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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에 입양된 지 23년만에 ‘뿌리 찾아’ 고국땅 밟은 카자흐 청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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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에 입양된 지 23년만에  ‘뿌리 찾아’ 고국땅 밟은 카자흐 청년
      01.04.2025

      입양 이후 지난 2023년 처음으로 고국을 방문한 폴 사르다르 밥콕 씨
      (사진출처: 개인 SNS)



      “한국 생활 중 만난 뜻밖의 인연을 계기로 고국행 결심해”

      미국 국적을 가진 카자흐 청년 ‘폴 사르다르 밥콕(Paul Sardar Babcock, 이하 사르다르)’ 씨는 1999년 가을 카자흐스탄 타라즈 시의 한 산부인과에서 태어났다. 사르다르 씨의 친모는 출산 직후 신생아실에 누워있는 그를 뒤로 한 채 아무런 말도 없이 홀연히 자취를 감췄다. 태어나자마자 세상 속에 홀로 남겨진 그는 이후 11개월간 인근 고아원에 맡겨져 중추신경계 손상과 더불어 인두염, 기관지염 등을 진단 받을 정도로 건강이 위태로운 상태에서 하루 하루를 보냈다. 다행히 첫 돌을 앞둔 무렵, 입양할 아이들을 찾아 타라즈까지 오게 된 한 미국인 부부의 손에 거두어진 그는 2000년부터 대학교에 진학할 때까지 미국 유타 주의 솔트레이크시티에서 부족함 없는 환경에서 ‘밝고 모범적인 미국인’으로 성장했다. 그런 그가 특별한 계기를 통해 스무살이 되던 해, 그동안 잊고 있었던 카자흐인으로서의 정체성을 회복하고 자신을 낳아준 친부모를 찾기 위해 중대한 발걸음을 내디뎠다. 카자흐스탄에서 미국으로. 미국에서 한국으로. 그리고 한국에서 우연히 맺어진 인연을 통해 자석에 끌리듯 다시 카자흐스탄으로 향하게 된 그의 특별한 이야기를 들어보자.

      폴 사르다르 밥콕. 그의 ‘미들네임(Middle name, 미국인들의 성씨와 이름 사이에 들어가는 중간 이름)’인 ‘사르다르’는 본래 그가 카자흐스탄의 산부인과에서 태어났을 당시 붙여진 이름으로, 그를 입양한 미국인 부모가 첫 이름으로서의 의미를 특별히 여겨 이를 중간이름으로 옮겨 보존한 것이다. 미국으로 입양된 사르다르 씨는 총인원이 무려 11명인 대가족 속에서 자랐다. 총 9명의 형제 중 그와 마찬가지로 카자흐스탄 태생인 누이와 여동생, 그리고 대만 출신의 형제 2명 등 그를 포함해 5명이 입양아들이다.

      “양부모님의 친자식들인 다른 형제들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외모 탓에 이미 4-5살 무렵부터 스스로가 입양아임을 알아챘다”는 그는 자신의 출생에 얽인 비화가 부끄러워 어린 시절부터 청소년기에 이르는 동안 타인들에게 자신의 혈통이나 출신지에 대해 일절 밝히지 않았다고 한다. 그랬던 그가 문득 카자흐인으로서의 정체성에 눈을 뜨고 자신의 뿌리를 찾아 나서기로 결심하게 된 계기가 있었다는데, 이는 사르다르 씨가 잠시 미국을 떠나 다른 곳도 아닌 바로 한국에 머물던 시기의 일이어서 더욱 관심을 끄는 대목이다.

      사르다르 씨는 기독교의 한 종파인 ‘후기성도 교회(Latter-day Saints)’ 신자로, 해당 교파에서는 18세 이상의 신도들이 2년 동안 해외로 나가 봉사 활동을 하는 관례가 있다. 봉사 활동을 수행할 지역은 당사자의 선택이 아니라 교회본부에 의해 무작위로 정해지는데, 공교롭게도 사르다르 씨가 파송될 국가로 다름아닌 한국이 배정된 것. 그렇게 20대 진입을 앞둔 시기인 2017년부터 2019년까지 종교 관련 봉사 활동을 수행하기 위해 한국에 머무는 동안 우연히 한국으로 유학 온 카자흐인 유학생과 친분을 쌓게 되었고, 그를 통해 조금씩 카자흐스탄에 대한 이야기와 역사, 문화 등을 접하면서 어느덧 카자흐인으로서 자신의 정체성과 뿌리를 되찾고 싶다는 생각에 이르게 되었다는 사르다르 씨.

