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에 한국과 중국 간의 외교관계가 수립된 후 상품교환, 직접 투자, 관광, 문화교류를 포함하여 다양한 분야에서 양국 간의 협력이 광범위하게 진행되었습니다. 중국 통계자료에 의하면 한국이 미국, 일본, 대만, 싱가포르 다음가는 다섯 번째 외국 투자국으로 되었습니다. 1990년대와 2000년대에 사업과 관광여행, 학업의 목적으로 중국을 방문한 사람들의 수가 백만 명을 능가했습니다. 중국에서 한국으로 가는 사람들의 흐름도 늘어나 2001년에 중국인 관광객 수가 48만 2천명을 이루었습니다.

 

1992년에 한중간의 외교관계가 정상화된 것은 중국에 사는 조선족에게 모국을 방문할 가능성을 주었습니다. 처음에는 한국에 있는 친척들의 초대를 받아 그 친척들이 체류비를 부담할 수 있는 조선족들에게 모국을 다녀올 것이 허가되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가족뿐만이 아니라 사촌들도 한국으로 초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친척들이 방문하는 기간은 90일로 제한되었습니다.1990년대 초에 거리에서 약제를 판매하는 조선족의 수가 8천 명에 달했습니다. 한국정부는 친척들의 초대를 받고 들어오는 중국 조선족들의 입국을 제한했습니다. 그러나 제한도, 이동통제도 일어난 파도를 막지 못했으며 중국 조선족들이 대폭적으로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중국에 거주하는 젊은 조선족들에게 한해서는 연수생 신분으로 합법적으로 한국에 들어 갈 가능성이 있었습니다. 1994년에 한국정부는 의복생산과 구두공장에서 일할 연수생 1만 명에게 추가적으로 허가증을 내 준다고 발표했습니다. 상기 기업은 특히 노동자원이 부족합니다. 1995년에 또 4만 명의 외국노동자들을 연수에 초대했는데 그중 많은 노동자들이 어업가공 분야에서 일했습니다.그러나 한국의 중소기업들은 노동력이 부족한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연수생들이 봉급이 더 높은 일자리를 찾아 정부에서 정해 준 직장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서울 헤랄드>신문이 2002년도에 보도한 바에 의하면 8만 9천명의 연수생들 중에서 5만 2천명이 불법적으로 일자리를 옮겼습니다. 연수생으로서 그들이 200-260달러를 받았다면 불법 노동자로서는 약 500달러를 받았는데 이것은 한국노동자들의 평균봉급의 거의 3분의 1 수준입니다. 불법적으로 근무하는 것은 외국 이주노동자의 모든 권리, 사회적 보호, 보험 및 의료 지원을 상실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2000년 10월 당시 한국에는 중국 국민 153,930명이 거주하고 있었는데 이 숫자에는 불법 체류하는 사람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중 거의 반수가 조선족(소수민족 한인들)들입니다. 중국의 많은 조선인들은 불법적으로 한국에 입국하면서 가짜 여권이나 증명서를 만들기 위해 관련기관 직원이나 브로커들에게 큰 돈을 주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취직시켜주며 대학에 입학시켜주며 파트너를 찾아주고 한국에서 결혼대상을 찾아주겠다고 중국에 와서 약속하고 돈을 거두어 간 뒤 사라진 일부 한국인들에게 사기를 당했습니다. 위장결혼을 하는 경우에는 한국 측도, 조선족 측도 다 피해를 입는 것입니다. 일련의 조선족 여성들은 한국 왕복항공비를 물어줄 한국남자들과 결혼하기 위해 가짜 이혼증명서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그들은 한국 국적을 받고는 한국 남편들을 버립니다. 1990년 영사처 자료에 의하면 해마다 6-7명의 조선족 여성들이 결혼할 목적으로 한국에 들어갔습니다. 동시에 한국 <신랑들>도 사기를 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조선족 여성들에게 결혼대상을 찾아주거나 자신이 결혼을 하겠다고 약속하고는 돈을 받고는 사라지곤 했습니다.

