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현대인들에게 과체중은 ‘멋을 부리기 위해 모처럼 비싸게 구입한 옷의 맵시를 망가뜨리는 얄궂은 빌런’ 쯤의 존재로 인식되고 있다. 그런데 과잉체중·비만의 악역은 이처럼 단순히 용모를 망치는 정도에서 끝나지 않는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오늘날 ‘비만’으로 인해 목숨을 잃는 사람들의 수는 전세계적으로 매년 260만 명에 육박하고 있다. 이처럼 전세계적인 추세와 다를 바 없이 근래 카자흐스탄에서도 비만 인구가 갈수록 급증하고 있다. 그 원인은 어디에 있으며, 사회적 차원에서 어떻게 해결 방안을 강구할 것인가? 카자흐스탄 식품 아카데미 회장인 알마즈 샤르만(Алмаз Шарман) 의학박사를 만나 그동안 많은 카자흐스탄 사람들이 굳건히 신봉하던 ‘비만 걱정 없는 건강한 유목민 유전자’에 대한 허상, 그리고 현대화된 식문화 속에서 갈수록 심화되고 있는 비만 및 각종 관련 질병들의 위협으로부터 자신의 몸과 건강을 지킬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들어본다.
*아래 내용은 카자흐스탄 매체 Tengrinews에 게재된 기사에서 발췌하여 우리말로 옮긴 것이다.
지난 200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카자흐스탄 사회에서 비만은 미국을 비롯한 서구권에서나 만연한, ‘먼 나라 이야기’ 쯤으로 받아들여졌다. 대다수의 카자흐스탄 사람들은 전통적인 식생활과 신체적으로 활발한 일상생활, 그리고 소위 ‘초원을 누비던 유목민 유전자’로 무장된 자신들만큼은 비만으로부터 안전할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오늘날 카자흐스탄 국민들의 건강 상태를 객관적으로 반영하는 지표는 절망적인 수준이다.
최신 조사 결과에 따르면 현재 카자흐스탄 전체 성인 인구의 60% 이상은 과잉체중을 가지고 있으며, 3명 중 1명 가량은 ‘의학적 질병’인 ‘비만’ 상태에 있다. 학교에 재학중인 청소년 연령대의 경우에도 관련 건강지표와 관련하여 매우 우려스러운 경향이 관찰되고 있다. 현재 해당 연령대층 사이에서는 5명 중 1명이 대사증후군(신체에 정상적이지 않은 물질대사가 만성적으로 나타나는 질병으로, 평소 자극적이며 칼로리가 높은 음식 섭취함에 따라 당뇨직전상태, 고혈압, 고지혈증, 동맥경화, 비만 등의 증상을 수반한다) 발병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과체중 및 비만은 단순히 사람의 외형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심장마비, 뇌졸중, 제 2형 당뇨, 호르몬 불균형, 우울증, 불임 등을 초래하는 심각한 존재임을 인지할 필요가 있다. ‘카자흐스탄 식품 아카데미’ 측이 지난 2024년 발표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오늘날 카자흐스탄 전체 인구 중 남성의 29.7%, 여성의 33.9%가 ‘과체중’ 상태에 있으며, ‘비만’의 경우 남성 인구의 15.3%, 여성 인구의 25.8%가 해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관련 통계는 현재 카자흐스탄 내 15세 이상 인구 중 절반 가량(남성의 49.2%, 여성의 55.5%)이 과체중 혹은 비만 상태에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카자흐스탄 국립 공중보건센터 측도 오늘날 6~9세 사이의 카자흐스탄 아동 인구 5명 중 1명이 과체중 상태, 6.6%가 소아비만이라는 통계를 근래 발표한 바 있으며, 세계보건기구 또한 오늘날 카자흐스탄 전체 성인 인구의 60~65%가 과체중 상태에 있음을 공식적으로 밝히고 있다.
체중 증가의 주범
이처럼 급증하고 있는 과체중 및 비만 발생률의 원인은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문제는 단순히 음식에만 있지 않다. 운동부족, 상시적인 정크푸드 섭취, 만성 스트레스, 수면장애 등 현대화·도시화된 국민들의 생활패턴에 따라 여러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쌓여 몸무게 증량을 야기시키는 ‘최적의 조건’이 조성되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알마티와 아스타나를 비롯한 국내 여러 도시들에서는 피자·햄버거 등의 패스트푸드 배달 서비스의 급증과 더불어 수백 개의 피트니스센터들이 우후죽순 생겨나는 역설적인 풍경이 연출되고 있다.
