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수도 있는 스히폴(Schiphol) 공항 있는데 100여년 전에 건설된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오래된 공항 중 하나입니다. 1916년에 이것은 그리 크지 않은 군용 비행장이었습니다. 오늘날 스히폴 공항의 6 개의 활주로에서 세계 유수 항공사의 수십 대의 비행기가 매시간 이착륙하고, 공항 대합실에는 연간 5천만 명의 승객들이 드나듭니다.

이 승객들 중 10명당 1명이 기이한 도시인 암스테르담으로 갑니다. 도시 인구가 100만 명이 좀 못 되는데 시민 1인당 연간 7-10 명의 손님을 치러는 셈입니다. 관광 성수기일 때는 인구 1인당 수십 명의 관광객을 대합니다. 

암스테르담은 특별한 도시입니다. 이 도시는 언젠가 히피들이 원했던 자유의 정신으로 유명합니다. 지금은 동성연애자들, 아편 애호가들, 환각의 <버섯>을 맛보고자 하는 자들, 상업적 섹스를 하려는 자들이 향락을 느끼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전례 없던 자유는 범죄가 판을 치도록 하지 않았고 관광객들과 사업가들을 놀라게 하지 않으며 반대로 문화유적지와 자유 기업활동의 분위기로 사람들을 이끌고 있습니다. 유럽과 서방 세계에 첫 북한 식당을 열려고 하는 아이디어가 생겼을 때 북한 지도부의 시선이 암스테르담 쪽으로 돌려진 것이 우연한 일이 아닙니다. 

자유롭고 다채로운 암스테르담 시를 그 어떤 새 것으로 놀라게 하기는 어려운 일입니다. 그런데 5년 전에 여기에 유럽에서 첫 북한 식당이 열린다는 소문이 돌았을 때 출판물과 인터넷은 이 정보를 온 세계에 널리 전했습니다. 

2명의 젊은 네덜란드인들 즉 인쇄소 사무원인 렘코 반 다알(Remco van Daal)과 그의 파트너인 호텔을 운영하는 렘코 헬링만 (Remco Hellingman)이 식당을 열었는데 이 호텔에서 북한 식당 종업원들이 다 살았습니다.

“북한을 방문한 우리는 큰 인상을 받았습니다. 네덜란드에서는 이 나라의 문화와 음식을 그 누구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때문에 우리가 암스테르담에 식당을 열기로 결정했습니다> - 렘코 반 다알 이사장이 말했습니다.

AP통신사 기자 모데 브룰라드가 반 다알과 인터뷰를 했는데, 다알은 2009년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재단’을 조성했다고 이야기한 바 있습니다. 굶주리고 있는 북한인들에게 인도주의적 원조를 주며 식료품을 보내는 것이 재단의 목적이었습니다. 그는 북한에 갔을 때 북한지도부에 선물과 네덜란드어로 번역된 <주체>사상에 대한 김일성의 책을 전했습니다. 바로 그때 그는 북한 레스토랑을 암스테르담에 열려는 결정을 했습니다.

기자는 인터뷰를 하는 반 다알의 양복의 깃에 ‘친애하는 북한 지도자 김정일’의 초상화 배지가 붙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북한의 흔적이 나타났습니다. 일부 신문지상에는 반 다알과 북한 정부층의 연계에 대해 주장하는 기사들이 나타났습니다. 일련의 신문 기사들에는 해외에 있는 북한 레스토랑 망을 극히 필요한 외화를 얻기 위해 북한 정부가 관리하며 그것이, “불법 달러나 위조 달러를 세탁하는데 이용된다”고 쓰고 있습니다. 북한이 마취제와 무기를 불법적으로 팔며 미국 달러화를 제작해 낸다는 소문도 많이 돌고 있습니다.

