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기 민주평화통일 자문회의 활동이 종반에 들어서면서 중앙아시아 협의회에서는 향후 추진해야할 중요사업에 대해 논의를 하고 있습니다. 남북한의 분단 상황과 문제를 고려인들에게 계속 알리는 사업과 중앙아시아 고려인들이 잊혀 진 모국어(한글)를 자발적으로 배우는 고려인 사회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우선 과제입니다. 아울러 우리는 <구 소련 정부의 지시로 북한 국가 건설에 참가한 소련 고려인들의 역할>이라는 제목의 기록영화를 제작하기 위한 새로운 프로젝트를 추진할 것입니다. 기록영화 제작과 함께 <고려일보>에 같은 제목하에 기사들을 싣기로 계획하고 있으며, 그 기사들이 다 게재되면 책으로 발간하는 것도 고려하고 있습니다.

 

이 프로젝트 추진을 위해 관련기관과 단체로부터 예산을 확보할 계획이며, 이후 월단위로 추진계획을 수립하여 추진하면 한국전쟁 종전 65주년이 되는 해에는 프로젝트가 완료될 것입니다. 이 프로젝트는 추진할 수 있다고 확신하며, 여기에 국제 전문가 그룹이 참가할 것입니다.  학자, 시나리오 작가, 고문서 담당자, 기자, IT 전문가, 촬영가, 번역요원, 몽타즈 전문가들이 참가할 것입니다. 기록영화는 러시아어로 제작할 계획이며 한국어와 영어는 자막으로 나올 것입니다. 고려인 강제이주 80주년을 맞이하는 해에 이런 기록영화를 제작함으로서 소련의 강압체제하에서 디아스포러로서 주어진 의무를 성실히 수행하면서 북한에서 죽거나, 구소련지역(러시아, 중앙아시아 등)으로 되돌아 온 사람들을 회상하고 북한에서의 활동과 삶의 진실을 밝히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필자의 컴퓨터에 있는 많은 문서철 중 하나가 <소브꼬르(소련고려인들) 세브꼬르(북한에서)>에서 라는 명칭을 달고 있는데 거기에는 이미 20년간 하나하나씩 수집해 놓은, 역시에 알려지지 않은 소련 고려인들, 즉 북한의 국가 건설과 한국 전쟁에 참가한 고려인들에 대한 자료들이 수집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명칭을 부쳤습니다.그런데 이 사연은 <카자흐스탄 고려인들의 역사와 문화>라는 단행본으로 만드는 것이 90년대 중순에 시작되었습니다. 저의 동료인 명 드미트리 교수가 서적 발행을 위한 지원금을 한국 대사관에서 받았으니 함께 공동 단행본을 준비하자는 제의를 했습니다. 우리는 토의한 후 필자의 학사논문 내용과 고문서 자료들(나의 자료는 국립 중앙 고문서 자료, 명 드미트리 교수의 자료는 공산당 고문서 자료)이 단행본의 기본을 이루어야 한다고 결정했습니다. 이렇게 하여 남부 사할린과 북한으로 특별 출장을 보내기 위해 선발된 고려인들의 명단이 책에 나타난 것입니다. 그런데 시간상 관계로 그 일에 손을 댈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1998년에 브리티쉬 콜롬비아(벤쿠버) 대학교에서 있었던 국제회의에 초청되었을 때, 필자는 <Stereotypes of Soviet Historiography and Topical Problems of the Study of the History of Korean War>이란 내용의 자료를 준비하여 회의에서 발표하였습니다. 잘 알려지지 않았으며 소련 시절에는 비밀로 되어 발표가 금지되어 있던 내용, 즉 한국전쟁에 소련 고려인들의 참가, 소련의 역할 등 이에 대한 연구의 필요성을 주장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소련의 금지 조치가 미국 사료편찬에는 상관이 없었기에 이에 대한 연구가 한국계의 미국 교수들인 이정식, 오기완, 서재숙 교수 등이 연구를 하고 있었습니다. 이정식과 오기완은 1968년 봄에 <Asian Survey> 잡지에 <The Russian Faction in North Korean> (<북한의 소련파>)이란 기사를 실었습니다. 그들은 주로 미국 국방부 자료에 의거하여 소련 고려인들의 역사에 대한 일반적 자료와 동시에 북한 사회주의 건설에 소련 고려인들이 참가하는 것을 전반적으로 묘사했습니다.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 및 글라스노스티> 정책이 한창이던 20년이 지난 후에 하와이 대학 한국학 연구소 소장인 서재숙 교수가 <북한에서의 소련 고려인들>이 보다 구체적 명칭을 단 글을 게재했는데, 그것은 그의 편집 하에 발행된 <소련의 고려인들>선집에 들어갔습니다. 필자는 운이 좋아 존경하는 서재숙 교수님과 1992년에 서울의 재외동포재단 사무실에서 만났습니다. 필자는 그때 교수님이 필자에게 필요한 책들을 보내 주리라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알마티에 돌아와 보니 무거운 소포가 필자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거기에는 그간 하와이 한국학 연구센터에서 연구한 외국에 사는 한인들, 북한 공산주의 운동과 소련 고려인들에 대한 자료가 들어 있었습니다.

냉전시기에 소련과 북한은 북한의 정치, 경제, 문화, 그리고 군 창건에 소련 고려인들의 기여에 대해서 침묵하였습니다. 2권으로 발간된 <조선역사>에는 판문점에서 있었던 휴전회담에서 남일 장군이 북중 대표단의 대표라고 언급되었는데, 남일 장군이 소련 고려인이라는 것을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가 없습니다.

한국전쟁 후 모든 자료에서 남일이란 이름이 나타나며 많은 연구자들이 그의 이름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남일이 소련에서 태어났으며, 소련의 지시를 받고, 남 야코프 페트로비치란 이름으로 1946년에 우스베키스탄에서 평양으로 파견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합니다.

김 게르만 – 건국대 (서울) 역사강좌 교수,

중앙아시아 연구 및 협력 센터 소장, 17기 민주평화통일 자문회의 중앙아시아 협의회 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