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기사를 주의 깊게 읽는 독자가 기억한다면, 필자는 지난 기사에서 통일에 관련된 정책과 실천적 대책 강구에 대해 책임을 지는 기관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이는 세계의 그 어느 나라에도 없는 유일무이한 기관인 통일부입니다. 그러면 이런 정부기관이 북한에도 있는가 하는 질문이 생깁니다. 왜냐 하면 조국통일이 북한의 대외정책 중에 하나로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에 관련된 정보가 빈약한 관계로 어디에서 누가 북한의 통일개념을 수립하는가, 그리고 남북한의 관계 상황이 무엇에 달려 있는가, 그리고 두 나라간 경제, 문화 및 인문학적 쌍방관계가 어떻게 발전할 것인가에 대한 여러 가지 추측이 가능하게 합니다.

북한에서는 모든 중요한 국가 결정을 위대한 수령 다음에는 수령의 아들인 친애하는 지도자 그리고 지금은 수령의 손자가 채택한다고 판단됩니다. 이것을 반박하기가 어렵습니다. 왜냐 하면 형식적으로 집단적 사고와 의사를 표현한다는 조선노동당 대회도 36년 동안이나 소집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구 소련시대의 경험에 의하면 이런 행사의 일정, 결과보고, 결의와 결정을 수령들이 작성하는 것이 아니라 미리 다 작성된 것을 서류철에 넣어서 줍니다. 물론 수령들과 사전에 합의를 한 후 모든 지시를 집행자들에게 합니다. 그러면 북한에서는 조국통일에 대해 누가 책임을 지는가 알아보기로 합시다.

이를테면 라틴어로 <ab ovo>부터 다시 말해서 문자 그대로 <계란>부터 시작해야 하겠습니다. 왜냐 하면 고대 로마인들이 먼저 계란부터 먹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소련이 승리함으로써 사회주의 국가들의 동맹이 만들어졌고, 또한 공산주의의 승리가 가까운 것으로 생각하였습니다. 마오쩌둥과 김일성은 한국 주민들이 북쪽에서 오는 <해방>을 반갑게 맞이할 것이며, 이제는 붉은 별의 기치 하에 나라가 또다시 통일된다고 스탈린을 설득시켰습니다. 3년간 계속된 동족상잔은 그 어느 한 측에도 승리를 가져오지 않았으나 1960년 말기까지 위대한 지도자 북한 수령은 중국 맏형의 지지 하에 박정희 정부를 강압적으로 타격하는 등 남한에 북한의 국가정치제도를 세우려는 의지를 버리지 않았습니다.

냉전이 끝나고 소련의 붕괴에 뒤이어 바르샤바 동맹이 와해됨에 따라 북한은 무력으로 나라를 통일하려는 전략에서 남한과 대화를 하는 것으로 전략을 수정했습니다. 1990년대 말에 한국과의 접촉이 현저히 확대되었고 고위급 수준의 회담이 진행되었으며 일련의 중요한 조약과 협정이 체결되었습니다.

북한의 수정 헌법(1998년)은 국가대외정책의 기본 원칙을 확정하는 최고입법기관 즉 최고인민회의,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외교관계에서 국가를 대표하는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장의 권한을 포함하였습니다. 대외정책의 실행은 북한 외무성의 특권으로 되었는데 외무성은 그의 구조와 임무로 보아 세계의 다른 나라들의 대외정치국과 같습니다. 하긴 북한 외무성에 통일 문제를 다루는 특별 통일부서가 존재했지만 그것은 주로 북한의 주장을 선전하는데 그쳤습니다.