      얼마 후 한국에서 봉사 활동을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온 그는 2020년부터 SNS를 통해 자신의 사연을 공개하며 친부모를 찾는다는 내용의 게시물을 올리기 시작했다. 그가 게시한 여러 포스팅은 곧 카자흐스탄의 누리꾼들과 기자들의 관심을 끌기 시작했고, 자신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이들을 통해 사르다르 씨는 자신이 태어났던 산부인과를 비롯해 여러 관련 기관들과 접촉하여 친모에 대한 정보를 본격적으로 찾기 시작했다. 사르다르 씨의 양부모님도 자신의 뿌리를 찾고자 하는 그의 열의에 지지의 뜻을 표하며 입양 당시부터 보관하고 있던 사르다르 씨의 출생증명서와 산부인과 진료 기록, 입양 서류 등을 건네주었다.

      인터넷을 통한 친모 찾기를 시작한 것은 2020년이지만, 그 시기 있었던 여러가지 상황적 제약으로 인해 그가 입양 이후 처음으로 카자흐스탄 땅을 밟은 수 있었던 것은 그 후 3년이라는 시간이 더 흐르고 나서였다. 그렇게 지난 2023년 드디어 사르다르 씨는 그와 마찬가지로 카자흐스탄에서 입양되어 미국에서 성장한 다른 친구들과 함께 모국을 찾았다. 그에게는 친모를 찾는 활동 외에도 이미 카자흐스탄에서 각자의 혈육을 찾은 친구들의 도움으로 카자흐스탄 각지를 방문하며 고국의 문화를 체험하고 역사를 배울 수 있는 귀중한 3주간의 여정이었다.
      카자흐스탄에서 친부모를 찾는데 성공한 친구들과는 달리 아직 ‘피붙이 찾기’가 현재진행형인 그이지만, 지금까지 카자흐스탄과 미국을 오가며 자신의 뿌리인 카자흐 문화와 역사, 언어를 보다 깊이 접하면서 많은 것들에 대해 배울 수 있었다는 사르다르 씨. 그는 또한 “친모 찾기를 시작한 이후 미국 전역, 아니 당장 자신이 자라온 유타 주만 놓고 보아도 자신과 같이 카자흐스탄에서 입양된 동포들이 생각보다 훨씬 많이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말하며 “그동안 입양아로서 살아온 각자의 경험을 공유하고 친가족을 찾는 과정에 서로 보탬이 되기 위해 우리들만의 온라인 커뮤니티를 개설하기에 이르렀다”고 이야기한다.
      현재 25세인 사르다르 씨는 지난해 12월 미국의 대학교에서 국제관계학과를 졸업하고 올해 1월부터 장기 거주 목적으로 알마티로 건너왔다. 최근 그는 카자흐스탄 매체 Tengrinews와의 인터뷰를 통해 “현재 알마티에서 카자흐어를 집중적으로 배우며 현지 관광업체에서 인턴직을 수행하고 있다”고 근황을 알리면서 고국에 대한 자신의 애정을 드러냈다.

      “저는 카자흐스탄을 저의 모국으로 생각합니다. 특히 카자흐어의 중요성을 절감해 현재 열심히 배우는 중이고요. 저는 갓난아이일때 미국에 입양되어 성인이 될 때까지 쭉 현지에서 자랐기에 카자흐 역사나 문화, 언어에 대한 지식이 전무했어요. 그렇기 때문에 아직까지는 저에게 카자흐어가 어렵게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고, 그만큼 앞으로 카자흐어 공부에 더욱 노력을 기울여야겠죠. 이 세상 어느 곳에서 살아가든지 간에 자신의 모국어를 쓰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아직은 제가 노력하고 있는 것에 비해 카자흐어 구사력 향상이 더딘 상태이긴 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차 성과가 나타날 것이라 기대하고 있습니다”.

      사르다르 씨는 “미국인 양부모님께서도 ‘당분간 카자흐스탄으로 거처를 옮겨 살아보고 싶다’는 자신의 의견을 적극 지지해 주셨다”고 말하며 감사의 마음을 내비쳤다.

