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의 학창시절 때에는 성냥갑, 배우들의 엽서, 휘장 그리고 우표를 수집하는 것이 유행이었지만 정작 우표수집 애호가는 소수였습니다. 그래서 아마 저 역시 우표수집가에 속하지 않았다고 하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그런데 나의 책꽂이에 우표 앨범이 두어 개 있었던 것이 기억납니다. 하나는 소련 우표 또 다른 하나는 외국 우표였습니다. 소련 시대에는 우표 값이 쌌습니다(몇 코페이카 수준). 외국우표란 주로 몽골, 동독, 폴란드, 불가리아 즉 다시 말해서 사회주의 국가들의 우표였습니다. 우표들을 매점에서 살 수 있었는데, 북한 우표는 아주 드물었으며 저는 본적이 없습니다.

필자가 어렸을 때에는 우표가 우편물을 보내는 데만 필요하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었습니다. 대학에서 공부할 때 어느 교수님이 말하기를 화폐, 지폐 및 우표수집이 비단 동전, 지폐 혹은 우표 자체만을 수집하는 것만이 아니라, 역사 연구에 도움을 주는 중요한 자료라고 했습니다. 이런 이유로 북한의 통일 상징물 및 선전활동에 대한 기사를 끝내면서 오늘의 주제를 생각해낸 것입니다. 

필자는 얼마 전에 인터넷에서 발견한 남북한 우표들을 별도로 저장해 놓았습니다. 남한 우표가 북한 우표 보다 많기에 먼저 북한 우표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 하겠습니다.

한반도가 일본으로부터 해방된 후 미 군정은 과거 사용하던 일본의 식민지 우표에 <조선우표>라는 도장을 찍어 재사용했습니다. 한반도의 분단이 확정되자 남과 북은 각각 독자적인 우표를 발행하기 시작했는데, 그것은 외관상톱니모양도 아니고, 뒷면에 풀이 붙어 있지 않는 것으로 현대 우표와는 많은 차이가 났습니다.

북한에서는 우표가 우편물 배달이라는 기능 외에도 처음부터 주민을 선동 하고 선전 과업도 수행했습니다. 필자의 가까운 동료인 로스 킹 교수가 이에 대해 재미있는 기사를 썼는데, 제목은 <작은 규모의 기념비: 우표의 성상화와 북한정부의 상업활동>으로 북한의 우표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1970년대 중순부터 북한은 우표발행을 증가하여 수량면에서 남한을 앞섰습니다. 주제도 놀라울 정도로 자주 바뀝니다. 그 다양성이 감탄스러울 정도였으며, 이는 외국 우표수집가들의 주목을 끌었습니다. 동물, 식물, 스포츠, 예술, 역사적 인물, 기술, 기념일 등 수집가의 취향과 주제에 따라 우표를 수집할 수 있었으며, 게다가 북한 우표들의 디자인과 인쇄 기술은 다른 나라들의 우표에 비해 뒤떨어지지 않았습니다. 북한은 외국에 판매하기 위해 아주 품질이 좋고 화려하게 장식된 우표들을 발행한 것입니다. 알고 본 즉 이것은 외화벌이에 좋은 사업이었습니다. 아래의 표에서 연도별 지표를 비교해 볼 수 있는데 1970년대 중반부터 북한 우표들이 더 많이 발행되었습니다.

북한 지도자의 초상화, <주체>와 <선군> 사상에 대한 홍보, 사회주의, 군사력과 정신력, 통일된 조국 등이 북한 우표의 기본적인 선전 및 선동의 기본주제입니다. 한반도 통일 주제도 북한의 우표들에 반영되었는데 발행 연도로 보아 남북간의 관계가 개선된 시기입니다. 왜냐 하면 우표의 도안에 이러한 점이 반영되었기 때문입니다.

필자가 발견한 <통일>이란 특별우표 세트는 북한에서 1961년에 발행한 것이었습니다. 그 우표에는 기관차(왠지 연기가 나지 않는), 트랙터와 자동크레인이 도안되어 있고, 그것들은 <평화통일>이라고 쓰인 붉은 깃발 아래에서 분계선을 뚫고 앞으로 나가는 묘사를 하고 있습니다. 이 우표에는 탱크, 대포, 폭탄, 로켓도 없는 완전한 평화스러운 분위기입니다.

2000년에 있었던 김정일과 김대중의 회견, 2007년에 있었던 김정일과 노무현의 회견은 보통 우표와 수집가를 위한 우표셑트로 발행 되었습니다. 평양 공항에서 촬영한 사진에는 김정일이 공항에서 <햇볕 정책>의 발기자인 김대중 대통령의 손을 두 손으로 잡고 인사를 하는 장면과 전임자의 정책을 지속 추진하였던 노무현 대통령과는 한 손을 잡고 인사하는 장면이 우표에 묘사되었습니다.

 

남북한이 1972년 7월 4일에 서명한 것을 기념하여 건립한 <조국통일 3대 헌장 기념탑>과 6.15 공동선언, 외세의 간섭 없이 <우리 민족끼리>라는 구호가 우표의 도안으로 자주 등장하는데 이는 자주적 조국통일의 상징이 되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개선문 사진과 숫자 6.15가 엽서, 사진, 잡지와 우표 등 다시 말해서 그 어디에나 다 묘사되었습니다.

남북한의 관계가 긴장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역사적으로 형성된 한민족이란 감정은 국제 축구경기에서 다른 국가 팀들과 경쟁할 때 관객들의 응원(물론 남한과 북한축구팀간의 경기시는 예외)에서 나타났습니다. 남․북한 간에 있었던 경기 중에서 1990년 10월11일에 평양에서 개최된 경기 하나만이 우표에 반영되었는데 그 경기는 2:1로 북한팀의 승리로 끝났습니다. 북한 축구팀의 승리를 기념하여 발행한 우표들은 수집가들을 위해 발행되었습니다.

통일을 주제로 한 북한의 다른 우표로는 <통일 공연>과 통일 행군 등을 들 수 있는데, 이 행사들은 북한 정부와 문선명 목사의 <세계 통일교>의 지원을 받은 국제사회단체 <범민련>이 주도했습니다. 

문선명 목사는 후원자로서 북한을 지원했고 공식적으로 북한과 관계를 맺고 있었습니다. 

남북이 똑 같은 입장을 취하는 하나의 주제가 있습니다. 이는 일본이 자기의 영토라고 주장하는 독도(일본은 이 섬을 ‘다케시마’ 라고 칭한다)에 관한 것입니다. 독도에 대한 우표는 남․북한 모두 발행했습니다. 그런데 남한 혹은 북한 그 어느 쪽이 먼저 발행했는지 아직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생각이 깊은 독자는 필자의 다음 기사가 남한의 우표에 대한 것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논리적으로 이런 생각은 당연한 기대입니다. 그런데 필자에게 보다 적절한 주제가 나타났습니다. 그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다음번 기사에서 알아보실 수 있을 것입니다.

김 게르만 – 역사학 박사, 건국대 역사강좌 교수,

중앙아시아 연구 및 협력 센터 소장,

제 17기 민주평화통일 자문회의 중앙아시아 협의회 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