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전승기념일인 5월9일이 오면 알마따에 사는 나는 최국인 , 한대용, 정추, 양원식 등  가장 가까운 친구들과 함께  꽃다발을 들고 우선 위대한 조국전쟁의 참전자인 정상진선배를  축하하러 그의 집을 찾아가는것이  전통으로 되어있었다. 위대한 붉은군대의 대일전쟁에서의 승리로 인한  조선해방은 우리들 매개인에게  직접적인 크나큰 영향을 주었고 우리들의 운명의 획기적인 변화를 가저오게 한것이다.  일본식민지인 조선에서 우리 민족은  일본인들의 차별, 멸시, 천대를 받았고  말하는 짐승취급을 받으며 살았다. 따라서 일본식민지에서 사는 우리들의 전망이란 일본인들밑에서  노예생활을 해야 하는  것이 우리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자그마한 예로, 전차간에서 일본인이 «왜 자리를 비끼지 않는거야 » 하고 말하며 조선인의 귀통을 처도 조선인은 아무런 대꾸도 못하고 참아야 하는  형편이였다. 그러나 붉은군대가 관동군울 전멸시킨후  해방된 조선에서는 조선 민족은 나라의 주인이 되었다. 해방된 조선에서는   나라를 보위하며 민족의 번영과 발전을 위해 헌신하는것은 최대의 영광이라는 애국주의사상으로  젊은 세대들을  교육교양하였다. 선배들의 추천에 의하여 우리들은  무료로 쏘련의 수도 모쓰크와에서 공부하게 되었고 이것은  해방전 일본식민지였든 조선에서는 우리들이 상상조차 할수 없었든것이다.우리들은 5월9일에 대일전쟁 참전자인 정상진선배를 만나면 그를 우리의 해방은인이며 우리의 벗으로 여길뿐만 아니라 매개인의 생활에 대양같은 전망을 열어준데대하여 깊은 감사를 드리며 속으로부터 솟아오르는 그 고마운 마음을 다 표현할수가 없었다.

그런데 세월은 흘러 정상진선배를 비롯한 모든 친구들이  이미 세상을 떠난지 오랐고  이제는 다 한자리에 모일래야 모일수 없고 이야기를 주고받을수 있는 가능성마저 없어지고 말았다. 그러나 그 누구도 그무엇도 잊지 않았다. 나는  그 때 우리는  다  한데 모여 정상진선배집에서 제2차세계대전 때  세계의 여러 곳에서  벌어졌었든 많은  비극적인 사실들을 회상하군했다.그때마다  그의 이야기를 듣는 우리는 모두 일치단결하여  평화를 수호해야 한다는 생각이 떠오르군했다.나는 금년에도 전승기념일인 5월9일을 맞이하여  몇년전에 우리 곁을 떠난 정상진선배의 말을 다시한번 되새기며 가까운 친구들도  회상하련다. 위대한 조국전쟁시기에  우즈베끼쓰딴에서 정상진선배는 붉은군대입대수속을 끝마치고   쏘련태평양 함대에 편입되었고  대일전쟁에 참가했다. 육전대원인 그는  쏘련 태평양함대군함들의 강한 엄호사격을 지원받으며 조선의 항구도시 웅기상육전에서 첫 전투세례를  하였고  방어하는 일본군에게  치명적타격을 가했다. 이윽고 해방된 웅기시에서 쏘련군은 수많은 조선인군중들의 열열한 환영을 받았다. 정상진선배는 조선민족을 대표하는  참전자로서 특별한 환영을 받았다. 정상진선배는 독일군과 싸우는 서부전선이 아니라 조선민족의 유일한 대표로서 대일전쟁에 참전하여 동양에서 제일 악독한 일본군을 격멸하게 된것을 무한한  영광으로 여기고 있다. 

일본은 조선을 식민지로 만든후 조선을 36년동안 약탈다. 많은 사람들이 살길을 찾아 주로 중국으로 또는 쏘련의 원동지방으로 떠나게 되었다.대동아전쟁 시기에는 보국대 , 위안부 , 징병 제도를 실시하며 수많은 젊은 남녀들은  강제로 일본아오모리탄광, 싸할린 등을 비롯한 남방의 여러 곳으로 끌고 갔고 강제노동을 시켰다. 그들의 다수는 분하게도 귀국하지 못했고 사망했다. 정상진선배는 일본군은 동양에서 가장 악독한 군대였다는것을 늘  거듭 말했다.  일본은 조선에서뿐만이 아니라 중국에서도 크나큰 범죄적 만행을 감행했다. 제2차대전 전인 1937년 12월 11일에 마쯔이 이와네 대장을 사령관으로 하는 일본군은  비법적으로 중국에 침입하였고    난징을 강점했다.  일본군은 1937년 12월 중순부터 다음해 2월까지 무고한 중국인30만명을 학살했다. 바로 이것이 세계적으로 알려진 난징대학살이였다.   난징시에서는 침입한 일본군에게 발견된 부녀들은 모두 강간을 당하고 총살당했다. 일본군은 시금산에서는 2000명을 생매장했다. 중국인 포로들을 모두 집결시키고 기관총세례를 퍼부어 무차별 학살했다. 1937년에 일본군의 난징대학살이 극에 달했을  무렵, 일본군 무카이 도시아끼 중위와  노다 쓰요시 중위는  일본도로 단번에 목을 베여 대갈통이 땅에떨어저야 한다는 조건으로  중국인100명의 목베기를 누가 먼저 해내는가하는 시합을 했다는 내용이 일본 마이니찌신문에 실렸었다. 전후 그들은 마이니찌신문독자들의 항의에 의하여  국제재판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두사람은 목베기살인시합을 벌인 사실을  부인했다. 그렇지만  이들은 세밀한 국제 조사결과 유죄판결을   받고1947년 12월18일에 사형언도를 받았다. 

정상진선배는 조선민족의 철천지원쑤 즉 조선 민족이  두고두고 잊을수 없는 ,   원한이 뼈에 사무처   있는 간악한 원쑤인   일본군을 격멸하는 대일전쟁에 태평양함대의 육전대원으로  참가한 조선민족의 유일한 대표였고  조선해방에 적은 힘이나마 기여하게 된것을  무한한 영광으로 여기었다.  

 

                                                                                   김종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