르는 ‘자살사망자’의 경우 남성의 수가 압도적으로 많다는 것이다. 남성들은 자살을 결심하기 전까지 제 3자에게 상담이나 도움을 청하는 경우가 드물고, 극단적 선택 시 물리적으로 확실한 사망에 이르는 방법을 동원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압둘라예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남성들이 정신건강과 관련해 직면한 가장 큰 문제는 고민을 혼자서 끌어안는 것에서 비롯된다고 지적한다.
      남성들이 가지고 있는 ‘혼자 해결해야만 해’, ‘내 가족을 실망시킬 순 없어’, ‘약자로 보이고 싶지 않아’ 등과 같은 강박이 장기간에 걸쳐 위기감, 불면증, 짜증·분노, 알코올 의존증, 삶에 대한 의욕 상실 등을 누적시키고, 이 모든 것이 어느 순간 극단적 선택이라는 결말로 귀결된다는 것이다.
      결국 침묵은 ‘살인자’다. 숱한 남성들의 자살은 ‘주변인들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충동적 선택’이 아닌, ‘외로움이라는 길고 긴 여정의 결말’인 것이다. 이제 카자흐스탄 사회도 ‘남성의 침묵’을 미덕으로 여기던 풍조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 압둘라예프 전문의의 의견이다. 남자들에게도 이제 ‘정신 차려’라는 말 대신 ‘내가 곁에 있어’, ‘같이 도움 받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자’ 등의 말을 건네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처한 정신적 고통을 극복하기 위해 주변에 도움을 청하는 남자는 ‘비웃음의 대상’이 아니라 ‘존경 받아 마땅한 대상’이라는 것이다.

      “혹시 주변인 중에 스스로 소외되고 뚜렷한 이유 없이 분노를 표출한다거나 과도하게 술에 기대며 만사에 의욕이 없음을 내비치는 남성이 있다면 그에게 다가가 조용히, 그러나 직접적으로 질문을 던져보세요. ‘괜찮아?’하고 말이죠. 대개의 경우 이것 하나만으로도 우울감을 겪는 남성으로 하여금 자신이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느끼게 할 수 있습니다.”

      남성들의 정신건강을 증진시킬 수 있는 방법은?

      미로노바 전문의는 “평소 정신건강을 챙기려면 단순히 상담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고 말한다. “소위 남성의 ‘멘탈 강화’는 여러 난관들을 무쇠 같은 단단함으로 견뎌냄으로써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도 ‘살아있는 사람’으로 존재할 수 있기를 허용해 주는 것에서 비롯된다”고 강조하는 그녀는 특히 “무엇보다 감정을 억압하지 않고, 그때 그때 생기는 감정들을 세밀히 느끼고 그것들의 정체 -피로감, 분노, 두려움, 혼란스러움, 무력감 등- 를 구별해내는 법을 배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힘주어 말한다.

      “감정을 억누르지 않는다면 우선 내면·정신이 파괴적인 영향에 노출되지 않고, 외부적으로도 공격적 언행, 무기력 또는 각종 질병으로 이어지지도 않지요.”

      그녀의 설명에 따르면 남성들이 스스로의 정신건강을 굳건히 지키고 자살충동을 느낄 만큼의 큰 감정소모 단계에 이르는 것을 방지함에 있어 가장 효과적인 것은 평상시 ‘가장 기본적인 수칙’들을 지키는 것이다. 미로노바 전문의와 압둘라예프 전문의는 공통적으로 다음과 같은 지침을 제시한다.
      • 건강한 ‘적정선’ 지키기: 남성들은 업무 과중으로 인한 스트레스보다 그들의 노력과 기여가 인정받지 못하는 느낌에서 의욕상실과 우울감을 느낀다. 사회생활 시 스스로 감당할 필요가 없는 책임은 처음부터 떠맡지 않고 결단력 있게 거절하는 법을 체득할 필요가 있다.

      • 적정한 운동과 신체활동을 통해 일상에서 축적된 아드레날린, 노르에피네프린, 코르티솔 등의 스트레스 호르몬을 해소하기
      • 지나친 음주 삼가기. 남성들의 경우 특히 알코올 섭취량과 자살충동의 상관관계가 뚜렷하게 입증된 바 있으므로 주의가 필요하다.
      • 삶의 의미 재조명: 단순한 생존 목적의 ‘해야만 한다’ 식의 범주를 넘어 ‘나는 무엇을 위해 살고, 무엇을 위해 노력하는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기. 가정을 포함한 여러 공동체 내에서의 역할, 봉사활동 등 스스로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라는 것과 보람을 느낄 수 있는 활동 등이 도움이 될 수 있다.
      • 도움이 필요할 때에는 당당히 요청하기: ‘남자라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식의 낡은 가치관에서 벗어나 가까운 이들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을 스스로에게 허용하기. 도움을 구하는 것은 ‘나약함’이 아니라 스스로를 위하고 챙기는 용기다. 자살예방 상담전화부터 전문의 상담, 우울증·무기력 극복을 위한 남성들의 온·오프라인 모임 등을 활용하는 것도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 죄책감 없이 충분히 쉬기. 휴식은 오랜 과로 끝에 취하는 것이 아닌, 주기적으로 제때 시간을 내어 실천하는 행위가 되어야 한다. 만성 피로는 남자들에게 짜증과 분노, 소외감, 공허감을 느끼도록 하는 주범이다.

      그저 남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늘 강하고 침착하며 이성적이어야 하는 의무가 지워져서는 안된다. 연약함, 자기회의, 주변인들의 지지를 바라는 마음상태는 성별과 무관하게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요소이다.

      한편 압둘라예프 전문의는 단순하고 과묵한 남성들의 특성상 때로는 어린시절의 기억까지 층층이 파헤치고 분석하는 과정에 임해야 하는 상담과정 대신 같은 성별끼리 경험을 공유하는 선에서 부담감 없이 심리치료를 진행할 수 있는 남성전용 모임을 활용하는 것만으로도 우울장애 극복에 매우 큰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소개한다.

      “평소 저를 찾아오는 남성분들에게 늘 말합니다. ‘작은 한발짝에서부터 시작하라’고 말이죠. 우선 주변인들 중 한명에게 ‘내가 지금 힘들다’라고 말해보라는 겁니다. 또 술은 줄이고, 일주일에 세 번 정도만이라도 산책을 나가보라고요. 문득 ‘내가 존재하지 않는 편이 낫겠다’ 하는 생각이 들면, 이를 직접 말로써 의사나 친구, 또는 전화상담을 통해 내뱉어 보세요. ‘말’, 그리고 ‘대화’는 정신건강을 지키는데 있어 가장 효과적이며 확실한 첫걸음입니다.”

      다음 편에서는 현재 우울장애를 극복하고 자살 예방을 목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카자흐스탄 남성들의 자조모임에 대해 알아보도록 한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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