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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인 한글신문 100년 역사에 발을 담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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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인 한글신문 100년 역사에 발을 담그고…
      고려인 한글신문 100년 역사에 발을 담그고…
      부모님은 나를 낳아주셨고 고려일보는 나를 키워주었다. 나는 고려일보사에서 기자로 일하면서 강철같은 의지를 단련하였고 거기서 습득한 지식을 자양분으로 성장하여 지금의 내가 되었다. 고려일보는 내가 추구하는 가치에 요구되는 성실성과 꾸준함을 자라게 해주었고 그 가치를 실현하는데 바탕이 되는 주옥같은 ‘이야기(정보)’들을 제공해주었다. 내가 고려일보와 인연을 맺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나는 결코 없었을 것이다. 오래전에 이 신문과 맺은 인연이 160년 고려인 역사와 문화의 도도한 물줄기에 합류하여 나는 지금 고려인들의 역사적 조국인 한국에서 그 뜻을 펼치고 있다.

      내가 고려일보사에 처음 찾아간 것은 햇볕이 따사로운 1992년 6월 초 어느 날이었다. 한국을 떠나오기 전에, 옛소련에서 우리말 신문이 발행되고 있고 그 신문사가 바로 카자흐스탄 알마티에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터라 몹시도 궁금해서 카자흐스탄에 들어오자마자 가장 먼저 찾아가 보고 싶었던 곳이었다. 고려일보는 알마티시 중앙시장 맞은편 출판성 건물 3층에 드넓게 자리 잡고 있었다. 조영환, 양원식, 안재길, 남해봉, 김 보리쓰, 김성조, 배철준, 최 예브게니, 현 니꼴라이, 박현, 박경란, 니조야, 최윤희, 한옥자, 최순선, 안 빅토르, 남 이르마 같은 여러 기자 선배님들이 일하고 계셨고 다른 방에는 임 클라라, 천 발렌찐, 강 알렉산드르, 리 스따니슬라브, 박 미하일 작가 등이 러시아어판 ‘고려’주간을 펴내고 있었다. 그리고 원로 기자이신 정상진 선생님이 신문사에 자주 오셔서 아주 재밌고도 인상 깊은 이야기들을 들려주셨고 연성용, 박일, 정추 선생님 같은 고려인 문화계의 원로분들도 수시로 찾아오셨다.

      당시 그분들은 내가 역사적 조국에서 건너온 청년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정말로 살갑게 대해주셨고 때때로 집으로 초대하여 한반도에서 벌어지는 궁금한 이야기를 묻거나 당신들이 살아온 이야기를 재미있게 들려주시곤 하셨다. 그렇게 조금씩 친분이 쌓이다 보니 나는 그분들의 요청으로 자연스럽게 고려일보 한글판 기사의 교정이나 편집을 봐 드리기도 하고 매우 드물기는 했지만 직접 기사를 쓰기도 하였다. 그러다가 1995년 여름에 나는 진짜로 고려일보 기자가 되었다. 아쉽게도 나의 첫 기자 생활은 1년밖에 지속되지 못했지만 그때 맺은 인연의 끈은 쉽게 끊기지 않았다. 한번 신문사에 발을 담그고 나니 신문사를 나온 이후로도 선배 기자들의 요청으로 나는 시간 나는 대로 신문사에 찾아가 교정도 보고 교열도 보고 때로는 기사도 쓰면서 사실상 고려일보사 식구나 다름없이 지냈다. 고려일보는 야유회를 비롯한 모든 행사에 꼭 나를 불렀고 나는 이를 당연한 일로 여기고 참석했다.

      첫 번째 기자 시절에 나는 멀리 러시아 북부 도시 톰스크까지 취재를 다녀온 일이 있었다. 1992-1993년에 내가 우스또베에서 한글학교 교사로 일할 때 내게서 한글을 배웠던 학생 중 몇 명이 이후 톰스크공대로 유학을 갔는데 그들이 자꾸만 내게 놀러 오라고 권유했기 때문이었다. 그곳이 궁금해져서 꼭 한번 가봐야겠다고 다짐하던 중 1995년 11월 어느 날 더이상 기다릴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 고려일보에 취재를 가겠다고 보고하고 출장증을 발급받아 알마티에서 열차를 탔다. 아마 이틀 정도를 달렸던 것 같다. 러시아 국경에서는 내게 러시아 비자가 없다고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했다. 열차가 톰스크로 직접 가지 않아 타이가라는 역에서 전차로 갈아타고 또 택시를 잡아타고 그들이 있는 학교로 찾아가 그들과 기쁘게 재회했다. 그 애들의 도움으로 톰스크공대 교수와 도서관장 등을 만나 인터뷰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1주일 여의 먼 여행길에서 돌아오니 김성조 편집국장님이 그날 바로 기사를 쓰라고 하셨다. 밤새워 원고지 수십 매를 가득 채웠다. 그 기사는 3회에 걸쳐 신문에 연재됐는데 여러 지인들이 정말 재미하게 잘 읽었다며 격려해주었다. 그때 큰 보람을 느끼고 속으로 우쭐했던 기억이 지금도 새롭다. 칭찬과 격려의 힘이 얼마나 큰지 그때 다시 한번 실감했다.