      “카자흐스탄으로 건너와 이곳에서 생활하며 자기 자신에 대해 알아가기로 한 것은 저에게 있어 매우 중요한 결정이었어요. 저의 미국인 부모님께서는 정말 훌륭한 분들이시고, 제가 몸담아 왔던 가정 또한 매우 화목하지만, ‘카자흐인’으로서의 삶이 무엇인지는 결국 당사자인 저만이 알 수 있는 것이잖아요. 그래서 홀로 카자흐스탄에 와서 스스로 이 모든 것들에 대해 직접 부딪히며 배워보기로 결심한 것이죠. 너무나 감사하게도 양부모님께서는 이러한 저의 생각을 이해해 주셨고, 친부모님을 찾겠다는 저의 의지에 대해서도 적극적인 지지의 뜻을 표하셨어요”.

      한편 카자흐스탄에서 실질적인 생활을 하며 느낀 점을 밝히면서 사르다르 씨는 특히 “인간관계와 관련한 문화에 있어서 미국과 카자흐스탄은 극명한 차이점을 보인다”고 말한다.

      “사실 처음 카자흐스탄에 왔을 때에는 이곳의 사람들이 미국과 비교해 다소 차갑게 느껴졌고 좀처럼 친해지기 어렵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대개 미국인들은 처음보는 이들을 대할 때에도 표정이 밝고 태도 또한 친근하잖아요. 하지만 시간을 두고 겪어보니 카자흐스탄 사람들은 일단 상대방에 대해 어느 정도 알아가고 익숙해지고 나면 자신의 친가족처럼 받아들이고 따뜻하게 대한다는 점을 느끼게 되었어요. 또다른 차이점으로는 미국인들에 비해 카자흐인들이 가족관계에 유독 많은 신경을 쏟는다는 것을 들 수 있겠네요. 미국인들은 좀 더 개인생활을 중시하는 경향이 강하고, 카자흐인들의 경우 삶의 대소사 전반이 가족을 중심으로 돌아가죠. 개인적으로 이러한 카자흐 사람들의 문화가 좋아요”.

      그는 또한 자신이 느낀 카자흐스탄 사람들의 또다른 특성 중 하나는 ‘자신의 생각을 직설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예컨대 카자흐 사람들은 살집이 있는 사람의 면전에 대고 ‘당신은 살을 뺄 필요가 있겠는데’라는 식으로 말하는데 거침이 없죠. 반면 미국에서는 사회적 분위기상 그런 식의 표현이 예의에 어긋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요. 그 밖에 또다른 차이점으로는 스포츠 취향을 꼽을 수 있겠네요. 카자흐스탄에서는 MMA, 복싱을 비롯한 격투 스포츠와 축구를 좋아하고 미국 사람들은 럭비와 농구를 선호하죠. 또 카자흐스탄에서는 미국인들에겐 생소한 말고기를 즐겨먹는 식문화가 있고요. 개인적으로 카자흐스탄에서 마음에 드는 것들 중 하나가 ‘바자르(재래시장)’예요. 미국에도 농산물 직영 판매점 같은 것들이 있기는 하지만, 인기가 그다지 높지는 않죠”.

      한편 사르다르 씨는 자신의 결혼관에 대해서도 밝히며 훗날 카자흐 여성과 결혼하여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싶다는 소망을 내비쳤다.

      “미래에 태어날 저의 아이들이 카자흐어를 쓰고 카자흐 문화를 이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저는 지금까지 미국인으로서 살아왔기에 아직 카자흐어로 소통을 하는 것이 서투를 수 밖에 없어요. 만일 향후 제가 카자흐 여성과 결혼하게 된다면 더욱 오랫동안 카자흐스탄에서 머물 수 있을 것이며, 태어날 우리의 아이들 또한 카자흐 문화와 전통에 대해 깊이 배울 수 있겠죠. 저는 앞으로 한동안 카자흐스탄에서 살아보려 해요. 카자흐어와 문화를 충분히 배울 수 있을만큼요. 종국에는 미국과 카자흐스탄을 오가면서 생활할 수 있는 일자리를 구하고 싶고요. 이것이 현재로서는 저의 가장 중요한 목표예요”.

