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스쮸베 언덕에서 外 2 편 – 김병학

바스쮸베 언덕에서 外 2 편 – 김병학

바스쮸베* 언덕에서
바스쮸베 언덕에 가을바람 불어
까마귀 떼 하늘 가득 날아오네
양만리 연해주에서 중앙아시아까지
이름 없이 피었다 쓰러져간 꽃 넋들
모질게 다시 일어나 이 언덕에
질긴 목숨 뿌리내렸건만
돌보는 이 하나 없이 일흔 해를
눌리고 찢기고 밟히고 묻혀
이리도 풀 한 포기 없이 붉은가
하늘 아래 흰옷 입고 살아온 것이
그 무슨 해를 가리는 죄였던가
해골처럼 야위어가는 언덕아
누굴 기다리다 망부석이 되고 말았더냐
삼각철판 묘비마다 부릅뜬 눈
시퍼린 울음으로 가슴을 찔러
강제이주열차 바퀴아래 깔린 얼굴들
또렷한 늦가을 조각달로 떠오름에
나 아직 꽃다발 엮어드릴 수 없네
술잔 아직 여기 부어드릴 수 없네
다만 심장의 피 한 움큼
혼백에 담아 망향가로 바치네.

* 바스쮸베: 연해주에 거주하던 재소고려인들이 1937년 강제이주열차에 실려 중앙아시아로 끌려오다 그해 10월 중순 카자흐스탄의 우스또베란 곳에 처음으로 부려졌다. 부려진 그들이 혹독한 겨울을 견디며 살아남은 장소가 바로 바스쮸베다. 카자흐어로 '머리언덕'이라는 뜻인데 문자 그대로 우스또베 외진 곳에 사람머리를 엎어놓은 모양의 언덕으로 서 있다. 강제이주열차에 실려 온 고려인들은 당장 거주할 집이 없어 그 언덕을 바람막이 삼아 경사면 아래에 토굴을 파고 이듬해 4월까지 살았다. 그렇게 첫 해 겨울을 보낸 고려인들은 그곳 바스쮸베를 자신들의 묘지로 삼았다. 초기에 조성된 묘지는 초라하기 그지없으며 조그만 철판묘비에 한글로 비명이 새겨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