한반도 문제를 연구하는 러시아 학자 발레리 데니소프가 옳게 지적했듯이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국제부가 한반도 통일분야 정책의 기본 수립기관으로 되었는데 조선노동당 국제교류를 맡았던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비서 황장엽이 남한으로 귀순(1998년)한 후에 그 국제부의 역할이 현저히 약해졌습니다. 거의 다 와해된 부서를 김양건이 복구했는데 그는 김정일의 신임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후에 김양건이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비서로 되었고 2007년부터는 조국평화통일 위원회 위원장의 직책을 맡았는데 상기 위원회를 남한과의 관계에서 북한의 정책을 책임지는 기본 기관이였습니다. 김양건은 서울을 여러 번 방문했으며 그는 한국과의 관계에 대해 책임을 지는 김정은의 측근 중 한 사람이였습니다. 그는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위원이고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이며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비서이고 통일유일전선 지도자로서 몇 가지 직책을 겸직했습니다. 2016년 새해 전야에 조선중앙통신은 김양건이 교통사고로 뜻밖에 사망했다는 보도를 전했습니다. 사고시간과 그의 사망 원인의 상세한 부분이 일반 사회에 알려지지 않았지만 장례식은 경의를 표하여 거창하게 진행되었습니다. 

한국에서는 이명박 대통령 정부가 수립됨에 따라 북한과의 상호관계에서 자유주의적 태도 그리고 로켓-핵 프로그램과 북한 인권 상황 면에서 엄격한 입장을 취했습니다. 이것은 북한의 신랄한 반응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이명박 정부가 통치하는 시기에 햇볕 정책이 <냉전>의 새로운 시험대에 올랐으며 남북한 관계에서 그간 이룩된 모든 성과가 물거품이 되고 말았습니다.

현존 헌법에 따르면 북한은 남과 북의 정치-사상적 모순, 경제체제의 차이를 불구하고 외부 세력의 간섭이 없이 평화로운 방법으로 국가를 통일할 것을 주장합니다. 남한과 북한의 현존 사회정치 제도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통일된 연방국가를 수립한다는, 김일성이 제기한 주장을 북한의 통일 개념으로 확립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연방 안은 한국에 적합하지 않습니다. 한국은 이 방안이 북한에게 일방적인 이익으로, <1국 2체제>원칙에 따라 연방국가를 수립하는 것은 비현실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통일에 관한 북한의 제안을 추진시키는 국가기관이 있는데 그것은 1946년에 수립된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입니다. 이 기관은 북한의 모든 정당과 사회단체들을 연합합니다. 남북한 관계에서 많은 실천적 문제를 김양건이 지도한 아시아-태평양 지역 조선평화옹호위원회가 해결하며 이산가족 상봉과 인도주의적 원조 조직 문제들은 북한적십자협회가 해결하는데, 적십자협회는 2008년 11월까지 판문점에 연락사무소를 두고 있었습니다. 남북한 관계가 악화됨에 따라 북한 인원이 모두 철수하였고 판문점을 거쳐 연결된 직통전화 연락도 끊겼습니다.

금년 봄에 진행된 조선노동당 제7차 대회에서 김정은은 자주적이고 자립적인 통일 그리고 고려민주주의연방공화국 수립 정책의 불변성을 확인했습니다. 또한 그는 북한을 반대하는 남한의 침략이 있을 경우에 무력을 사용하여 남한과 통일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고 북한 인민에게 호소했습니다.

당 대회에 이어 진행된 북한 최고인민회의 회의에서 통일에 관한 북한의 정책이 변하지 않고 그대로 채택되었습니다. 또한 그 회의에서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서기국>을 <조국평화통일공화국 위원회>로 개칭하는 것으로 결정되었습니다. 한편으로는 한국의 대통령 선거 전에 그리고 대통령 교체와 관련하여 북한과의 관계를 정상화하기 위해서 그간 북한에 취하였던 남한의 엄격한 입장이 바뀔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북한 역시 예비 조건을 주장하는 바 그 조건 실행 시에 핵-로켓 프로그램을 멈출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남한으로부터 미군을 철수시키고 미국과 평화조약을 체결하며 외부의 간섭이 없이, 이를 테면 <우리 민족끼리> 다시 말해서 <남한 사람과 북한사람들끼리> 협력하고 통일 문제를 해결하자는 것이 북한의 선결 조건입니다. 북한의 모든 선전과 조국통일정책 추진이 이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다음 기사는 이와 관련된 것입니다. 

김 게르만 – 건국대 역사강좌 교수, 중앙아시아 연구 및 협력 센터 소장, 

 

제 17기 민주평화통일 자문회의 중앙아시아 협의회 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