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래 들어 카자흐스탄에 대한 글로벌 네티즌들의 관심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아시아 여행의 중심축이 한국과 일본에 머물렀다면, 최근 온라인 공간에서는 카자흐스탄을 새로운 ‘이색 탐험지’로 꼽는 이들이 눈에 띄게 늘고 있다.
특히 영어권 인터넷 커뮤니티들에서는 카자흐스탄을 일종의 ‘새로운 트렌드’로 부르는 경우도 찾아볼 수 있다. 네티즌들은 끝없이 펼쳐진 초원과 자연경관, 구소련 시대의 건축물, 수도 아스타나의 미래지향적인 모습, 그리고 유럽과 아시아가 절묘하게 섞인 독특한 분위기에 찬사를 표한다. 이 지역이 내포한 문화적·외형적 다양성을 상징하기 위해 이들 사이에서는 이른바 ‘와시안(Wasian: White+Asian)’이라는 신조어가 빈번하게 사용되기도 한다. 이렇듯 카자흐스탄에 대한 국제적 관심이 높아진 배경에는 전세계 인기 크리에이터들의 활약이 주효했다.
일례로 ‘MegaAmerican’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미국의 콘텐츠 제작자 조슈아 플라티예로(Joshua Platillero)는 수백만 명에 달하는 구독자들에게 알마티, 아스타나, 바라보예, 망기스타우 등 카자흐스탄의 여러 관광지들을 생동감 있게 소개해 큰 호응을 얻은 바 있다.
그리고 이제 외국인들의 카자흐스탄을 향한 관심은 관광을 넘어 문화와 언어로까지 확장되고 있다. 특히 글로벌 인플루언서들을 중심으로 개인적 흥미에 기반한 카자흐어 독학 열풍이 불고 있어 눈길을 끈다. 이들은 SNS 채널에 카자흐 전통문화를 소개하고 어학 과정을 공유하며 카자흐스탄의 매력을 전 세계에 전파하는 중추적인 가교 역할을 해내고 있다.
카자흐 문화에 매료된 프랑스 여성의 이야기
사진출처: 개인 SNS
프랑스 파리에 거주하는 엘리즈 파케토(Élise Paqueto) 씨도 그중 한 명이다. 유튜브 영상을 통해 우연히 카자흐스탄을 접한 후 그 매력에 완전히 매료됐다는 그녀는 이를 계기로 카자흐 역사, 전통문화, 음악은 물론 언어 공부에까지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카자흐어와 문화를 처음 접한 순간부터 사랑에 빠졌어요. 한 민족을 진정으로 이해하려면 그들의 언어를 배워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것이 제가 카자흐어를 배우기로 결심한 이유이고요. 언젠가는 꼭 현지 원어민들과 장벽 없이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게 되길 바라요. 제게 카자흐어는 정말 아름다운 언어예요.”
엘리즈 씨는 카자흐어를 배우면서 새로운 문화를 접했을 뿐만 아니라 카자흐스탄의 전통과 풍습을 기꺼이 공유해 주는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고 전했다. 소중한 인연들 덕분에 전통 의상과 장신구도 직접 착용해 보고, 카자흐스탄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서도 한층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고.
“한 민족의 세계관은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에 그대로 투영된다고 확신합니다. 카자흐어 단어들 중에는 타 언어로 결코 온전히 번역할 수 없는 것들이 있죠. 그리고 카자흐어를 배우다 보면 자연의 아름다움과 계절의 변화를 시적으로 표현해내는 방식에 절로 감탄이 나오는데, 바로 이러한 부분에서 카자흐 유목민의 정신적 유산이 느껴져요. 카자흐스탄의 지역별 방언을 배워가는 과정 역시 무척 흥미롭습니다. 카자흐어를 배우기 시작한 덕분에 저는 카자흐스탄 사람들과 한층 진솔하고 자연스럽게 소통할 수 있게 되었고, 이 나라를 향한 이해의 지평도 훨씬 깊어졌답니다.”
엘리즈 씨는 지난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에 카자흐어를 독학하기 시작했다. 현재는 개인 채널을 통해 카자흐어 학습 과정을 공유하며 프랑스와 카자흐스탄 구독자 간의 소통을 돕는 유용한 언어 표현들을 소개하는 중이다. 또한 단순히 언어에 그치지 않고 카자흐 전통 요리를 직접 만들거나 전통 의상을 직접 입어 보이는 등 다방면에 걸쳐 문화적 가교 역할을 하고 있다.