오늘날 많은 카자흐스탄 사람들은 이른바 ‘식품 사막(Food desert, 정크푸드를 제외하고 건강한 음식을 구하는 것이 제한된 지역을 일컫는 용어)’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생활권 내의 식료품 가게 및 편의점들에는 라면 등의 인스턴트 식품과 각종 가당음료가 즐비한 반면, 신선한 채소 등의 자연식품은 서민들의 주머니 사정상 사먹는 것이 부담스러울 정도로 값비싼 존재가 되어가고 있다. 이것으로도 모자라 그나마 과거 국민들이 일상적으로 유지하던 ‘걷기 활동’은 차량이용으로, 아이들의 ‘야외놀이’는 스마트폰 게임으로 대체되고 말았다.
가짜 음식, ‘초가공식품’의 폐해
오늘날 비만을 불러일으키는 주범, ‘과잉 칼로리’의 주 원천은 빵도 고기도 아닌, ‘진짜 음식’이라 하기에는 영양적 가치가 극도로 낮은 이른바 ‘초가공식품(Ultra-processed food)’이다. 식재료에 각종 인공 향료와 감미료·방부제·설탕 등을 다량 첨가하여 여러 차례 가공한 햄·소시지류, 가당음료, 과자, 즉석 스프는 물론, 심지어 다이어트식으로 여성들에게 인기가 높은 과일’맛’ 요구르트 같은 식품도 여기에 속한다. 이러한 초가공식품은 습관적인 과식을 유도, 정상적인 포만감이 유지되는 것을 방해하며 뇌의 만족중추에 악영향을 끼친다. 실제로 그동안 여러 연구결과를 통해 일상 식생활에서 초가공식품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을수록 비만·당뇨·고혈압·우울증·치매 등의 발병률이 수직 상승한다는 사실이 증명된 바 있다. 다시 말해 초가공식품의 ‘단점’은 단순히 건강에 유익한 영양성분이 극도로 낮거나 없다는 사실에서 그치지 않고, 더 나아가 신체를 구성하는 세포 하나 하나에 손상을 입히는 무서운 존재라는 것에 있다.
과잉 풍요의 시대가 초래한 ‘유전자 변질’
예로부터 튀르크계 민족들은 ‘빠르고 효율적으로 에너지를 축적하는’ 능력을 가진 신체적 특성을 공유해왔다. 이러한 특성은 이동이 잦고 고정적인 식량 확보가 어려운 유목생활을 하던 이들이 생존하는데 있어 매우 이롭게 작용했다.
그러나 사시사철 음식이 넘쳐나는 현대에 와서 이 ‘유전적 특장점’은 오히려 약점으로 전락했다. 특히 오늘날 카자흐스탄 사람들 사이에서는 외형적 측면에서 정상적으로 보여지지만, 신체 내부적으로는 이미 내장지방 축적과 인슐린 저항성·고혈압·전당뇨 등이 진행되어 있는 경우를 흔히 찾아볼 수 있다.
근래 카자흐스탄 동맥경화학회가 악퇴베 주 소재의 시골 거주민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건강 실태 연구조사 프로젝트 ‘Aul(Аул)’에 대한 최종보고 내용은 오늘날 대외적으로 나타나 있는 지표상의 자국민 건강수치와 현실 간의 격차가 매우 크게 벌어져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보고 내용에 따르면 실태조사 프로젝트에 참여한 시골 거주민 508명 중 88%가 비흡연자, 81%가 비음주자로 본격적인 조사 전에는 이처럼 참여자들의 대다수가 건강한 생활습관을 실천하는 것처럼 보여져 이들의 건강지표 또한 양호할 것이라는 믿음을 주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이들의 생활습관에 대하여 더 면밀히 조사한 결과, 대상자의 53%가 평소 가당음료를 즐겨 마시는 것으로 드러났고 42%는 하루 7시간 미만으로 수면을 취하는 것으로 밝혀졌으며, 사실상 전원에 가까운 비율이 만성적인 운동부족 상태에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종 진단결과, 전체 508명 중 단 4명만이 현대 의학계에서 정의하고 있는 ‘신체적 건강함’의 기준에 부합하는 건강상태를 갖추고 있는 것으로 드러나 프로젝트 진행자들에게 큰 충격을 안겼다. 또한 조사 참여자들 중 2분의 1 가량은 제2형 당뇨, 고혈압, 허혈성 심질환 등을 앓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으며 43%에게서는 대사증후군이 진단되었다. 특히 당사자들이 본 연구조사 참여를 통해 처음으로 스스로 이러한 증상을 앓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고 연구 프로젝트 관계자들은 전하면서 건강관리의 중요성에 대한 인지가 부족한 실태를 간접적으로 지적하기도 했다.
‘낮은 기초 대사량’에 대한 허상
과체중 또는 비만인 사람들 중 상당수가 스스로의 체형이 ‘낮은 기초 대사량’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그러나 현대과학은 이와 정반대되는 증거 -체격이 클수록 가만히 있는 상태에서도 더 많은 에너지가 소요되므로 비만인들의 기초 대사량은 오히려 마른 체형의 사람들과 비교해 더 높다-는 사실을 명백히 입증하고 있다.
