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통일부의 자료에 의하면 1953년부터 2000년 기간에 북한인 1307명이 남한으로 넘어갔습니다. 그중 190명이 오늘에 이르러 이미 사망했고 33명이 다른 나라로 갔습니다. 1980년도 말까지 탈북자 들이 몇백명밖에 되지 않았는데 그중 다수가 북한 노멘클라뚜라에 속하는 북한인들 즉 비행기를 납치한 군용비행사-장교들, 외국에 있던 외교관들과 대외무역 기관 일군들, 그리고 지대 부근에 있는 군부대 군인들, 어부들이였습니다.

 

1990년에 이르러 북한에서 생활이 좀 나아졌고 법기관들이 엄격히 통제하였으며 간부들을 꼼꼼히 선발하였고 국경을 튼튼히 지켰기 때문에 탈주할 가능성이 거의 없게 되었습니다. 90년대 중순부터 시작하여 탈주자들의 수가 많아지기 시작했는데 그것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생활수준의 현저한 악화, 남으로 탈주한 북한인들에 대한 한국정부의 장려정책과 연관되었던 것입니다. 90년대 말부터 시작하여 남으로 넘어온 탈북자들의 수가 수십명이 아니라 수백명에 달했습니다.탈북자들에 대한 장려책은 박정희를 수위로 한 군사독재가 정권을 장악한 때부터 시작되었는데 1962년에 <북한 출신인 보호에 대한 특별 법>이 채택되었습니다. 1978년에 한국국회는 <탈북자 보호에 대한>새 법을 채택했는데 약간의 수정이 가해 진 그 법은 1993년까지 효력이 있었습니다. 상기 두가지 법은 현저한 재정소비를 예정하였기에 탈북자들은 큰 특혜를 받았습니다. 그들은 한평생 보조금을 받았으며 국가는 그들에게 주택을 무료로 내 주었으며 임의의 대학에 입학할 가능성을 주었습니다. 

<탈북자>라는 술어가 2004년까지 널리 사용되었는데 거기에  부정적 의미가 숨어있기 때문에 그 술어를 교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더 높이 울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리하여 결국 통일부는 2005년 1월에 이제부터는 북한 탈북자들을 <새터민> – euphёmismos (완곡어법)라고 칭한다고 광포했는데 이것은 <새 땅의 주민들>을 의미합니다. 남안의 언론계는 이 술어를 이용했지만 북한에서 탈주한 사람들 자체와 한국 비정부 기관들은 그 술어가 <억지로 꾸며낸 것이며> <부자연스러운 것>이라고 하면서 사용하기를 거절했습니다. 게다가 이 개념은 한국에 남으려고 하지 않고 다른 나라로 가려는 피난민들이라는 의미를 담지 않았습니다. 알고본즉 그런 사람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2008년 11월에 통일부는 공식적 문헌에 <새터민>이란 술어를 더는 사용하지 않는다고 광포했지만 일상 생활에서나 신문지상에서 그 술어를 계속 듣고 읽을 수 있었습니다. 현재 문헌이나 언론에서 공식적으로 사용되는 술어는 <북한탈주민>입니다.