      세월이 흘러 어느덧 새천년이 되었다. 신문사는 한 해 전에 고려인협회 산하기관으로 들어갔고 새천년부터 신문이 새롭게 발행되어 독자들과 만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김성조 편집국장님과 다른 몇몇 관계자분들이 나에게 고려일보에서 다시 같이 일해보자는 제안을 해오셨다. 나는 완곡하게 거절하였다. 당시 나는 아바이명칭 알마티국립사범대학교 한국어과에서 강의하고 있었고 나의 장래를 위해 새로운 계획까지 세워놓았던 터라 그 부름에 응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김성조 선생님이 몇 번 더 전화하시며 함께 일해보자고 계속 제안하셨다. 더이상 거절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모국어 신문사가 그만큼 절박했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그리하여 2000년 9월부터, 아만겔듸 거리로 이사 온 신문사로 첫 출근을 하였다. 이 출근은 2003년 10월까지 계속되었다. 이제는 1990년대와 달리 한글판 기자라고는 양원식 선생님과 김성조 선생님과 나 세 명뿐이었다. 쉼 없이 쏟아져 들어오는 자료들을 선별하고 교정하고 교열하고 편집하고 번역하고 또 기사를 쓰는 일이 끊임없이 반복되었다.

      글감옥이란 곳이 바로 이런 곳인가 싶었다. 하지만 그때 우리들은 고려일보를 모국어 신문답게, 이 신문을 다른 어느 신문에도 뒤지지 않는 정론지로 만들겠다는 사명감을 갖고 있었다. 더욱이 2003년에는 신문창간 80주년을 맞이하면서 우리는 선배들에게 더욱더 부끄럽지 않은 기자가 되어야 했다. 신문창간 80주년 기념식도 준비해야 했기 때문에 전년도보다 일이 훨씬 많아졌다. 그때는 단순 작업의 연속처럼 보이던 신문사 일이 벅차고 힘들다는 생각을 많이 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바로 그 일이 나를 강철같이 단련시키고 나의 심지를 굳게 만들어주었던 것 같다. 그때의 그 경험은 나중에 내가 고려인의 역사와 문화유산을 정리하는 작업에 뛰어들었을 때 지치지 않고 나아가게 하는 동력이 되어주었다.
      고려일보 창간 80주년 기념행사를 준비하는 일은 정말 가슴 벅찬 일이었다. 우리는 신문을 내느라 바쁜 와중에서도 80주년 기념행사를 매우 기쁘게 준비하였다. 그러면서 마음 한 켠에는 절망의 먹구름이 드리워지는 것을 느끼기도 했다. 당시 고려일보는 구독자 수의 감소, 인터넷의 확장, 관심사가 다른 젊은 세대의 부상 등 여러 가지 한계상황에 직면해 있었고 만일 이러한 추세가 지속된다면 중앙아시아 고려인 모국어 신문은 창간 80주년을 맞이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종말을 맞이할 수도 있을 거라는 불안한 예감을 우리는 공유하고 있었으니까. 어쩌면 우리는 중앙아시아에서 모국어 신문을 발행하는 최후의 모히칸족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때때로 가슴이 미어지곤 했었다. 다행히 사명감을 가진 선후배 기자들이 나타나 우리의 예감을 빗나가게 해준 것이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다.

      나는 2003년 10월에 신문사를 나왔다. 하지만 신문사를 나오거나 말거나 나는 여전히 신문사 직원이나 다름없었다. 1984년에 신문사에 들어가 2006년까지 꾸준히 일하시다가 불의의 사고로 작고하신 양원식 선생님과 그 뒤를 이어 올해 5월까지 유일한 한글판 기자로 일하신 남경자 선생님으로부터 원고투고 요청이 들어오면 나는 어김없이 기사나 칼럼을 써야 했으니까. 그 일은 한국으로 돌아온 뒤로도 이어졌다, 이런저런 핑계로 비록 횟수는 많이 줄여나갔지만.

      고국으로 돌아온 지 어언 7년의 세월이 흘렀다. 돌아올 때 카자흐스탄을 그리워하지 않겠다고 여러 번 다짐했다. 25년 동안 살아온 카자흐스탄 생활을 마감하고 2016년 10월에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으면서 앞으로는 카자흐스탄과 그곳에서 인연을 맺었던 사람들을 자연스럽게 잊어갈 수도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태어나서 스물일곱 살까지 살았던 고향으로 되돌아가는 길이었으니 이렇게 생각한다 해도 전혀 이상한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또 내 앞에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생활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한국으로 돌아온 지 여러 해가 지난 지금도 나는 거의 매일 카자흐스탄에 가 있는 꿈을 꾼다. 거기서 만났던 어른들, 친구들, 제자들, 나를 키워주시고 지금의 나를 만들어주신 여러 선배님들… 그리고 우연인 듯 운명인 듯 카자흐스탄에 들어간 지 며칠 만에 찾아갔다가 질긴 인연으로 묶여버린 고려인 한글 신문 고려일보사… 고려일보는 평소에도 내 마음 한 켠을 크게 차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꿈속에까지 자주 찾아와서 나를 가만히 두지 않는다. 신문사에 들어가 일하면서 쌓은 경험과 맺은 인연과 습득한 정보, 그리고 무엇보다도 고려인 모국어 신문사에서 일했다는 자긍심은 내 삶의 자양분이 되어 지금 한국에서 고려인 역사문화를 알리는 일을 하도록 나를 인도했고, 지치지 않는 영감과 에너지의 원천이 되어주고 있다.

      김병학
      전 고려일보 기자. 월곡고려인문화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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