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OTT 플랫폼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오징어 게임 2>의 한 장면.
등장인물들이 한국의 민속놀이인 공기놀이를 퀘스트로 수행하고 있다.
카자흐스탄을 비롯한 여러 중앙아시아 국가들에서도 ‘오징어 게임’ 시리즈에 대한 관심과 인기는 단연 돋보인다. 특히 이번 후속작을 본 카자흐스탄 시청자들은 극중 보여지는 한국의 전통놀이가 카자흐 민족이 예로부터 즐겨왔던 유희거리들과 너무나 비슷하다며 한국 문화에 더욱 큰 친밀감을 드러내고 있다.
시청자들은 “<오징어 게임> 제작자들은 몰입감 넘치는 줄거리 뿐만 아니라 연출상의 새로운 도전을 통해 시청자들에게 큰 자극을 주었다”고 평가하면서 “특히 흥미로운 부분은 이번 후속 시즌에서 극중 인물들이 수행하는 게임들이 카자흐 민족을 비롯한 중앙아시아 유목민들의 민속놀이와 매우 유사하다는 점”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이처럼 ‘오징어 게임 시리즈’를 본 카자흐스탄 시청자들이 최근 여러 커뮤니티들을 통해 이야기하는 ‘카자흐·한국 사람들의 여러 놀잇거리 속 공통점들’에 대해 매체 ‘Kazinform’이 기사화한 글(카리나 쿠샤노바 기자)을 발췌하여 본지에 소개한다.
‘비석치기’와 ‘아식’
한민족의 ‘비석치기’ (좌) / 카자흐 민족의 ‘아식’ (우)
‘비석치기’는 놀라우리만치 카자흐 민속놀이인 ‘아식 아투(Асық ату, 약칭 ‘아식’)’와 닮아있다. ‘아식’과 마찬가지로 ‘비석치기’에서도 특정 도구를 활용해 목표물을 맞추어 쓰러뜨리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비석치기’에서는 보통의 (납작한) 돌을 사용해 일정한 거리에서 땅 위에 놓인 ‘비석’이라 불리는 목표물을 맞혀야 한다. ‘비석치기’와 ‘아식’ 모두 일정한 지점에서 목표물을 맞혀야 하며, 던지는 이가 서 있어야 할 위치를 벗어나는 것을 엄격히 금한다. 한편 기본 도구로 활용되는 뼈다귀(양의 복사뼈)들의 무게, 또는 형태 별로 최종 점수가 다르게 부여되는 ‘아식’ 놀이와는 달리, ‘비석치기’에서는 주 도구로 사용되는 돌들이 모두 동등하게 쓰인다는 차이점이 있다.*카자흐 민속놀이 ‘아식(아식 아투)’ – ‘양의 복사뼈’를 의미하는 ‘아식’은 이미 기원전 2천년대 무렵에도 당시 카자흐스탄 땅에서 살아가던 이들이 오락거리로 즐겨 삼았던 흔적이 발견되었을 정도로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카자흐 민족의 대표적인 전통놀이이자 문화유산이다. ‘아식’은 지난 2017년 12월 제주도에서 열린 제12차 유네스코 총회에서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된 바 있으며, 지난해 9월에는 국제 아식 경연대회 ‘World Asyk Atu Championship’가 아스타나에서 성황리에 개최되었다.
‘공기놀이’와 ‘베스타스’
전통문화 체험 행사에서 카자흐 민속놀이 ‘베스타스’를 배우고 있는 카자흐스탄 어린이들
‘공기놀이’는 카자흐인들이 즐겨하는 민속놀이인 ‘베스타스(Бестас)’의 ‘한민족 버전’이라 할만하다. 두 놀이 모두 다섯 개의 작은 돌멩이들을 놀이 도구로 사용하며, 하나의 단계를 완수하면 그 다음 단계로 올라가는 방식으로 진행된다는 공통점이 있다. 민첩함과 협응력이 승패를 결정짓는 요소라는 점에서도 두 놀이는 서로 닮았다.반면 놀이의 규칙에는 차이점이 있는데, 예를 들어 ‘공기놀이’에서는 공중으로 띄운 공기알들을 손으로 거머채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면 ‘베스타스’에서는 손으로 아크 형태를 만들거나 바닥 위에 놓인 돌멩이 교체하기 등 규칙 면에서 독특한 부가적 요소도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이처럼 각각의 독특한 개성을 나타내는 일부 구별점을 제외하고 두 놀이의 전반적인 기조는 대동소이하다고 할 수 있다.
