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5년 노일전쟁후 일본은 조선을 자기 식민지로 만들었다. 그후 조선이라는 나라는 세계지도에서 완전히 없어지고 말았다. 일본인들의 탄압을 못이겨 많은 조선사람들은 노일전쟁 후에    살길을 찾아 로씨야원동지방으로  이주했다.  그러나 조선사람들의 이주는 그보다 훨씬 전인  19세기중업으로부터시작되었다고 말할수 있다.   그들은 차츰  쏘련원동지방에서 정착된 안전한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런데 쏘련정부는 원동지방에 사는 고려인들에게 일본의 간첩이라는 죄를 뒤집어씌웠고 가는곳 마다에서 공개적으로 증오하며차별하며 탄압하기 때문에 고려인들은 몹시 서러웠다. 고려인들을 천대하며 멸시하는것은 공식적인 국가정책이였을 뿐만아니라 나중에는 원동지방에 거주하는 약 20만명의 고려인들을 몽땅  다른 지방으로  내쫓기로  결정했다.  즉 1937년에 소수민족인 고려인들이 제일 먼저 원동에서 추방을 당하게 되었고 다음으로는 독일인,꾸르드인, 크림따따르인을를 비롯한 10여민족들이 자기가 살든 곳에서 다른 먼 지방들로  강제이주 를 당했다. 따라서 1937년은 지구의 6분의 1을 차지하는 넓은 땅에 거주하는 수백만명의 여러 소수민족들에 대한 대중적인 탄압의 해로서 쏘베트국가 역사의 한페이지를 차지하고 있다. 그와동시에 구쏘련에 거주하는  고려인 역사에서는  가장 비극적인 조항의 하나로 기록되어 있다.937년 가을의 그 어느 날이였다. 원동에 거주하는 모든 고려인들은 정부지령에 의하여  누구나할것없이 먼 다른 지방으로 이주 해야 하기 때문에 여러 날 먹을 식량, 생필품을 지참하고 3일후 기차정거장에 집합하라는 청천벽력같은 명령이 발포되었다. 사실상 이것은 강제이주명령이였다...이수정은 장기출장중인 남편 쎄묜을 대리하여 우선 가는 도중에 기차간에서 먹어야 할 식량을 준비했고 그외에 의복과 모포등을 등에지고 머리에 이고   두딸과 어린 아들을 데리고  정거장에 나타났다.이 때 이 기차정거장으로 모여드는 수천명의 고려인들을 군인들이 화물차안으로 안내했고 무장한 다른 군인들은  만일 고려인들이 강제이주를 반대하여 폭동을 일으키게되면 그것을 제때에 진압하기위해 멀리서 모여드는 고려인들을 포위하고  감시하면서  만단의 준비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그런데 강제이주를 당하는 수천명의 고려인들은  아무런 항의도  하지 않았고 돌하나 던지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순한 양처럼 군인들이 지정하는 화물차 안으로 들어갔다.