한편 프랑스어를 모국어로 쓰는 입장에서 ‘R(키릴문자의 ‘Р’)’ 발음을 익히는 게 가장 어려웠다며 고충을 털어놓기도 한 파케토 씨. 어휘 또한 프랑스어와는 판이해 전반적인 어학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으나, 이러한 도전 자체를 즐기는 성격 덕분에 지치지 않고 학습을 이어올 수 있었다고 그녀는 자랑스럽게 이야기한다.
“카자흐어 문법과 문장 구조도 프랑스어나 영어와는 완전히 달라요. 카자흐어로 말하려면 어순에 따라 말 그대로 생각을 ‘거꾸로’ 해야 하는데, 사실 아직도 자연스럽게 되지는 않아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익숙해지기를 기대하고 있어요.”
그녀는 파리에 있는 카자흐 문화원에서 일주일에 한 번씩 초급 수업을 듣고 있다. 그 외에는 독학으로 새 단어를 외우고, 단어 암기 어플리케이션을 활용하기도 한다.
“평소 스레드(Threads) 플랫폼에서 카자흐스탄 사람들이 게시하는 포스팅을 자주 봐요. 관련 게시물들을 읽다 보면 카자흐어 환경에 자연스럽게 몰입하는 데 도움이 되거든요.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이 있으면 카자흐스탄 친구들에게 물어보거나 AI 앱을 활용해 궁금증을 해결하고 있어요. 예컨대 문장을 읽다가 문법 구조가 이해되지 않으면 AI에게 규칙을 설명해 달라고 하거나 추가 예문을 요청하는 식으로요. SNS에 영상을 올리는 것도 어학에 대한 동기 부여를 유지하고 카자흐어를 연습할 기회를 넓히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미국인 유튜버의 카자흐어 도전기
사진제공: Nazarbayev University
미국인 라켈 레이나겔(Raquel Reinagel) 씨는 올해로 카자흐스탄 생활 8년차를 맞았다. 현재 나자르바예프 대학교(Nazarbayev University) 예비과정 센터 선임 강사로 근무하며 개인 유튜브 채널 ‘Rocky Journeys’를 통해 현지 일상을 공유하고 있다. 그의 카자흐어 학습 구력은 약 6년.
“사실 카자흐스탄에 처음 왔을 당시에는 러시아어를 먼저 배우기 시작했어요.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카자흐어를 배워야겠다는 결심이 섰죠. 이러한 선택의 배경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습니다. 첫째는 내가 발을 붙이고 살아가고 있는 나라의 주권 언어를 배우는 것이 문화적 존중의 도리라는 생각이 들어서였고, 둘째는 신기하게도 개인적으로 러시아어보다 카자흐어가 훨씬 직관적이고 배우기 쉬웠기 때문입니다.”
라켈 씨는 Routledge 출판사의 교재 ‘Colloquial Kazakh for Beginners’로 독학을 시작했다. 이후 나자르바예프 대학교의 SSKES 프로그램에서 두 차례의 여름 강좌를 수강하며 실력을 키우기도 했다. 하지만 어학을 계속 이어나가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고 한다. 고급 카자흐어 학습자(C1 등급 이상)를 위한 교재가 시중에 거의 나와있지 않았기 때문.
“물론 카자흐어를 배우는 게 쉽지는 않지만, 사실 어느 언어든 새로 배우는 것 자체가 어려운 법이잖아요. 중요한 건 끈기를 갖고 멈추지 않는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이제는 카자흐어로 소통할 수 있는 수준까지 발전해 정말 기뻐요. 언어 덕분에 현지 주민들과 깊은 유대감을 형성할 수 있고, 제가 카자흐스탄과 온전히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거든요. 현재 제가 하고 일을 무척 사랑하는 만큼 앞으로도 카자흐스탄에 계속 살아갈 계획입니다.”
라켈 씨는 “카자흐어를 알면 카자흐스탄의 문화와 전통을 한층 깊이 이해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현지의 독특한 전통 중에는 언어의 뉘앙스를 모르면 온전히 체득하기 힘든 것들이 생각보다 많기 때문이라고.