      사르다르 씨가 카자흐스탄에서 친부모를 찾아 나선지도 어느덧 5년이 흘렀다. 그가 지난 2023년 자신의 출생지를 방문했을 당시 현지 기자들의 도움으로 친모의 성명과 동일한 이름을 가진 비슷한 연령대의 여성들을 다수 물색해 냈지만 안타깝게도 이들은 모두 동명이인들로 밝혀졌으며, 그 후 현재까지 사르다르 씨의 친모 찾기 여정은 답보 상태에 머물러 있다.

      “저는 아직도 제 친부모님의 행방을 찾고 있는 중이예요. 이와 관련해서 주변 분들로부터 여러가지 도움을 받고 있기도 하고요. 다만 현재 가장 큰 걸림돌 중 하나는 바로 가족관계를 증명해 내는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도 있는 특정 서류의 발급에 대한 허가가 나지 않고 있다는 것이에요. 자세한 내용은 잘 모르지만 현행법상 당국이 공개·발급을 결재해 줄 수 없는 부분이 있다고 해요. 이 때문에 너무나 답답한 심정입니다. 저는 지난 2023년에도 3주간의 일정으로 카자흐스탄을 방문해 과거 저의 입양 절차가 이루어졌던 보육원에 남아있는 기록을 통해 친부모님에 대한 정보와 행방을 알아내기 위해 여러가지 시도를 했었거든요. 당시 그 지역에서 활동하는 여러 기자분들께서도 저의 친모를 찾는 것에 힘을 보태주셨었지만, 아직까지 아무런 성과를 얻지 못했습니다. 사실 찾는 것 자체도 어려운 일이지만, 설령 저의 친어머니를 찾아낸다고 하더라도 과연 당신께서 저와 만나고 싶어 하실지조차 장담할 수 없지요. 결국 저는 지금으로서는 친어머니께서 정확히 어떤 이유로 당시 갓 태어난 저를 두고 떠나가셨는지조차 알 길이 없는 것이죠. 이처럼 풀리지 않은 의문과 상황들이 감당하기 힘들고 복잡한 것은 사실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는 부분이기도 해요. 저는 지금도 여전히 저의 친부모님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놓지 않고 있습니다”.

      사르다르 씨가 자신의 SNS 계정에 신생아 시절과 입양 이후 여러 시기에 걸쳐 찍은 어린 시절의 사진들을 올리며 함께 게시한 글이 눈길을 끈다.

      “최근 들어 새삼 ‘내가 만일 미국 가정에 입양되지 않았었다면 그 삶은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는데요. 과연 카자흐스탄에서 고아로 자랐을 경우 나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었을지 궁금합니다. 그런 상황 속의 나는 영어를 쓸 줄은 알았을까요? 자유로이 여행을 다닐 수는 있었을까요? 대학에 진학은 할 수 있었을까요? 스스로의 삶을 개척해 나갈 수 있었을까요? 그 누가 답을 알겠습니까. 다만 지금 제가 확신할 수 있는 한가지는 바로 현재의 제가 지금껏 저의 가족과 함께 미국에서 생활하며 자랄 수 있었던 것이 저에게 있어 너무나 큰 축복이며, 그렇게 멋진 삶을 살 수 있어서 행복하다는 사실입니다”.

      한편 사르다르 씨는 자신과 특별한 인연으로 맺어진 한국과 한국사람들을 향한 애정의 메시지와 추억이 담긴 사진들도 개인 SNS를 통해 종종 공유하고 있으며, 특히 최근에는 지난 2023년 개인 여행차 한국을 방문했을 때 촬연한 사진들을 게시하기도 했다. 과거 한국에서 2년간 봉사 활동을 하던 시절 쌓았던 소중한 추억들을 떠올리며 그가 직접 한국어로 적어 올린 글로 본 기사를 마무리한다.

      “한국의 훌륭한 사람들로부터 배운 경험과 교훈에 너무나 감사합니다. (중략) 한국에서의 봉사 활동을 하기 전에는 한국의 멋진 문화와 언어에 대해 잘 알지 못했지만, 이제 저는 한국에 관한 모든 것을 사랑합니다. 이 멋진 사람들을 만나 봉사하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우리나라 만세 (태극기 이모지)”

      봉사 활동차 2년간 한국에서 생활하던 시절
      (사진출처: 개인 S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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