중국 및 한국 사업가들의 도움으로 바다를 거쳐 불법적으로 입국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많은 선박들은 중국 해안에서 이미 체포되는데 1995년에만 해도 중국 조선족들을 실어가려는 시도가 194번이나 있었습니다. BBC 통신의 보도에 의하면 2000년도 1-10월에만 해도 남중국 후장성에서 바닷길을 이용하여 불법적으로 한국으로 들어가려고 한 사람이 400명이나 검거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강한 통제에도 한국으로 가려는 조선족들을 멈춰 세우지 못했습니다. 불법적 입국 조직자들에게 지불하기 위해 거액을 빌리면서 그들은 의식적으로 리스크를 합니다. 조선족들은 벌써 중국에서 한국 사업가들의 빚 구렁텅이에 빠지는 사례가 자주 있습니다. 한국사업가들은 불법적으로 입국한 조선족들을 노동을 착취하면서 그들의 봉급에서 약속한 금액을 삭감하였습니다.

한국어를 알고 외모가 같으며 전통적 문화, 풍습, 전통을 아는 것은 다른 나라들에서 온 이주노동자들에 비해 한국에서 조선족들의 생활을 훨씬 수월하게 합니다. 그러나 전문가들이 지적하는 바에 의하면 언어와 소수민족 문화의 차이 그리고 시간이 흐름에 따라 변경된 조선족들과 현대 한인들의 사고방식과 생활양식은 처음에 <문화적 쇼크(cultural shock)>를 느끼게 했습니다. 언어에도 역시 차이가 있기때문입니다. 그것은 조선족이 사용하는 방언과 한국의 현대 표준어에 현저한 차이가 있습니다. 중국의 농촌지역에서 태어난 많은 조선족들은 도시의 문화를 모르고 있으니 새로운 환경에 대한 그들의 적응이 아주 어렵게 진행됩니다.한국 기업주들의 난폭한 행위, 착취, 봉급 지불 지체 또는 거절은 조선족들의 항의를 불러일으킵니다. <코리아타임즈>신문 기자 소지영은 조선족들의 자살에 대한 연재 기사들을 게재했습니다. 조선족들은 기차가 오는 궤도에 뛰어 들거나, 고층건물이나 교량에서 뛰어내려 자살을 하거나 분신자살을 했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잔인한 기업주들에게 대항하여 타격을 주었습니다.

1996년에 <페스카마>어선에서 큰 비극이 벌어졌습니다. 6명의 조선족들의 선장과 상급승무원들의 상시적 모욕과 구타를 이겨내지 못해 선장을 비롯해 11명의 한국인들을 구타하여 죽였습니다. 한국에 있는 조선족들의 운명은 나라 사회계 특히 법제도의 보호, 노동조합 및 종교 단체들의 동정심을 불러일으켰습니다. 현재 한국에는 비정부기구와 민간단체들이 활동하고 있는데 그들은 조선족 노동자들을 비롯하여 불법적으로 한국에 체류하는 외국 노동자들을 돕고 있습니다. 상기 단체들은 중국에서 온 조선족 노동자들을 포함하여 모든 외국 노동자들에게 관심을 갖고 활동하고 있습니다.

합법적으로 입국한 자들과 불법적으로 입국한 자들을 비롯하여 한국에 있는 조선족들의 수를 엄격히 통제할 수 없으니 숫자가 서로 차이가 납니다. 공식적인 숫자는 대중보도수단, 사회단체와 연구자들이 제시하는 통계자료보다 훨씬 낮습니다.최근 10년간에 중국대륙으로부터 한국으로 이주하는 사람 수가 늘어났습니다. 중국에서 696,861명이 한국에 들어왔는데 이는 한국에 있는 외국노동자의 총수 즉 1,139,283명의 55.1%에 달합니다. 그중에서 488,100명이 조선족인데 이는 한국에 체류하고 있는 중국국민 총수의 70%이고, 외국인 총수의 40%입니다. 새로 들어오는 조선족 다수가 서울이나 그의 주변에 자리 잡습니다. 한국의 대도시들에는 차이나타운이 새로 나타나거나 이미 있는 차이나타운이 더 확대되어 가고 있습니다.

 

김 게르만 – 역사학 박사, 교수, 카자흐국립대 한국학 센터 소장, 

 

건국대 (서울) 역사강좌 교수, 17기 민주평통 중앙아시아협의회 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