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는 주변 네 나라가 모두 세계 최강대국들이다. 세계 지도를 훑어보면 이런 나라는 드물다. 대부분의 국가들이 국력이 비슷한 나라들끼리 이웃하며 살고 있지, 작은 나라가 주변국 모두를 세계 최강국들로 이웃하며 살고 있는 나라는 찾아보기 힘들다. 게다가 한반도 주변 네 나라 중 미국과 일본은 해양국가이고 러시아와 중국은 대륙국가이다. 과거 역사를 살펴보면 이들 해양국가와 대륙국가들은 국제정치 무대에서 서로 경쟁하며 다투어왔다. 19세기 내내 해양대국 영국과 대륙국가 러시아가 세계 도처에서 경쟁했던 것이 그 예다. 20세기 후반 냉전시대에는 해양국가 미국과 대륙국가 소련이 치열하게 부딪쳤으며, 21세기 초, 특히 2008년 미국발 세계금융위기 이후에는 다시 미국과 상승하는 대륙국가 중국 간의 경쟁이 고조되고 있다.

 

• 서울대학교 문리대 외교학과 졸업

• 미국 존스홉킨 대학(SAIS) 국제정치학 박사 

• 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교수

• 외교통상부 장관(2003-2004)

• 현재 서울대학교 명예교수(2016년-현재)

            윤 영 관 

지리적으로 이러한 해양세력과 대륙세력 사이에 끼어있는 한반도는 이들 간의 경쟁의 희생양이 된 적이 많았다. 예를 들어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했을 때는 해양국가 일본의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조선의 조정에 대륙국가인 ‘명(明)나라를 치러갈 테니 길을 비껴 달라(征明假道)’고 요구한 적이 있다. 1894년에는 청일전쟁, 1904년에는 러일전쟁으로 두 번씩이나 해양세력 일본과 대륙세력 중국, 러시아 간에 한반도 문제를 놓고 전쟁이 벌어졌다. 물론 그 두 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한 결과 조선은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하게 되었다. 1945년 태평양전쟁이 일본의 항복으로 끝날 때는 또다시 해양세력 미국과 대륙세력 소련간의 정치적 타협의 산물로 38선이 그어졌고, 한민족은 분단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그때 시작된 분단의 역사가 72년이 지난 지금도 지속되고 있고 갈수록 남북 간의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것이 오늘날의 안타까운 현실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체념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 통일의 목표를 향해 달려가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통일을 추구해나가야 할 것인가? 통일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차원의 과제를 풀어야 한다. 한반도 외부의 국제정치적인 차원과 한반도 내부의 남북관계 차원이다. 분단이 국제정치적 갈등의 결과물이기 때문에 분단 극복, 즉 통일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역으로 통일에 유리한 국제정치적 여건을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동시에 남북한 내부의 주민들 간의 통합을 향한 동력을 만들어내야 한다.

먼저 국제정치 차원, 즉 한반도 통일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게 될 동북아 국제정세를 살펴보자. 동북아 국제정세는 우리의 염원과는 달리 분단이 지속되는 방향, 즉 통일의 반대방향으로 원심력이 작동하고 있다. 예를 들어 한반도의 통일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중요한 것이 한국의 동맹인 미국과 한국의 이웃인 중국과 협력적인 분위기가 조성되어야 한다. 그런데 2008년 세계금융위기가 터진 이후 중국의 공세적인 외교가 강화되면서 미중관계는 협력보다 경쟁측면이 두드러지기 시작했다. 중국은 1979년 개혁개방의 시작이후, 고속 성장으로 커진 경제력에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이제는 좀 더 큰 정치적, 군사적 영향력을 국제무대에서 행사하기 위해 과거에 비해 공세적인 외교를 펼쳐나가고 있다. 미국은 이에 대응해서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그동안 행사해온 영향력을 잃지 않기 위해 도처에서 중국과 경쟁하고 있다. 예를 들어 오바마 대통령 때는 중동이나 유럽에서 아시아태평양 지역으로 미국 대외정책의 초점을 이동하는 이른바 재균형(rebalancing)전략으로 중국의 팽창에 대응했다. 동남아시아에서는 남중국해에서 중국과 미국이 대치하고 있고, 동북아시아에서는 바로 한반도에서 두 나라의 경쟁이 심화되고 있다. 이들 간의 경쟁이 강화되면 한반도 문제, 예를 들어 북한의 비핵화나 한반도 통일 문제 등을 놓고 서로 협력하기가 힘들어진다. 일본이나 러시아의 경우도 공식적으로는 한반도의 평화적인 통일을 지지하지만 그렇게 깊은 관심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한반도 통일을 지원하고 있지는 않다.결국 향후 한국의 외교 전략은 한반도 주변 네 나라가 지금과 같은 남북 분단으로 인한 긴장고조 상태보다 남북이 통일되는 것이 자국의 국가이익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여 통일에 협조적으로 나오도록 만드는 것이 될 것이다. 예를 들어 한반도 통일에 가장 소극적일 수 있는 국가가 중국이다. 중국은 북한을 한국과 한국의 동맹국 미국의 영향력이 북상하는 것을 막아주는 방파제 역할을 하기를 바래왔다. 이 때문에 중국은 그동안 북한에 대한 식량 및 에너지 지원을 계속해온 것이다. 

