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지방에 사는 고려인들의 구들이 없는 집은 러시아인, 카자흐인 또는 기타 민족들이 사는 집과 아무런 차이가 없다. 그런데 마당에 세운 부차 건물과 터밭은 고려인들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들의 마당에는 알뜰히 가꾼 터밭, 닭우리들이 있는데 러시아인이나 독일인이 사는 집 주위에는 든든한 울타리가 있고 화단, 돼지우리가 있다. 그리고 카자흐인들이 사는 집 마당에는 외양간, 건초가 쌓인 헛간이  있다. 모든 민족이 공장에서 만드는 가구, 가전제품, 텔레-라디오 제품, 그릇 및 기타 제품을 사용하지만 그래도 집의 인테리어와 장식에 차이가 있다. 도시의 아파트들은 같은 규격의 모양을 가졌기에 첫 눈에 어느 아파트에 어떤 민족의 가족이 거주하는가를 판단하기가 어렵다. 전통적인 중아시아 인테리어의 일부 요소들 이를 테면 바닥에 깔거나 벽에 거는 모전들은 고려인들을 비롯하여 다른 민족들의 집에서도 보통 현상으로 되었다.

(지난 호의 계속)

중앙 난방장치, 냉수와 온수, 하수도, 전화, 저렴한 일반관리비 등 편리한 조건이 있던 도시의 주택에서 살던 쏘련시기와 달리 지금은 독집에서 살기를 원한다. 그런 집들은 구조, 크기, 이용하는 건재, 건축술, 인테리어 , 내부 및 외부 다지인의 다양성으로 특징되며 집 마당의 터밭에도 집 주인의 민족적 문화에 특유한 요소들이 나타날 수 있다.

전용기구

민족적 특징을 가진 각종 기구들을 세가지 기본 그루빠로 나눌 수 있다: 식기, 집기, 농구, 후생용 도구, 악기, 무기 및 기타. 고려인들이 카자흐스탄에서 거주하는 년간에 고려인들이나 현대 한국의 주민들이 이상에 지적한 도구들을 이용하는데서 현저한 생겼다. 그것은 생활의 새로운 조건으로 초래된 것이다. 오늘 한국에서 이용되는 집기와 악기들을 카자흐스탄의 고려인들이 모르는 경우가 있다.현재 카자흐스탄에서 날마다 젓가락으로 음식을 먹는 고려인들이 얼마 남지 않았으며 실린더 모양의 베게를 베고 자는 사람이 아마 없을 것이다. 그런 베게가 일상 생활에서 거의 사라졌다. 카자흐스탄의 다른 민족들과 달리 고려인들의 식탁에는 사라다-채를 넣은 작은 접시들, 고추장과 간장이 든 로제트까 (쨈  또는  양념을  담는 작은 그릇)가 놓인다. 국과 국수는 깊은 자기 그릇 (원추대를 상기시키는)에 담는데 이전에는 그것을 다른 나라들에서 수입해 왔다. 지금은 그것을 카자흐스탄과 우스베키스탄의 도자기 공장에서 생산한다.노동활동의 교체 다시 말해서 농사를 버리고 도시 생활에 따라 다른 일을 하는 것은 <고본지>를 하는 소수의 고려인들만이 전통적인 농기구를 사용하게 하였다. 루크의 기음을 맬 때 아직까지도 손잡이가 짧은 작은 호미를 이용하고 있다. 키가 큰 풀을 베기 위해서는 칼날이 바른 낫을 이용한다. 중아시아 인민들의 일부 농기구는 지방의 굳은 땅을 가꾸는데 적합하다. 그런 농기구를 고려인들도 이용하는데 예를 들어 께트멘은 고려인 농사군들에게 필요한 농기구로 되여 있다. 께트멘은 수로, 아릐크를 파거나 논 사이에 둑을 쌓아올릴 때 이용하기에 좋다. 리똡까 낫은 큰 면적에서 무성한 풀이나 갈대를 베는데 이용된다. 고려인들은 파나 기타 야채를 씨앗으로 심을 때나 작은 알곡 (수수, 가올랸)을 심을 때 뚜베라는 특별한 농기구를 이용하는데 에.나쑈낀은 그것을 아래와 같이 묘사했다. 뚜베는 나무 막대기로 만든 것인데 한 쪽은 담배 파이프처럼 직경이 7센치미터쯤 도려냈다. 이 파이프를 알곡 씨앗이 들어있는 호박에 꽂아놓았다. 파종을 하는 농사군은 그 농기를 왼쪽 겨드랑이에 경사지게 끼고 가느다란 막대기로 파이프를 두드린다 그러면 알곡씨앗이 호박에서 나와 파이프를 타고 내려간다. 막대기의 구멍을 풀로 막아 놓았는데 알곡이 거기에서 멈췄다가 막대기로 파이프를 치면 고르게 나온다. 뚜베의 길이는 70센치미터 된다. 뚜베의 구조와 작동이 그대로 남았는데 오직 이용하는 재료만 변했다. 호박대신 용량이 반릿터되는 철통을 이용하며 나무막대기 대신 플라스틱 파이프를 이용한다.발로 찧는 방아와 손으로 돌리는 맷돌은 민속 전시품으로 되었고 일부 가정에서는 그것을 이용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추억으로 남겨두고 있다. 까라딸 구역과 우스토베시, 그 주위의 농촌들을 돌아보았을 때 고려인 가정의 마당에서 버려 둔 방아를 볼 수 있었다.가야금과 같은 현악기, 취주악기 피리, 타악기 징 등은 카자흐스탄의 고려인들에게 다시 알려졌다. 사물놀이가 인기가 있으며 사물놀이 음악가들이 참가하지 않는 행사가 없다. 사물놀이 악기를 처음에 한국에서 실어들였고 첫 고려인 청년그루빠는 서울에서 배웠다. 지금 그들은 자기의 경험을 다른 젊은이들에게 넘겨주고 있다. 알마티 한국교육원과 타스켄트, 비스케크에서 한국교사들이 가야금과 사물놀이를 배워주고 있다. 때때로 농촌지역에 사는 이상세대의 고려인들이 저녁에 모여서 북을 치면서 춤을 추기도 한다.