사회주의 체계가 무너지고 쏘련이 붕괴된 이후 즉 1990년 초에

북한에서 넘어오는 피난민들의 상황이 현저히 변했습니다. 러시아의 원동지역에서 일하던 북한벌목공들이 한국으로 오는 것이 변동의 첫 징조였습니다. 일부 벌목공들은 살던 야영을 떠나 한국에 들어왔는데 1994-1995년에 그런 탈주자들이 전체 북한탈주민들의 3분의 2를 이루었습니다. 현재 있는 자료는 탈주자들의 질적 성분과 나이와 성별 변동을 판단할 수 있게 합니다. 우선 여성들의 몫이 커진 것을 알 수 있는데 여성들에 대략 34,3%를 이룹니다. 사회적 출신으로 보아 최근에 탈주한 북한인들의 46,3%가 노동자와 농민들 즉 다시 말해서 고등지식과 중등지식을 소유하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또 34,1%는 학생들과 가정주부들입니다. 당 일군들과 교사들을 포함한 모든 사원들이 전체 탈북자들의 9,1%밖에 되지 않습니다. 1996-2000년도의 탈북자 또 6,7%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해외 기관 일군들과 외교관들입니다. 그리고 3,6%가 군무자들입니다. 보는바와 같이 최근 년간의 탈주민들중 엘리타 대표들이나 혹은 지어 북한사회의 중등계층으로 간주할 수 있는 북한인들이 겨우 15-20%밖에 되지 않습니다.1995년에 북한에서는 수확을 거두지 못해 온 나라를 기아기 휩쌌습니다. 수십만명이 이웃 나라 – 중국에서 살 길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피난민들 중에서 오직 몇 명만이 남한으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한국정부나 안기부가 관심을 두는 중요한 정보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였습니다.북한탈주민들은 검열을 받은 후에 서울에서 70키로메터 떨어진 특별 교육센터 <한나원>에 파견됩니다. 센터의 프로그램에 따라 3개월간 교육을 받아야 합니다. 교육기간의 거의 절반은 현대 한국문화를 배웁니다. 나머지 절반은 한국에서 일상적 생활에 익숙함에 필요한 것을 배웁니다. 2001년 3월 1일에 248명이 이 강습을 필했습니다. 2002년에는 한나원을 두배로 넓혔으며 또 2년후에는 둘째 건물을 열였습니다. 그런데 많은 북한탈주민들은 그들에게 있어서 전혀 새로운 현실에서 일상생활에 필요한 것을 배우는데 3개월이 부족하다고 간주합니다. 통일부는 탈주한 북한인들을 위해 20개 이상의 교육센터를 열었으며 교육기간은 3개월 연장했습니다.

그러나 새 곳에 적응되기가 그리 쉽지 않으며 새로운 조건에서 일하기는 아주 힘듭니다. 그런데 한국에서 실업의 평균 수준이 4%밖에 되지 않는 조건에서 2000년도에 조사한 북한탈주민 924명중 실업자가 55,8%였습니다. 16,5%가 회사에서 고용노동자로 일하고 9,1%는 자유기업가들이고 1,7%가 과학연구 센터와 대학에서 일했습니다. 나머지는 고령이라서 일을 못하거나 건강상태로 근무하지 못했습니다. 이에 따라 북한탈주민들의 수입도 나라의 평균 수준보다 낮은 것은 물론입니다. 2001년도초에 그들의 월 평균 수입이 가정당 96만원 (770달러)이였다면 도시에 사는 한국인의 가정당 수입은 2천 6백만원 (2000달러)이였습니다. 때문에 <북한탈북주민>의 3분의 1이상이 차별을 느끼며 다른 나라로 가려고 하는 것이 당연한 일입니다.

북한에서 온 아이들과 미성년들이 두 나라의 교육체계에서 있는 큰 차이로 하여 각별한 난관에 부닥치고 있습니다. 2000년도부터 시작하여 417명의 아들이 북한에서 남한으로 왔는데 그중에서 95%가 학생들입니다. 이에 있어 공부를 해야 할 아이들의 거의 반수가 학교를 다니지 않습니다. 일부 북한 청소년들은 공부를 할 대신 부업을 하면서 externus로 시험을 치릅니다. 그러나 그들의 이런 수업은 오래 가지 못합니다. 결국은 시험을 치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전문가들은 북한인들의 교육수준에서 큰 차이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미성년 탈주자 거의 4명당 1명이 북한에서 공부를 하지 않았고 5명당 1명이 초등교육도 받지 못했고 반수는 중급 반이나 상급 반에서 공부하다가 학업을 버렸습니다.오늘 현재 북한탈주민들이 그 수효로 보아 작은 그루빠를 이루지만 남한에서 그들의 동화 경험은 미래의 한반도에 한해서 아주 중요합니다. <북한탈주민들>의 실례를 보면서 나라 통일, 한민족의 결합의 길에서 문제와 난관을 예보할 수 있으며 그것을 완화하거나 예방하는 대책을 취할 수 있습니다.

 

  감수 이재완 

               번역 남경자      

김 게르만 – 역사학 박사,

알-파라비 명칭 카자흐국립대 한국학 연구센터 소장,

건국대 (서울) 역사강좌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