실질적인 비만의 원인은 기초 대사량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식욕조절 매커니즘과 식욕·포만감에 관여하는 렙틴 호르몬 등과 연관이 있다. 신진대사 자체는 비만을 불러일으키는 주범이 아니다. 주범은 칼로리, 음식의 영양학적 수준, 이를 최종적으로 처리하는 체내 시스템 간에 일어나는 불균형이다. 이러한 사실을 외면한 채 스스로를 그저 ‘낮은 기초 대사량’의 피해자로 여기는 이가 있다면, 그는 실질적으로 살을 빼고 건강을 되찾을 수 있는 시간과 기회를 스스로 허비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비만이 궁극적으로 초래하는 위험
지난 20년간 카자흐스탄에서는 제2형 당뇨를 앓는 이들의 수가 3배 가까이 증가했다. 현재 해당 질환을 가진 환자의 수는 공식 통계(카자흐스탄 보건의료계 및 유엔 측 공개 자료) 기준으로만 50만명 이상에 달한다. 제 2형 당뇨가 가장 많이 발병되는 연령층은 25~30세 사이의 젊은 세대이다. 발병 원인은 비만, 장시간 앉아있는 직업으로 인한 운동부족, 만성 스트레스, 수면 부족이다.
비만 문제에 있어 특히나 취약한 입장에 놓인 카자흐스탄의 여성들
과체중과 비만은 호르몬 불균형, 다낭성 난소 증후군에 따른 불임, 임신합병증, 유·조산 등을 야기시킬 수 있다. 또한 비만 여성의 경우 유방암과 자궁내막증이 발병할 확률도 높다. 뿐만 아니라 여성들은 외모지상주의가 팽배한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날씬한 몸매에 대한 압박감을 느끼거나 자기관리를 하지 않는 게으를 것이라는 편견에 시달리기도 한다.
건강한 성인으로 성장할 기회를 박탈당한 어린이들
근래 들어 카자흐스탄에서도 점차 비만 발생 연령대가 낮아지면서 청소년층 이하의 어린이들 사이에서 과체중·비만 인구가 급증하고 있다. 이들의 일상식에는 밀가루를 주재료로 하는 기름지고 단 음식이 빈번히 포함되며 반대로 채소와 과일, 유제품 등의 섭취는 크게 부족한 실정이다. 여기에 더해 이들의 부모 세대가 가진 ‘많이 먹을수록 건강하다’는 착각에 기반한 양육 방식은 아이들의 건강에 더욱 큰 해악을 끼치고 있다. 소아비만은 어린이가 성인이 된 이후의 여생 내내 각종 만성질환에 시달릴 것을 예고하는 알림장이나 다름 없다.
책임을 누가, 해결은 어떻게?
비만은 단순히 ‘의지박약’의 결과물이 아니라 체내 시스템이 비정상적인 상태에 빠짐으로써 발생하는 현상이다. 그렇기 때문에 개개인의 과체중 비만·치료와 사회적인 예방 역시 ▲건강한 생활습관에 대한 학교 교육 ▲산책 및 건기운동 등에 최적화된 보행환경 인프라 확충 ▲보조금 정책 등을 통해 서민들에게 가격 부담이 낮은 건강식품 보급 ▲대사증후군 예방 목적의 공공검진 서비스 실시 ▲비만에 대한 편견 타파를 위한 사회캠페인 실시 등 체계적이며 복합적인 접근을 통해 진행해야 할 것이다.
카자흐스탄 사회는 이제 과거의 낡은 편견에서 벗어나야만 한다. ‘통통함은 곧 건강의 징표’라는 옛 사고방식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물론 정신적 측면에서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결코 이것이 건강관리에 있어 무지하고 나태한 스스로의 태도에 대한 변명으로 오용 되어서는 안된다. 과잉체중은 단순히 외모·외형에 악영향을 미치는 존재가 아니라 신진대사 저하, 만성 염증, 심장·간·뇌 등의 장기 손상까지 초래할 수 있는 질병임을 기억해야 한다. 모든 질병이 그러하듯, 비만 또한 치료가 가능하고, 또 반드시 완치해야만 하는 대상이다.
과체중 및 비만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자신의 몸에 대한 존중, 현실적인 목표 설정, 건강한 식습관에 대한 즐거움, 그리고 점진적으로 나쁜 습관을 건강한 습관으로 대체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체중을 유지하는 것이 어려운 경우에는 고단백 유제품과 통곡물을 식사 20~30분 전에 섭취함으로써 식욕을 줄이고 혈당 수치를 안정시키는 ‘전식이(Preload) 요법’과 체중 감량을 촉진할 뿐만 아니라 당뇨병·심장 질환·간 질환 등의 발병 위험까지 감소시키는 ‘GLP-1’ 계열 다이어트 보조제 복용 등 과학적으로 충분히 입증된 수단도 고려해볼만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