“일례로 여러 행사나 잔치에서 행해지는 축사와 연설은 주로 카자흐어로 진행됩니다. 요즘은 러시아어를 쓰는 경우도 종종 보이지만, 카자흐어를 구사할 줄 알면 이런 공식적인 자리에서 어떤 깊은 담론과 대화가 오가는지 확실히 이해할 수 있죠.”
한편 언어를 배우는 과정에서 마주한 가장 큰 장벽으로 그녀는 카자흐어 특유의 ‘어미(접사) 체계’를 꼽기도 했다.
“카자흐어는 교착어(의미를 가진 접사들이 어근에 붙는 언어)이기 때문에 어미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거든요. 어미 하나만 잘못 선택해도 문맥과 단어의 뜻이 완전히 달라져 버리기 때문에 각별히 주의해야 합니다.”
“카자흐스탄 학생들이야말로 자국 최고의 외교관”
사진제공: weproject
현재 나자르바예프 대학교 인문학부 학과장으로 재직중인 미국인 가브리엘 맥과이어(Gabriel McGuire) 교수는 대학원 시절 우연한 계기로 카자흐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재학 당시 커리큘럼상 최소 두 개의 외국어 과목을 이수해야 했는데, 마침 카자흐스탄 출신 지인이 여름 학기 동안 카자흐어를 배워보지 않겠느냐고 제안한 것이 시작이었다고. 그렇게 우연히 접한 언어는 결국 그의 ‘인생 속 주 연구 분야’가 되었다. 현재 맥과이어 교수는 중앙아시아 문학을 다각도로 연구하고 있으며, 특히 민담과 구전 문학 부문에 깊은 학술적 관심을 두고 있다.
인디애나 대학교에서 학업을 마친 그는 카자흐스탄으로 건너와 알마티, 투르키스탄, 잠블 주 등지를 두루 거치며 카자흐어 학습을 이어 나갔다. 체류하는 지역마다 현지 가정에서 홈스테이를 했다는 그는, 마주쳤던 현지인들 모두가 이방인인 자신을 따뜻하게 환대하며 언어 습득에 아낌없는 도움을 주었다고 회상한다.
“영어 사용자의 관점에서 카자흐어 문법은 가장 매력적이면서도 동시에 가장 난해한 영역 중 하나입니다. 그럼에도 카자흐어를 배운 덕분에 현지인들과 소통하며 친구를 사귈 수 있었죠. 언어를 배우는 행위 자체가 사람들을 알아가고 가까워질 수 있는 훌륭한 방법이에요. 외국인이 자신들의 언어를 배우기 위해 시간을 투자했다는 걸 알면, 현지 사람들은 늘 진심으로 기뻐하며 무엇이든 기꺼이 돕고자 하거든요.”
그는 자신을 포함한 수많은 외국인이 카자흐스탄 사람들을 직접 마주하고 인연을 맺으면서 카자흐어라는 언어에 본격적으로 매료되기 시작한다고 말한다.
“카자흐스탄 사회가 교육을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는지 매번 깊은 인상을 받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카자흐스탄의 학생들이야말로 자국과 자국의 언어적 가치를 세계 무대에 알리는 최고의 외교관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카자흐어에 매료되어 카자흐 이름까지 갖게 된 중국인 유학생
사진제공: MNU
중국 란저우 출신의 쉬주밍(Xu Zhuming) 양은 란저우 대학교에서 국제법을 전공하는 학생이다. 그녀는 아스타나 소재 막수트 나릭바예프 대학교(Maqsut Narikbayev University)의 학점 교환 학생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처음 카자흐스탄 땅을 밟았다. 당시 카자흐어 수강은 해당 프로그램의 필수 이수 과목 중 하나였는데, 이것이 그녀가 카자흐어, 그리고 카자흐스탄 문화와 조우하게 된 계기였다.
“현지인들과 매일 부대끼고 소통하면서 언어가 곧 문화와 문화를 잇는 가장 중요한 다리라는 사실을 생생하게 느꼈어요. 카자흐스탄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 한번은 동기들과 쇼핑몰에 갔다가 무척 친절한 아주머니 한 분을 만났어요. 그분은 저희에게 싱싱한 딸기를 대접해 주셨는데, 언어 장벽 탓에 감사하다는 인사를 진심을 담아 직접 전하지 못했습니다. 이 경험이 제게는 큰 자극제가 되었고, 카자흐어를 제대로 배워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만들었죠.”
