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자흐스탄에 거주하는 80년간 사회학 즉 역사학, 철학, 법학, 어문학, 경제학에서 고려인 인테리가 형성되었다. 인문학과 사회학 학자들의 수가 적은 것은 몇가지 원인으로 설명된다. 첫째는 고려인 학생들이 학교에서 역사, 러시아어 및 문학보다 수학, 물리, 화학 등 과목을 더 쉽게 습득한다는 것이다. 때문에 중학교 고려인 졸업생 다수가 기술대학에 입학한 것이 당연한 일이다. 둘째는 사회학에서 자연학에서보다 학자학위를 훨씬 빨리 받을 수 있었다. 마지막 원인은 일부 인문학 학자들이 과학 분야에서 출세하기 위해 모스크바로 간 것이다. 쏘련과학원 원사, 역사학자 김 막씸 빠블로위츠, 쏘련과학원 객원 회원 역사학자 김 게오르기 표도로위츠, 철학박사 유가이 게라씸 안드레예위츠가 그런 학자들이다.

(제 9호의 계속)

여성 학자들의 몫은 과학의 분야에 따라 다르다: 의학과 교육학 분야에서 여성-학자수가 가장 많았으며 광업과 야금업 분야와 연관된 여성-학자수가 가장 적었다. 81명의 의학박사들 중에서 여성 의학박사가 11명이었다. 쏘련과학원, 카자흐쏘베트사회주의공화국 과학원, 카자흐스탄공화국 민족과학원 원사와 객원회원중 고려인 여성이 한명도 없다. 화학박사 우 왈렌찌나 꼰쓰딴찌노브나가 카자흐스탄공화국 국가상을 받은 첫 고려인 여성학자였다.이와 같이 최근 10년간에 고려인 소수민족의 사회적 구조와 직업적 취직 분야에서 변동이 있었다. 이 변동은 카자흐스탄 사회의 개혁, 실시하는 대내 정책, 조성된 나라의 사회경제적 상황, 자주국가 금후 발전 경향의 배경으로 일어난 것이다.사회주의적 경제로부터 자유시장 관계에로의 이행, 생활수준의 현격한 악화는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하던 일자리를 떠나 부득이 다른 활동을 하게 하였다. 결국 과학, 창작 인테리 층이 직업을 버리게 되었고 국가기관들에서 고려인들의 몫이 줄어드는 한편 자기 비즈니스를 하는 고려인들의 수가 많아졌다.

2.3 교육수준

카자흐스탄에서 사는 미래 세대에 한해서 카자흐어의 의무적 소유가 자명한 이치로 되었다. 바로 그러기 때문에 카자흐스탄고려인협회가 대표하는 고려인 소수민족이 국어를 소유하는 방도로 <카자흐스탄의 사회정치 및 사회문화 생활에의 고려인 젊은 세대 통합>강령을 채택하여 실천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고려인 이상세대는 교육수준이 높고 러시아어를 잘 소유하였으므로 쏘련시대에 성과를 달성하였다. 지금은 카자흐스탄에서 교육의 위신이 국어소유 요인을 포괄하는데 이것은 사회피라미드 계단을 밟고 위로 올라 갈 가능성을 준다.통계 자료에서 고려인들이 별도 항목에 기록되지 않으니 대학생 수, 교육기관, 학부, 전문직업, 교육형태 선택을 연구할 수 없다. 현존 자료는 1998-1999학년도에 고려인 대학생들의 총수가 4767명이었는데 그중에서 낮에 공부하는 대학생이 3320명, 야간 대학생이 108명, 통신과에서 공부하는 대학생이 1357명이었다.최근 10년 기간에 고려인 대학생 수가 크게 변하지 않았다는 결론을 선천적으로 지을 수 있다. 인구수로 보아 카자흐스탄의 인구 구조에서 아홉번째 자리에 있는 고려인들은 고등교육 기관의 민족적 성분에서는 절대적 지표로 보아서는 독일인, 따따르인, 우스베크인, 벨로루스인, 위구르인을 앞서 넷째 자리에 올랐다. 부차적 자료와 정보 분석 그리고 전반적 경향은 고려인들의 대학 선택에 관한 아래의 결론을 지을 수 있게 한다. 첫째, 인문 학부 대학생들과 전문가들의 몫이 현저히 증가되었고 기술 및 농업 대학, 자연과학 학부 대학생들의 수는 줄어들었다. 둘째는, 카자흐스탄을 떠나 모스크바, 상-페테르부르그, 노보시비르쓰크, 똠쓰크 기타 러시아 중심지 대학들에서 공부하는 고려인 대학생 수가 줄었다. 여전히 극 소수의 고려인 청년들이 군사대학과 군사 교육기관에서 공부하기를 원하는데 이는 다수 경우에 쏘련 시대의 전통으로 설명된다. 유감스럽게도 또한 예산에 따라 그리고 계약이나 유급 조건에 의해 교육을 받는 고려인 대학생들의 비례에 관한 정보도 없다. 예측에 따르면 유급 조건으로 공부하는 대학생 수가 대학에서 무료로 공부하는 대학생 수와 같거나 아니면 더 많다.