인터넷-광고에는 네덜란드에 소재한 식당이 중국의 일부 도시들과 북한의 수도에 있는 해당화 (Haedanghwa)망의 북경 지사라고 지적되었습니다. 북한 인터넷-포르탈 <내나라(Naenara)>에는 “네덜란드에서 식당을 연 것은 북한 요리를 선전할 사명을 가진 유럽망 조성의 첫 걸음으로 될 것이다.”> 했습니다.

일부 보도에 의하면 암스테르담 식당이 독특한 합작 기업으로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반 다알의 말에 의하면 “암스테르담 북한 식당은 국제적인 북한 식당망의 일부분이 아니며 완전히 독립된 것입니다.” 라고 했다. 이 식당은 반 다알과 그의 파트너 개인 자금으로 북한의 지지 하에 열린 것입니다. 북한은 확실한 사람들 중에서 5명의 종업원, 3명의 요리사, 1명의 통역원을 선택했는데 그들은 암스테르담에 가기 전에 북한에서 교육을 받았습니다. 북한 화가들의 그림, 식료품, 반제품과 양념을 북한에서 들여 왔는데 그것을 식당에서 이용하기도 하고 판매하기도 합니다.

식당은 암스테르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교외인 오스도르프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전통적 화란 스타일로 지은 벽돌건물에 식당이 배치되었습니다. 식당 공간의 벽에는 그림들이 많이 걸려 있었습니다. 즉 북한의 풍경, 사냥 장면이 묘사된 그림들, 나라의 젊은 지도자를 찬양하는 군인과 아가씨들의 초상화가 걸려 있었습니다. 한쪽 벽에는 큰 모니터가 걸려 있는데 화면에는 종업원 아가씨들이 부르는 노래의 가사가 나타납니다. 공간은 그리 크지 않지만 24명의 손님을 받을 수 있습니다. 

앞으로 이 식당에 북한문화센터를 조직하기로 계획하고 있습니다. 문화센터에서는 세미나도 하고 마스터-클래스, 북한 영화상영도 하기로 예정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정치나 독재 체제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반 다알은 강조합니다.

북한은 식당 개업식에 참가하기 위해 일부로 암스테르담으로간주스위스북한대사의참가하에 2012년 2월 1일에 오픈했습니다.

유럽의 척도로 보아 북한의 식사값이 비싼 편이었습니다. 9가지 종합요리로 된 저녁식사를 하려면 손님이 100유로를 내 놓아야 합니다. 하긴 이 가격에는 북한 종업원들의 공연도 포함됩니다. 식당 손님들은 종업원들이 예쁘고 친절했으며, 영어로 말했으나 질문에는 판에 박힌 말로 대답했다고 지적했습니다.

 

북한 식당의 음식 특징에 대해 말한다면 한국계 네덜란드인 폴 릭터 (Paul Rigter)가 지적했듯이 음식이 네덜란드인(유럽인)의 입맛에 맞는 현지 식자재를 이용합니다. 릭터의 말에 의하면 모든 한인들의 민족 음식인 김치는 그가 기대한 것보다 맵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김치가 맵지 않아 오스도르프에 있는 북한 식당이 실패한 것은 물론 아닙니다.

북한은 프로젝트를 시작한지 8개월이 지나 영업을 중지했으며 그의 네덜란드 동업자들은 파산을 선포했습니다. 북한 식당 종업원은 밀린 봉급(그 액수는 10만 유로에 달한다) 지불에 대한 재단을 요구할 예정입니다. 반 다알은 이 비판에 대답하면서 그가 북한 정권의 기만으로 희생되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의 말에 의하면 그가 모든 비용을 부담하고 봉급을 다 지불했으며, 이제는 식당이 폐업했으므로 더 이상 지불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북한에서 운영하는 해외의 다른 식당들도 실패하겠는가? 외화수입을 가져오는 해외 비즈니스를 북한지도부가 어떻게 구제하려고 하는가? 이에 대해서는 다음 기사에서 하겠습니다. 

김 게르만 – 건국대 역사강좌 교수, 중앙아시아 연구 및 협력 센터 소장, 

 

제 17기 민주평화통일 자문회의 중앙아시아 협의회 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