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전에 유명한 러시아 산문작가 김 아나똘리가 며칠동안 알마티를 방문했었다. 국립 공화국 아카데미야고려극장 배우들은 이 날 시험을 치르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것도 그럴 것이 관람실에 <뻐꾹새의 음소리>작품 필자가 앉아있었으니 말이다. 고려극장은 <용서>라는 명칭하에 이 작품을 무대화하여 관람자들에게 내 놓았다. 관람자들의 평은 좋았지만 오늘은 가장 엄숙한 <판사>의 평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연극이 끝난후에 작가 김 아나똘리 안드레예위츠가 무대에 올라 배우일동에 감사를 표했다.

-배우 여러분, 작품에 묘사된 그 어려운 시기에 주인공들이 겪은 깊은 감정을 심도깊게 전해주어서 감사합니다. 특히 연출가 채 유리의 재능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그는 때때로 화면을 넣었는데 그렇게함으로서 주인공의 내면세계를 더 두드러지게 보였습니다. 예를 들어 무대에서는 얼굴표정을 화면에서처럼 똑똑히 보이지 못합니다.

작가와 배우들은 오랫동안 이야기를 계속하였다.

다음날 과학협회에서 김 아나똘리 작가와 시내 고려인 사회계 대표들과의 상봉회가 있었다. 과학인들, 창작일군들, 대학 교사들, 기자들이 상봉회에 모였다.

-나는 자신을 특별한 인물로 여기지 않습니다 – 김작가가 말을 시작하였다 – 하긴 저더러 표현력이 독특하다고 하는데요 아마 그것은 고려인의 마음, 고려인으로서의 관찰을 러시아어로 표현하기 때문에 그런 모양이라고 친구-작가들에게 말합니다.

김 아나똘리 작가의 작품은 29개의 나라들에서 번역되었다. 이에 따라 한 교사가 질문을 하였다.

-한국에서 어떤 작품이 번역되었으며 작품에 대한 반응은 어떻습니까?

-물론 번역되었지요, 예를 들어 <푸른 섬>, <연꽃> 말입니다. 그런데 번역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으니 번역에 대해 몇마디 하겠습니다. 원래 예술작품을 번역하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서 그런 번역원들을 번역작가라고 하지 않습니까. 나는 한국교수들에게서 나의 작품을 이해하기가 힘들다는 말을 여러 번 들었지요. 알고본즉 저의 작품을 한 사람이 번역한 것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 나눠서 한 것입니다. 한 교수가 여섯명의 대학생들에게 맡긴 것입니다. 그런데 일본에서 저의 책을 일본어로 번역하고 그것을 한국어로 번역했는데 그것은 이해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번역작가에게 많은 것이 달렸습니다.고려극장에서 무대에 올린 <용서> (원작<뻐꾹새의 울음소리>)에 대한 질문도 나왔다. 작가의 말에 의한 그의 아버지가 어머니가 이야기하기를 좋아하였다. 그중 다수가 일상생활에 있던 일이었다. 어머니가 이야기 한 그런 사연들중 하나가 상기 작품의 줄거리로 된 것이다. 생활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에 대한 질문에 대답하면서 작가가 아래의 사연을 이야기 하였다.

-어린 시절에 우리는 여름에 모두 맨발로 다녔거던요, 가난했으니 그랬겠지요. 그래서 고무 따뽀츠끼 (슬리퍼)가 저의 꿈이였지요. 한번은 아버지가 그런 고무신을 사주었어요, 나는 그것을 아꼈습니다. 한번은 강에 수영을 하러갔는데 그 신을 강변에 벗어놓고 수영을 실컷 하고 나온후에 깜빡 잊고 습관이 된 대로 고무신은 신지 않고 맨발로 뛰여갔습니다. 한참 놀다가 고무신 생각이 나서 강변으로 뛰여가니 신발은 간데 온데 없었습니다. 목동을 만나 물어보니 마을 변두리에 사는 도공 아저씨가 가져갔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그 아저씨는 좀 이상한 사람이여서 아이들이 무서워했거던요.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해서 무서웠지만 신발이 아까워 나는 울면서 그 집을 찾아갔습니다.

-이걸 찾으러 왔지 – 아저씨가 고무신을 내 주면서 말했어요. 바로 그 때가 가장 행복한 순간이였습니다.계속하여 아나똘리 안드레예위츠는 러시아어로 쓰는 작가들인 리 스따니슬라브, 강 알렉싼드르, 박 미하일의 작품들을 호평하였다. 그는 <아바이의 길>을 번역하기가 아주 힘들었다고 하면서 이것은 생활에서 세운 기본 위훈이였다고 하였다.

                             남경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