그러한 중국에게는 통일이 되어도 실제로 중국에게 해가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믿음을 심어주어야 할 것이다. 특히 주한미군의 휴전선 이북 주둔에 대해서도 상호 협의 하에 중국과 타협안을 모색할 수 있음을 밝힐 필요가 있다. 만일 통일이 되면 중국에서 상대적으로 낙후된 동북3성 지역이 통일이후 북한 지역에 대한 국제적인 투자 증대의 시너지효과로 함께 경제발전을 이룩할 수 있을 것임을 알려주어야 할 것이다. 러시아나 일본의 경우도 통일이후 북한지역에 대한 투자로 인한 경제적 이익을 강조하고 미국에게는 북한의 핵개발 문제, 인권 문제 등의 난제가 해결되는 것이 미국에게 이득이 될 것임을 주지시킬 필요가 있다.그러나 국제정치 차원에서의 통일외교만으로 통일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한 정치외교적 통일이 이루어지기 훨씬 전에 남북주민들 간의 교류가 심화되고 서로 통합의 방향으로 가려고 하는 구심력이 생겨나야 된다. 즉 통일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남북관계라는 두 번째 차원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세계 역사상 분단국가들이 통일되었을 때를 살펴보면 그 어느 경우도 이 두 번째 차원, 즉 사람들 간의 교류와 통합에의 구심력이 강화되지 않고서는 통일이 달성되지 못했다. 1861년 이탈리아의 통일의 경우를 보면 카부르(Cavour)라는 뛰어난 정치지도자가 있어서 국제무대에서 대국들을 상대로 통일 외교를 펼쳐나갔다. 그러나 동시에 마찌니(Mazzini)와 가리발디(Garibaldi)처럼 이탈리아 국민들 간의 통일 열망을 결집해낼 수 있는 사람이 없었더라면 통일은 힘들었을 것이다.

1990년의 독일 통일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 1989년 11월 9일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후 1990년 10월 3일 통일이 이루어지기까지의 1년이 채 못 되는 기간 동안 헬무트 콜(Kohl) 총리의 통일외교는 눈부셨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서독의 사민당의 정치지도자 빌리 브란트 (Brandt) 총리의 동방정책으로 1972년 동서독기본조약이 체결되고 그 후 일관되게 동서독간의 인적, 물적 교류가 진행되었다. 즉 동서독 주민들 간의 구심력 강화가 가능했고 이것이 동독 주민들이 적극적으로 통일을 찬성하고 나선 동력이 되었다. 즉 국제정치 차원의 통일외교와 민족내부 차원의 동서독 주민들 간의 구심력 강화가 서로 맞물리면서 통일이 이루어진 것이다.안타깝게도 지난 9년간 남북한 주민들 간의 인적교류는 거의 끊어지다시피 했다. 물론 여러 가지 이유들이 있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북한의 핵무기 개발 문제가 중요한 걸림돌이었다. 북한의 비핵화는 대단히 중요하다.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에 긴요하기 때문이다. 비핵화의 목표를 위해 한국 정부는 국제정치 무대에서 미국, 일본 등 국제사회와 협력해야 한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남북한 주민들 간의 교류협력을 최대한으로 살려나가기 위해 노력했어야 했다. 주민들 간의 교류협력은 통일을 위한 구심력 강화의 길이기 때문이다.

물론 비핵화의 목표와 남북주민들 간의 접촉의 면을 넓혀 구심력을 만들어나가는 목표를 동시에 추구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고 상당한 지혜가 필요한 과제이다. 더구나 지금은 북한에 대한 국제적 경제제재가 시행중이다. 그러나 그러한 와중에서도 정치군사적으로 덜 민감한 의료보건, 환경, 스포츠 분야 등에서 먼저 남북 간의 대화와 협력을 시작해야 할 것이다. 북한의 병원에 페니실린을 제공한다고 해서 그것이 핵무기 개발로 전용되지는 않을 것이다. 또한, 북한의 삼림 복원을 위해 남북이 협력한다면 그것은 환경생태계의 개선을 통해 북한 주민뿐만 아니라 한국 주민들의 삶까지 돕고 한반도의 미래에 투자하는 것이 될 것이다. 그러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통일을 이야기하는 것은 모래위에 성을 쌓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동북아 국제정치에서 험한 풍랑이 몰아쳐도, 남북한 간의 민간협력을 꾸준히 모색해나가야만 먼 훗날 통일이라는 항구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