*‘다섯 개의 돌멩이’라는 뜻을 가진 ‘베스타스’는 예로부터 현재의 카자흐스탄 땅에서 생활하던 유목 민족들 사이에서 많은 사랑을 받아온 유서 깊은 전통오락이다. 특히 ‘베스타스’는 과거 카자흐인들의 결혼식에서 빠질 수 없는 중요한 순서로 취급되었다고 전해진다. 이 놀이에서 신랑 측의 대표가 승리하면 신부대(新婦代)를 치르지 않고도 즉시 신부를 데려올 수 있었으며, 신부 측의 도전자가 승리하는 경우 신랑 측은 지참금을 처가에 지불했다고 한다.
‘딱지치기’와 ‘소트키’
조선시대 때부터 전해 내려온 민속놀이로 알려진 한국의 ‘딱지치기’ 또한 현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카자흐스탄 사람들이 어린시절 한번쯤은 해보았을 여러 놀이들과 닮아 있다. 지난 1990년대에 카자흐스탄 어린이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었던 놀이 ‘소트키(Сотки)’도 그 중 하나이다. ‘소트키’에서는 판지 재질의 자그마한 원형 판이 놀이감으로 사용되며, 자신이 가진 이 원형 판을 상대방의 것에 내려쳐서 뒤집기에 성공하면 그것를 전리품으로 획득할 수 있는 방식의 오락이다. 이처럼 ‘딱지치기’와 ‘소트키’는 ‘내려치기 동작을 통해 자신의 사물로 경쟁상대의 사물 뒤집기’라는 궁극의 목적을 공유한다. 한가지 차이점이라면 한국의 ‘딱지치기’에서는 놀이 도구로 종이봉투 형태의 딱지를 사용한다는 것이며, ‘소트키’에서 사용되는 도구는 본 놀이가 도입되었던 시대적 배경에 따라 ‘글로벌 대중문화’의 영향을 받은 외형을 띠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을 것이다.
* ‘딱지치기’에서 사용하는 딱지를 ‘종이봉투’에 비유한 필자의 표현이 재미있다. 한국에서도 전통놀이인 ‘딱지치기’ 외에 지난 1990년대 들어 원글의 필자가 언급한 ‘소트키’와 유사한 형태의 ‘현대식 딱지 대체품’이 당시 확산 중이던 범세계적 대중문화의 흐름 속에서 외산 스낵류에 딸린 부록물 형태로 대대적으로 보급되어 대한민국의 어린이들 사이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구가한 바 있다.
‘제기차기’와 ‘랸가’, 그리고 ‘팽이’와 ‘볼촉’
한국의 전통놀이인 ‘제기차기 ’(좌) / 카자흐인들을 포함한 중앙아시아 민족들 사이에서 예로부터 민속놀이로 전승되어 온 ‘랸가’를 시연 중인 카자흐 소년 (우)
<오징어 게임 2>에서 등장한 나머지 두 개의 놀이들-‘제기차기’와 ‘팽이’-도 카자흐스탄의 시청자들으로부터 흥미롭다는 반응을 이끌어냈다. 우선 팽이는 기본적으로 끈을 다루는 기술을 요하는 놀이로서, 지난 20세기 중반 카자흐스탄의 어린이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던 ‘볼촉(Волчок)’과 기본적인 원리가 상통한다.한편 제기를 땅에 떨어트리지 않고 최소 다섯 번 연속으로 차는 것을 기본 규칙(<오징어 게임> 내용상)으로 하는 ‘제기차기’는 카자흐스탄 시청자들로 하여금 ‘랸가(Лянга)’로 불리는 민속놀이를 연상케 한다.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그간 중앙아시아 지역 전반에 걸쳐 ‘랸가’ 외에도 ‘제기차기’와 흡사한 여러 놀이들이 존재해 왔으며, 도구로는 제기 대신 가죽이나 털 등으로 만들어진 작은 공 형태의 놀이감들이 사용되었다.
* 한민족의 ‘제기차기’와 매우 흡사한 ‘랸가’는 캅카스 및 중앙아시아 지역의 민족들 사이에서 널리 퍼져 있는 민속오락이다. 본 놀이에 쓰이는 도구 역시 동명으로 불리며, 염소나 양의 털가죽을 주 소재로 하여 만들어진다. 중앙에는 무게감을 더하기 위한 단추 모양의 작은 납 덩어리가 붙어 있다.
비록 규칙이나 놀이에 사용되는 소품 등에는 다소간의 차이점이 존재하나, 지구상 곳곳에서 아득한 세월에 걸쳐 서로 멀리 떨어진 채 각기 다른 전통과 풍습, 언어를 향유해온 여러 민족들이 오늘날 각자의 문화유산에서 이처럼 많은 공통점을 나누어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 흥미롭고 신비롭게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