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개최된 북한 조선노동당 제7차 대회와 그 이전의 대회 간에 36년이란 시간이 흘렀습니다. 조선노동당 제7차 대회는 전례 없는 주목을 끌었으며 출판물과 인터넷에서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게다가 러시아어를 사용하는 기자들은 북한의 마지막 당 대회가 있은 후 40년 또는 35년이 지났다고 하면서 숫자를 자주 틀리게 사용했습니다. 그 기자들이 혹시 끝자리 수를 그저 잘라버렸는지 모르지만, 하긴 그 숫자가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달리 말하면 북한의 김일성 수령이 당 군사 간부(노멘클라투라)를 마지막으로 모이게 한 때로부터 수십 년이 지났습니다.

필자가 보기에 1956년 4월 다시 말해, 60년 전에 진행된 조선노동당 제3차 대회를 먼저 회상해 보아야 합니다. 김일성의 완전한 행정적 승리가 상기 대회의 결과로 되었습니다. 이때 김일성 정권은 절대적인 것으로 되었는데, 왜냐 하면 그가 다른 당파들을 밀어내고 당 및 국가 기구를 완전히 자신에게 복종시켰기 때문입니다. 이 대회는 승자의 대회로 역사에 기록되었습니다. 또한 조선노동당 제6차 대회 역시 역사에 남았습니다. 그것은 바로 그 대회에서 김일성은 처음으로 자신의 후계자로 아들 김정일을 국민에게 발표했기 때문입니다. 일부 기자들은 금년 5월 초에 있었던 조선노동당 제7차 대회도 역시 승자의 대회라고 칭했습니다. 이번에는 북한의 영생불멸 수령의 손자이며 친애하는 김정일 지도자의 아들인 김정은이 승자가 되었습니다. 손자는 군대, 당 및 국가의 모든 권력을 자기 손에 장악했습니다.

36년 만에 조선노동당 대회가 개최한다는데 대해 2015년 가을의 세계 언론계는 열렬한 토론과 변동의 기대에 대해 보도하면서 무엇보다도 그 대회가 무엇을 가져올까 하는 추측이 다수였습니다. 당 정책과 국가 경영에 대한 이미 낡은 실천으로 왜 되돌아가는가 하는 질문을 다수가 했습니다. 시대착오로 된 대회가 사회주의 건설의 성과에 대한 상징으로 필요한가? 당과 인민의 확고부동한 통일의 상징으로서 그 대회가 필요한가? 그 대회가 서방에 대한 위협으로 그리고 온 세계가, 아니면 하다못해 일부 국가에서 공산주의 승리의 선전용 연단으로 필요하단 말인가? 

보건대 때때로 전원회의와 당 협의회가 소집되기는 했지만 북한은 대회 없이 지냈습니다. 말이 났으니 말인데 금년에 진행된 조선인민군 4월 당 회의에서 김정은이 조선노동당 제7차 대회 대표로 추천되었습니다.

전문가들은 최고 당 대회를 소집하는 기본 원인이 젊은 북한 지도자 김정은의 모든 권력을 합법화하고 국가의 정치 및 군사 체계 관리의 모든 수단을 김정은에게 공식적으로 넘겨주는데 있다고 일치된 의견을 표명하고 있습니다. 게오르기 톨로라야가 지적했듯이 <대회가 ‘김정은 시대’의 출발을 공식화하는 것이 처음부터 명백했습니다.>

 

조심스러운 그 어떤 변동에 대한 기대와 희망도 허사였습니다. 그러나 북한 자체와 이 나라 국민에게 있어서 이번 대회가 역사적 의의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60년이 지나 모든 것이 다시 제 자리로 되돌아 왔습니다. 7차 대회는 1956년 대회에서 승리를 쟁취한 김일성의 위상을 2016년 대회에서 자기 할아버지의 승리적 성과를 반복한 그의 손자 – 김정은에 주어졌습니다. 

대회는 아래와 같이 진행되었습니다. 5월 6일 저녁에 북한 TV 방송은 조선노동당 제7차 대회 개막 동영상을 보여 주었습니다. 3천명의 대회 대표들의 우렁찬 박수갈채 하에 김정은이 연단에 올랐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김정은이 신사복에 넥타이를 매었다는데 주목했습니다.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장 김영남의 사회하에 대회 사업의 의제를 승인했습니다.

1.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사업의 결산.

2. 중앙 감사위원회 사업의 결산.

3. 조선노동당 정관 수정에 대해.

4. 김정은을 당 최고직위에 추천하는 문제.

5. 조선노동당 중앙 지도기관의 선거에 대하여.

김정은이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사업에 대해 보고를 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보고에서 당 및 국가 창시자이자 건설자인 김일성과 김정일을 추모했으며, 이어서 대회 참가자들은 항일투쟁과 사회주의 건설을 위해 목숨을 바친 애국자들을 추모하여 1분간 묵상했습니다. 보고자는 첫 날에 한 연설에서 국가의 특출한 성과라며 성공적인 핵 및 로켓 실험을 발표하였습니다. 대회의 두 번째 날에 그는 보고를 계속하면서 당의 활동을 결산했으며 당과 인민 앞에 나선 일련의 중요한 과업을 발표했습니다. 보고자가 처음부터 끝까지 이미 작성된 보고를 읽었다고 발표하였습니다.

 

다음 날에 고위급 대표들 몇 명이 발언했습니다. 그들은 전통에 따라 북한 지도자의 보고를 강령적 문헌이라고 말하면서 그에 전적으로 동의하며 지지한다고 말했습니다.

