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세계대전 전야에  쏘련에서는  내부에 '' 잠복한 적들''을  탐지적발하는 국가안전사업이 강화됨에 따라  쏘련국경지대에 거주하는 고려인 소수민족에 대한 불신임이 커졌고 쏘련  원동에 거주하는 고려인들에게  큰 타격을 가했다. 

1937년 7월 7일에 일본군은 중국을 침략하는 청일전쟁을 개시했다. 이윽고 일본군은 만주일대를 점령하고 차츰 쏘련국경으로 접근하게 되리라는것을 예견한 쏘련정부는 이것을 동기로    1937년 9월에 쏘련 원동지방에서 고려인들을 단시일내에 카자흐쓰딴과 중앙시아로 몽땅 강제 이주시키기로 결정했던 것이다그 때 강제이주당한 이수정의 말에  의하면, 쏘베트정권은  강제이주가 시작되기 훨씬 전에 벌써 그에 대한 준비 공작을 차근 차근 실시하고 있었다는것이다.   러시아의 광할한 원동지방의 여러 도시들과 농촌들에 거주하는   고려인들을 몽땅 조사등록하는 동시에  심지어 공부하는 학생들까지 조사했다.  강제이주직전에 해야 할   준비사업이란 한마디로 말하면 만일 고려인 강제이주가 시작되었을 때 방해를 놀수있는 사람 , 혹은 방해가 될만한 사람들을 슬그머니 한명씩   내무서로 호출하며 총살해버리는것이다. 즉  고등교육을 받은 지식층에 속하는 똑똑한 사람들을 강제이주가 시작되기전에 미리 잡아 없애치우는것이다. 왜냐하면 이 똑똑한 사람들은  강제 이주를 반대하여 시위행진,  폭동을 일으키거나 혹은 심한 경우에는  무장폭동을  일으키게 되면  아주 복잡한 문제들이 많이 생기기 때문에 이 준비공작은  비밀리에 진행 해야 했다. 그 당시에 많은 유식한 고려인들이 총살당하고 (후에 알게 된 바에 의하면) 행방불명이 된 것은 모두가 이제는 아는 사실이다.1937년 가을에 원동지방에 사는 전체 고려인들은 한주일정도의  양식을 휴대하고  기차역에 집합하라는 명령이 하달되었다.이 때 이수정은 어린 딸 2명을 데리고 떠날 준비를 시작했고 이윽고 명령한대로 기차역에 나타나자 화물열차가 벌써 고려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쓰딸린과 몰로또브가 비준한 '' 원동에서 거주하는 고려인들을 중아시아와 카자흐쓰딴으로 강제 이주시킬데 대하여 '' 라는 쏘련정부의 결정에 의하여 쏘련 원동지방에 거주하는 17만 2천명의 고려인들이 1937년에  화물차에 실려이렇게 강제 이주당했던것이다. 쏘련정부가 고려인들을 원동지방에서 강제이주시키는 이유는 1905년에 있었든 노일전쟁 그리고 공민전쟁후    

로씨야원동지방에 거주하는 고려인들에게는  일본인들의 영향이 미치고 있었다는것이다. 고려인들을 실은 화물차는 여러날 시베리야횡단철도를 달렸다. 가축을 운반하던 비위생적인 화물차 안에서병에 걸려 죽은 사람들은 있었다. 이윽고 화물차가 종점에 도착했을  때 고려인들이 차에서 내린곳은 동서남북에 먼 지평선만이 아득히 보이는 허허벌판이였다. 차거운 시베리야북풍이 계속 불어오는 엄동설한에 얼마후이면 다 죽게 될 운명이였다. 배고파 우는 아이들의 울음소리,자식들이 불쌍해서 통곡하는 아낙네들의 울음소리가 무연한 카자흐스탄 초원의 지평선을 향하여  울려퍼젔다... 바로 이 때 먼 곳에서 들려오는 말발굽소리가 밤의 정적을 깨뜨렸다. 카자흐인 몇명이 말을 타고 나타났다. 고려인들은 생명의 은인들을 보듯 그들을 바라보았다. 카자흐인들은 우선 꼼꼼히 싼 헝겊속에서 레뾰스까를 꺼내여 고려인들에게 주었다. 이 때 이수정은  그것을 받으며 눈물을 흘렸다. 그들은 이 지방에 사는 카자흐인들이였다. 그들은 이 사람들이 원동으로부터 강제 이주를 당하고 카자흐스탄에 실려와 이 벌판에 버려진 고려인들이라는것을 알게 되었다. 안전기관은 고려인들과 접촉하지말라고 경고했지만 카자흐인들에게 한해서는 인간성이 정권의 위협을 앞선것이다. 그들은 긴급한 도움의 대책을 강구했고 우선 아이들과 늙은이들을 자기들의 아울로 데려가기로 했다. 주택이 부족한 조건에서 나머지 고려인들은 땅굴을 파고 월동하기 위한 조치를 취했다. 기후조선, 음식물 그리고 언어가 갑자기 변한 조건에서도 일부 고려인 가정은 친절한  카자흐인들의 덕택으로 한집에서 한집안식구처럼살면서 무사히 겨울을 지냈다.고려인들의 첫 정착지인 우스또베에 실려 온 고려인들은 카자흐인들의 크나큰 도움을 받으며 봄에  논밭을 개간하였고 주택, 학교를  건설하기 시작했다. 고려인들은 꼴호즈를 조직하여 임의의 농작물 생산에서 기록적 수확을 거두었다 .세월은 흘렀다. 쓰딸린이 사망한 후 카자흐쓰딴과 중아사아에 정착한 고려인들의 생활은 안착되었고 수준도 향상되어 갔다. 사회주의노동 영웅칭호를 받은 고려인들의 수는   200여명에 달했다는것은 고려인들이  쏘베트조국의 번영발전을 위해  헌신적으로 노력했다는것을 여실히 증명하고 있다.  또 고등교육을받은 고려인들의 비율도 다른 민족들에 비하여 훨씬 높다. 지금 카자흐쓰딴에 살고 있는 고려인들의 압도적인 다수는 1937년에 쏘련원동에서  강제이주당한 고려인들의 후손들이다. 그들은 물론 지나간 먼 시절에 대해 자기 할아버지, 아버지들이 겪은 슬픔많고 고생많았든 이야기를 듣고 알고 있다. 이수정 할머니도 생존 때에 자손들 앞에서 <지금 고려인들이 카자흐쓰딴에서 행복하게 살게 된것은 카자흐인들이 아주 어렵고 고난했든 강제 이주시기에 고려인들을   도와주었기 때문이라는것 “ 을 여러번 말했고  그 고마움을 절대로 잊어서는 안된다>는것을 강조하였다. 카자흐쓰딴의 고려인들은  나자르바예브대통령의 탁월한 다민족국가정책을 적극 지지하며 100여민족이 사는 카자흐쓰딴의 인민경제의 여러 분야들에서 민족간친선을 가장 소중히 여기며  선배들의 유훈에 충실하며 이상 세대가 그랬듯이 카자흐쓰딴 번영발전에 보람있는 기여를 계속 하기 위해 전력을 다하고 있다.                                                                

                                                                                               김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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