이수정은   두딸과 어린아들을  데리고 화물차에 올라탔고   등에 지고  머리에 이고온 짐을 한켠 구석에 부리고있을 때 어떻게 알았는지  장기출장중이였든 남편 쎄묜이  나타난 것이다.그런데 그들의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다. 화물열차가 출발하여 첫번째 역에 도착했을 때 안전원 몇명이 나타나쎄묜을 체포했고 그의 손에 수갑을 채우고 하차했다.쎄묜은 구역당 비서로 일했고 사회안전성의 특별  명령에 의하여 고등교육을 받은  똑똑한 고려인들이 인권을 주장하면서 강제이주기간에 시위를 조직하거나 혹은 폭동을 일으키는 일이 없도록하기 위해  강제이주가 시작되기 전에  미리 그들을 체포하여 일본간첩이라는  엉터리없는 죄를 뒤집어 씌워처리했던 것이다. 수년이 지난후에 알고 보니 쎄묜은 ''너도   일본간첩이며 똑똑한 놈이다. 예외는 아니다'' 라는 죄로 투옥되어 시베리아 어느 한 형무소로 후송되었고 영원히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이수정을 비롯한 고려인들을 실은  시베리아횡단 화물열차는 밤낮을 불문하고 거의 한달이상을 질주했다.그간 지참한 식량도 다 떨어젔고  굶어야하는 형편이였다. 그뿐만아니라  가축을 운반하든 이 화물차의 내부는 아주 비위생적이였고 고약한 냄새가 코를 찔렀을 뿐만아니라  어린이들과 늙은이들은 알수없는 전염병에 걸려 화물차간에서  여러명이 사망했다. 시체들을  매장할수 있는 기회가 없었기 때문에 철길 옆에 되는대로  던지고  부득이 떠나게 되었다. 이수정도 죽은 아들을 파묻지못하고  그냥  되는대로 던지고 떠나야 했다.그렇게 떠나는 이수정은 들짐승들이 아들의 시체에 다가오고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상상하니   가슴이 터지는듯 앞이 캄캄해지고 온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거의 정신을 잃은 이수정은  미친듯 소리를 치며 계속 주먹으로 차량바닥을 막 치면서 울고  또 울었다. 거의 기진맥진하여 우는 그녀의 울음소리는 그 어떤 알수없는 짐승의 울음소리처럼 들렸다. 이수정과 똑같은 처지에 있는 다른   고려인들도 다른 차간에서그렇게 통곡했을 것이다. 이  울음소리를  실은 시베리아횡단열차는  아무런 반응없이 넓고 넓은 시베리아광야를 계속 달렸다.   식량도 떨어져 그들은  모두 며칠식 굶었다 . 이윽고 기차는 기다리는  목적지에 도착했다. 하차명령이 내리자 고려인들은 자기 짐을 들고 모두 차에서 내리자 울음을 싣고 온 열차는 이번에는  울음소리를 여기에 남겨놓고 어디론가  떠났다. 지루했든 시베리아횡단철길은 고려인들의  눈물의 길이였고 슬픔의 길이며 치떨리는 원한의 길이였다.  

차에서 내린후 사방을 바라보니 동서남북은 무연한 초원이였고  저멀리에는 하늘과 맛닿은 감아득한 지평선이 보였을 뿐이였다.물론 마중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겨울이곧 온다는 것을 알리는듯 시베리아쪽에서 찬바람이불어와 불행한 고려인들의 뺨을 스첬다. 고려인들은 끼리 끼리 모여서 가지고 온 모포로  천막을 만들고 그안에서 우선 그날 밤을 보내고 다음 날부터는  어떻게 살것인가하는 생존계획을 생각해야 했다. 그런데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도 아무런 출로를 찾아내지 못했다.  이런상태로 며칠이 더 지속된다면 모두는 죽음을 면할수 없게 되리라는데 대해서는의심할바 없다.  배고파우는 아이들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그들에게 아무런 도움을 줄수없는  어머니들은 자식들이 불쌍해 같이 울었다.   이수정은  원동을 출발할 때 체포된 남편이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각오했다.그런데 오는 도중에 아들을 잃고 지금은 이 미지의 땅에서 두딸이 굶어 죽게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면 식구들을 다 잃게 되니 홀로 남은 자기는 이 세상에서 더살필요가 없다고 결심했다.. 