생활에서 경사와 의식

모든 사람들의 생활에는 경사가 있다. 그것은 민족의 의식과 연관되었다. 우선 이것은 출생, 성년식 기타 주년일에 관계되는 것이다. 그리고 결혼식에서 민족의 특징이 뚜렷이 나타난다. 결혼식에는 결혼전과 결혼후의 예식이 있다. 그런데 전통이 가장 확고히 남은 것은 장례식과 제사이다. 카자흐스탄의 고려인들은 오늘 날까지 민족의 명절과 생활의 의식의 기본 측면을 보존하여 왔다.쏘련 고려인들이 왜 어린이의 백일잔치를 하지 않았는가고 지금에 와서 이상하게 여긴다. 카자흐스탄에서 태여나 자란 세대는 백일을 맞이하기커녕 왜 태여난지 100일이 되는 날에 그렇게 의의를 부여하는가도 몰랐다. 그런데 모든 고려인 가정에서는 여전히 돌은 꼭 쇤다. 만일 한국에서는 가정에서 어린애 (첫 아기)가 태여날 때 대를 이어나가고 선조들의 제사도 맡을 남아이를 더 소원한다면 카자흐스탄의 고려인들은 태여날 어린이의 성에 중립적으로 대한다.

어린이의 돌잔치

한국에서는 어린이의 돌 (고려말로 생지)을 예로부터 크게 쇠였다. 그것은 아이들의 사망률이 높았던 그 시대에 아이가 한살이 되었다는 것은 아슬아슬한 고개를 넘겨서 앞으로 산다는 것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어린이의 사망률이 높았던 시대가 이미 과거로 되었지만 돌을 쇠는 풍습은 여전히 한국에 남았다. 카자흐스탄과 구쏘련의 모든 고려인들도 이 전통을 계속 지키고 있다. 돌을 차림으로서 어린이의 장래 운명을 알아본다고 한다. 게다가 몇가지 징조를 보고 알아보는데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돌상이다.어린이를 돌상앞으로 데려가기전에 새옷을 갈아 입히는데 남자아이에게 입힐 한복은 보통 한국에서 사오며 여자아이에게 입힐 한복은 지방의 재봉사에게 주문하기도 한다. 돌상에는 찰떡이 담긴 그릇 세개,  그릇에 넣은 콩, 쌀이 든 그릇, 책, 펜이나 연필, 돈, 가위, 바늘, 실을 꼭 올려 놓는다. 우리가 관찰하는바에 의하면 때로는 앞에 보이는 물건 예를 들어 핸드폰, 차의 키, 망치기 타 물건을 올려 놓기도 한다. 나라에서 외화가 자유롭게 도는 조건에서 카자흐스탄의 뎅게만이 아니라 미국 달러 그것도 큰 액수의 새 달러를 올려 놓기도 한다.어린이를 상앞에 데려가서 그 애가 맨 먼저 잡는 물건을 보고 그의 장래 운명을 판단한다. 아이가 세가지 물건을 쥐면 다른 물건을 더 잡지 않도록 즉시 다른 쪽으로 데려간다. 부모와 손님들은 아이의 행동을 주시한다. 이전에는 지식, 지성, 교육을 상징하는 공책, 책, 펜을 잡으면 부모들이 기뻐했는데 이제는 튼튼한 물질적 입장과 재산을 원하니 돈을 어린이 가까이에 놓는다.쏘련시대에는 돌잔치를 집에서 차리고 비교적 소수의 손님들만 초대했는데 지금은 특히 친척들과 친구들이 많고 손님들을 많이 받아들여 푸짐하게 대접할 재정형편이 되면 카페나 레스토랑에서 쇤다.

 

김 게르만 – 역사학 박사, 건국대 (서울) 역사강좌 교수,

중앙아시아 센터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