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마티시의 남쪽에 위치하고 있는 샤쉬끼나 거리에는 화목한 한 가정이 살고 있다. 남편은 고려인이고 부인은 러시아 사람인데 맏딸은 출가하여 따로 살고 있고 둘째딸은 대학을 졸업하고 아직 부모들과 함께 살고 있다. 그들의 집이 필자의 집 근처에 있으므로 나는 그들을 자주 만나게 된다. 남편은 아침에 출근하고 저녁에 퇴근함으로 별로 만나지 못하지만 부인과 둘째딸은 매일 만난다. 그들은 항상 정중히 인사하므로 내 마음에 들었다. 그리하여 나는 그 가정에 대하여 <고려일보>에 소개할 목적으로 취재하기로 하였다.

가장인 황 윅또르 레온찌예비치는 이제 환갑나이도 지났지만 아직 근무하고 있다. 현재 그는 난방시설의 전문가로서 일하고 있다. 그는 안해 왈렌찌나 찌모페예브나와 화목한 부부생활을 하면서 딸애 둘을 키워 고등지식을 소유하도록 뒤받침해 주었다. 

윅또르 레온찌예비치는 1948년에 우스베키스탄의 이스끼 까우르치 촌에서 출생하고 1950년에 부모들을 따라 카자흐스탄의 잠불주 마르크스 촌으로 가서 1955년부터 학교에 다니기 시작했다. 1958년에 그의 아버지가 알마아따로 전근되었으므로 윅또르는 여기서 1966년에 중학교를 졸업하고 잠불대학 건설학부에 입학하였다. 대학을 졸업한후 그는 알마아따의 남방시설 관리부문에서 근무하였다.

윅또르 레온찌예비치는 난방시설 분야를 완전히 꿰뚫고 있으며 능숙한 지도자로 부하들의 존경을 받고있다. 공화국의 상기 분야에서 일하는 일군들중 그처럼 국가의 고상한 평가를 받은 난방시설 분야 일군이 없을 것이다. 그가 수여받은 국가표창이 이것을 말해 준다. 2013-2015년 기간에 그는 카자흐스탄공화국의 경제발전에 한 큰 공로로 <영광의 별: 카자흐스탄경제> 훈장, <카자흐스탄 명예>훈장, <카자흐스탄의 자랑>훈장들로 표창되었다.

윅또르 레온찌예비치의 아버지 황 레온찌 까삐또노비치 (항일투사 황경섭의 막내 아들)는 1917년에 연해주의 니꼴쓰크-우수리쓰크시에서 탄생하여 어린나이에 부모들을 잃고 누이의 집에서 자랐다. 초중을 졸업한 후에는 레닌그라드의 전문학교에서 공부한 다음 연해주의 이르쬼시에서 일하다가 그 시기에 카자흐스탄으로 강제이주되었다. 그러나 모든 난관에도 불구하고 그는 공부를 계속하였으며 1945년에 우스베키스탄의 사마르깐드시에서 농업대학을 졸업하고 1950년부터 카자흐스탄의 여러 농업부문 기관들에서 근무했다. 은퇴히기 전에 그는 카자흐스탄 인민통제위원회에서 일했다. 책임성이 높고 맡은 일을 성실하게 하는 레온찌 까삐또노비치는 이 품성을 아들에게 넘겨주었다. 그 역시 레닌훈장을 비롯하여 쏘련의 여러 가지 표창이 수여되었다.

황 윅또르 레온찌예비치는 탁월한 항일투사인 할아버지 황경섭의 손자답게 일하며 살고 있다. 그의 할아버지는 상인으로 니꼴스크-우수리스크시에서 살면서 반일투쟁에 적극 참가하여 빠르찌산들을 재정적으로 지원하다가 1920년 4월 참변시에 비참하게 총살당했다. 그 날 일제는 고려인 항일투사들을 블라디보스톡 <한민학교>마당에 내 몰아 혹독하게 처단하였다. 황경섭에게 사후 대한민국의 최고 정부표창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