-세상살이가 까다러워도 이다지도 까다러운가...우리가 무슨 죄로 다 이렇게 비참하게 죽어야 하는가? 밤낮을  눈물로 지내며 하루도  눈을 감고 편안히 잠을 잘수가  없었다.  그날도   뜬눈으로 온  밤을 지새운 이수정은   아침 일찌기 천막  밖으로  나왔다.  그런데 하늘이 여느때보다  이수정앞을 특별히 환하게 비처주는듯했다.그런데 우연히 저 먼 지평선에서 말을 타고 이곳을 향하여  달려오는  사람들을  발견했다.  이윽고 그들은 천막앞에  서있는   이수정에게 다가 와 그들이 가지고 온 레뽀스까를  몇개 주었다. 고맙다는 뜻으로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묵묵히 레뾰스까를  받는  이수정의 두눈에서는   눈물이 비오듯 막 쏟아졌다. 이수정에게는 카자흐인들이 하늘에서 내려 온 천사처럼 보였다. 물론 다른 고려인들에게도 따뜻한 레뾰스까를 나누어 주었다. 그들은 우스또베농촌에서 온 카자흐인들이였다. 하늘이 문어저도 솟아날 구명이 있다는것은  이런 경우를 두고 말하는것인가 ?

이윽고 우스또베농촌에서 온 카자흐인들은 고려인들과  접촉하지말라, 도와주지말라는 정권의 지령을 무시하고 자기들의 발기로 고려인들을 도와주었던 것이다. 카자흐인들은 고려인들과 합의하여우선적으로  늙은이들과  아이들을 매개농촌집으로 안내하였고 주택이 부족한 조건에서 나머는 바스토베 언덕에 땅굴을 파고 월동해야 하였다. 카자흐인들은 힘이 자라는대로 모든 면에서 고려인들을 도와 주었다. 그리하여 지방 카자흐인들은 고려인들의 생명의 은인으로 되었다.겨울이 지나고 봄이 왔을 때 고려인들은 카자흐인들의 적극적인 원조하에 논밭을 만들고 조금씩 가지고 온 씨앗을 뿌렸다. 그리고 흙과 갈대, 짚을 이기어 집을 세웠고 학교도 건설했다.쏘베트정권은 고려인들이 다른 지방으로 이동하는것을  금지했고 고등교육기관, 즉 대학에 받아주지 않았았다.그리고 위대한 조국전쟁 시기에  군대에도 입대시키지 않았다.그러나 고려인들은 노동부대에 동원되어 광산 , 탄광들에서 힘든 육체노동을  했다.그러나 애국심이 강한 고려인들 중에는 여러가지 방도로 제 2차 세계대전에 참가하여 적군과 용감하게 싸운 사람들이 있다. 사후 쏘련영웅 칭호를 수여받은 민 알렉싼드르, 태평양 함대에 편입되어 웅기, 라진, 원산 해방전에 참가한  정상진 선생 기타 고려인들을 지적할 수 있다. 대일전쟁에 참가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차차 세월이 변하게 되자 당한 고려인들의 명예는 회복되었고 그 때 원동에서카자흐쓰딴과 중아시아로 강제 이주당한  고려인들을 포함하여  지금 구쏘련방에 사는 전체 고려인들은   인민경제의 여러분야들에서 아무런 민족차별을 받지않고  자유롭게 일하게되었 으며  특히 농업분야에서는  특별히 많은 고려인들이 사회주의노동 영웅 칭호 를  받았다.

이수정은 두 딸을 훌륭한 인재들로 자래웠다. 이수정 할머니는  아무런 근심걱정없는 편안한  여생을 보냈다. 

-나의 일생에서 가장 비극적인 순간 즉 죽음을 각오한 순간에 카자흐인들로부터 레뾰스까를 받는 시각, 그후 그들에게서 받은  사심없는 도움을 일평생 어찌 잊을 수 있겠습니까? 지금은 나사르바예브 대통령의 탁월한 다민족국가 정책에 의해 카자흐스탄에서  130여민족이 아무런 차별을 받지 않고 서로 이해하며  화목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때문에 나는 우리 자식들의 미래에 대해 조금도 근심하지 않습니다 – 이수정 할머니는 생존 때 항상 이렇게 말씀하였다. 다는것은 그의 다방면적인 활동으로 인한 탁월한 다민족국가정책의 결과인것이다. –라고 회상했다.이 기사는 이수정 할머니가 살아계실적에 하신 이야기를 필자가 좀 다듬어서 쓴 것이다.                                                                                                        

김종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