전문가들이 평가한 바에 의하면 간부재배치 그리고 일련의 직책과 당 기관 개칭이 조선노동당 제7차 대회의 기본적 결과였습니다. 대회에서 있었던 모든 변동들 중에서 김정은이 조선노동당 위원장으로 된 것이 기본 변동이었습니다. 이전에 그는 제1비서였습니다. 그것은 총 비서의 직책은 그의 아버지에게, 영원한 수령의 직책은 그의 할아버지에게 확보되었기 때문입니다.

정치국에서는 큰 변동이 없었습니다.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장 김영남, 조선인민군 정치국 국장 황병서, 내각 총리 박봉주, 당 중앙위원회 비서 최룡해가 정치국에 들어갔습니다. 고위급 엘리트에는 젊은 사람들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당 중앙위원의 거의 절반 즉 235명중에서 129명이 새로 바뀌었습니다. 이와 같이 당 중앙위원회에는 현 북한 지도자에게 충성하는 젊은 세대가 다수입니다.

 

대내 정책에서 젊은 지도자는 <선군>이라는 개념 하에 역사에 기입된 자기 부친의 방침을 수정했습니다. <선군>은 군대에 우선권을 준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김정은의 방침은 <평진>(<동시에 발전하다>)이라고 칭하는데 그것은 군인들과 정치일군들이 중심이 되어 군사 및 경제 발전에 매진하는 것입니다. 그 외에 북한 지도자는 나라가 다시 <5개년 계획으로> 되돌아간다고 선포했습니다. 5년 동안 발전할 구체적인 계획이 세워질 것이며 그에 관한 보고를 들을 것입니다.

김정은의 <평진>은 경제의 준 국가 및 비정부의 동시 발전을 포함합니다. 이에 있어 평양의 사회정치 어휘에서 <개혁>이란 단어는 엄격히 금지되었습니다. 

전문가들이 지적한 바에 의하면 대외정책에 대해서는 김정은의 발언이 상당히 평화로운 어조로 나왔습니다. 그는 동등한 원칙 하에서 모든 국가들과 대화를 할 용의가 있다고 말하였습니다.

김정은은 자신의 보고에서 국가통일 문제에 대해 말하면서 <조선노동당은 자주적 통합의 사상과 방침 그리고 김일성이 제기한 고려민주연방공화국 창설 제의에 기초한 민족적 통일을 위하여 모든 조선인들이 투쟁하도록 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에 있어 김정은은 북한을 전복시키려는 사상이 헛된 일이라고 남한을 경고했으며 남한과의 통합에 힘을 적용할 수 있으니 그에 준비를 하여야 한다고 온 나라에 호소했습니다. <인민군에게는 우리 공화국을 반대하는 미제국주의와 남한 군벌의 무모한 군사도발에 대해 가장 높은 수준으로 준비되어야 하며, 만일 적들이 전쟁의 불을 피운다면 침략자들을 무자비하게 처벌하고 조국 통일의 역사적 업적을 끝내야 합니다.>라고 <로동신문>에 게재된 그의 발언 내용 전문에 이렇게 언급되었습니다.

토요일 대회의 마지막 회의에서 감사위원회가 진행한 검열의 결과 심의와 당 정관 재검토를 발표하였습니다.

올레그 키리야노프의 말에 의하면 유력한 출판사와 통신사 기자 100명을 북한에 초대한 것은 시끄러운 소동으로 끝났습니다. 왜냐 하면 <공장과 기타 유적지들을 며칠 동안 관광한 후에 북한인들만 알고 있는 원칙에 따라 30명의 기자들만 선택하여 행사의 자료취재에 들여보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대회가 비공개 하에 진행되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기자들은 거리에 지나가는 사람들만 취재할 수 있었고 촬영기사들은 대회가 진행된 4월 25일 대회가 열리고 있는 문화궁전 건물 앞에서만 촬영할 수 있었습니다.

끝으로 북한에 관해서 전문가로 잘 알려져 있는 러시아 알렉산드르 제빈의 말을 인용하겠습니다. 그는 대회의 결과를 다음과 같이 보고있습니다. 즉 <이제는 북한에서 김정은 시대가 공식적으로 시작되었다고 선포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아직은 김정은이 수령의 형식적 권한을 받지 못했고 김일성, 김정일과 동일시하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그의 지위가 공고해졌습니다. 그와 동시에 북한의 대내외 정책에서 그 어떤 원칙적인 변동을 선포하지도 않았습니다. 북한은 여전히 주체사상을 실시하는 가운데 강력한 사회주의 국가를 건설할 것이며, 핵 열강의 위치에 있음을 주장할 것입니다>라고.

5월 10일 평양의 김일성 광장에서 조선노동당 제7차 대회의 성공적인 개최와 관련한 기념행진이 있었습니다. 김정은이 행사에 참가했는데 약 10만 명의 시위행진 참가자들이 그를 환영했습니다. 이때 북한 지도자는 전통적 복장을 착용했습니다. 모든 것이 원래의 상태로 되돌아 간 것입니다. 6월 29일에 진행될 북한 제13기 최고인민회의 제4차 회의가 그것을 재강조하여 줄 것입니다. 그에 대해서는 다음 기사에서 다루겠습니다.

 

김 게르만 – 건국대 역사강좌 교수, 중앙아시아 연구 및 협력 센터 소장, 

 

제 17기 민주평화통일 자문회의 중앙아시아 협의회 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