어학 과정에서 쉬주밍 양에게 가장 큰 장벽은 발음이었다고 한다. 기존에 익숙했던 외국어인 영어의 조음 구조와는 궤를 완전히 달리했기 때문. 새로운 발음 규칙을 체득하기 위해 남들보다 배의 시간을 투자해야 했다. 특히 혀를 강하게 굴려야 하는 ‘R(키릴문자의 ‘Р’)’ 발음이 까다로워 특정 단어들을 정확하게 구사하는 데 유독 애를 먹었다고 회상한다.
“카자흐어는 독특한 발음과 음운 체계를 지닌, 매우 아름답고 독창적인 언어라고 생각해요. 언어를 깊이 알아갈수록 카자흐스탄의 문화적 토양과 현지 사람들의 전통을 한층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되었죠. 무엇보다 이 언어 덕분에 카자흐스탄 사회 특유의 따뜻한 환대와 정을 온전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한 현지인 친구는 제게 ‘아름다운 마음’이라는 뜻을 가진 ‘아루잔(Аружан)’이라는 카자흐 이름을 붙여주었는데, 정말 마음에 쏙 들어요. 이름의 어감도, 그 안에 담긴 의미도 카자흐어와 그 문화가 지닌 고유한 아름다움을 느끼게 해주거든요.”
외국인들의 카자흐어 학습을 가로막는 걸림돌은?
한편 외국인 학습자들은 카자흐어를 유창하게 구사하기까지의 여정에 여전히 적지 않은 제도적·환경적 장벽이 존재한다고 입을 모은다. 앞서 소개한 엘리즈 파케토 씨는 학습 자료의 절대적인 부족을 가장 큰 문제로 꼽았다. 그녀는 “프랑스어 사용자를 위한 전용 교재가 전무한 데다 영어로 쓰여진 기존 자료들마저 매우 빈약해 독학에 한계가 따를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그녀의 경험상 터키어나 러시아어 기반의 학습 자료는 상대적으로 풍부한 반면, 프랑스어로 된 자료는 전무하다시피 하다는 것. 다양한 난이도의 현대적 교재와 이중 언어 도서,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등이 다국어로 다변화되어 출시되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의견이다. 아울러 외국인들이 글로벌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카자흐스탄의 원서나 서적을 쉽게 구매할 수 있는 인프라 조성도 시급하다고 덧붙였다.
“양질의 교육 콘텐츠가 더 많이 만들어져야 합니다. 물론 일부 뜻있는 개인들이 온라인 강의나 앱을 개발하고는 있지만, 이마저도 대부분 러시아어 사용자만을 타깃으로 하고 있죠. 그리고 또 한가지 - 과거에 제가 영어를 배울 때 영어 자막이 있는 영어 영화를 보며 자연스럽게 어휘력을 늘렸던 경험이 있거든요. 카자흐어 역시 같은 방식으로 학습하고 싶었지만, 카자흐어 자막이 제공되는 현지 영화나 영상 콘텐츠는 도저히 찾을 수 없었습니다.”
중국인 유학생 쉬주밍 양의 생각도 궤를 같이 한다. 대학을 비롯한 현지 교육 기관들이 외국인 학생들을 위해 지속 가능하고 접근성 높은 카자흐어 강좌와 단기 연수 프로그램을 대폭 확충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그녀는 특히 언어 학습과 문화 체험 활동을 유기적으로 결합하여 수업의 생동감을 극대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각종 SNS 플랫폼에 카자흐스탄의 일상과 전통, 역사를 다룬 이중 언어 영상 콘텐츠를 더 적극적으로 게시해 보다 많은 외국인들이 카자흐어의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아울러 카자흐스탄 청년들과 외국인 유학생 간의 정기적인 언어 교환 프로그램을 조직해 자연스러운 소통 환경을 열어준다면, 더 많은 외국인이 카자흐어 학습의 매력을 발견하고 동참하게 될 것이라는 게 쉬주밍 양의 피력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