3. 소수민족 과정

카자흐스탄 고려인들의 농촌으로부터 도시로의 이주, 거주환경과 생활양식 변경은 민족 풍습과 의식에도 수정을 가했다. 세월이 흐름에 따라 새로운 전통이 나타났으며 옛 의식의 어떤 부분은 과거로 되고 말았다. 현재 카자흐스탄 고려인들의 소수민족 발전에 한해서 고려인들에게 고유한 민족전통 재생과 타민족 (러시아, 유럽, 중아시아) 문화에서 얻은 요소 보존이 특징으로 된다. 카자흐스탄의 독립 년간에 고려인들은 카자흐어와 카자흐 인민의 문화를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카자흐스탄에서 상주하는 한국인들과의 교제, 모국방문, 신문, 잡지, 서적 및 TV방송에서 보게 되는 현대 한국에 대한 자료들 역시 카자흐스탄 고려인들의 현시 소수민족 과정에 일정한 영향을 주었다. 현 단계에서 자기의 역사적 뿌리를 가지고 있는 이상의 경향 마다가 자기의 속도로 발전하며 카자흐스탄의 고려인들의 물질적 및 정신적 문화에 제각기 달리 나타나고 있다.

3.1 소수민족의 물질적 문화

소수민족의 물질적 문화는 아는바와 같이 수많은 각이한 요소들로 이루어 지는바 그것을 아래와 같이 그루빠로 나눌 수 있다: 음식, 의류, 주택, 전용기구 등이다. 카자흐스탄의 고려인들도 다른 소수민족들과 마찬가지로 민족요리에 대한 애착심을 가장 확고히 보존하여 왔다는 것을 미리 말하여 둔다. 알다싶이 음식은 일상적 성격을 띠지 않은 다른 요소들과 달리 주야간 여러 번 필요한 것이다.식품. 주지하는 바와 같이 모든 사람들에게는 식품에서 보수성이 특유하니 요리는 거의 변하지 않으며 유행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한국의 전통적 요리는 독특하다. 게다가 음식에는 그것을 장만하는 지역의 특성이 반영되었다. 고려인들의 요리에는 여러가지 종류의 음식이 들어간다: 뜨거운 요리와 찬 요리, 육류와 물고기 요리, 국과 찐 요리, 밀가루와 야채로 만든 요리, 여러가지 나물과 음료수가 있는데 그것들의 원료성분, 그의 비례와 장만하는 기술이 특별하다. 한국인들은 그들의 요리가 중국요리, 일본요리와 차이가 난다는 것을 강조히고 한국의 식기에는 국을 먹기 위해 처음부터 숟가락이 있었다고 말한다.고려인들이 처음에는 러시아에서 다음은 바다로부터 멀리 떨어진 자연-생태 조건을 가진 카자흐스탄에서 150여년동안 거주하였으며 타민족들을 이웃하고 지내는 기간에 식품이 독특성을 띠게 된데에 영향을 준 것입니다. 카자흐스탄 고려인들이 한편으로는 조선반도의 북부 지대 더 정확히 말해서 러시아로 건너 온 이주민들 다수가 태여난함경북도에 뿌리를 가지고 있는 민족요리의 최초상태를 보존하였다.힌국에서는 일상적으로 음식을 먹는 일부 뉴앙스들이 이미 과거로 되었는데 카자흐스탄 고려인들에게는 그것이 보존되었다. 예를 들어 카자흐스탄 고려인들은 아직까지도 쌀밥을 냉수에 넣어 먹는데 그것을 <밥이 – 물이>라고 한다. 한국에서 <보신탕>이라 하고 카자흐스탄에서는 <개장>이라고 하는 특수한 민족요리가 서로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차이가 난다. 고려인들의 식량에서 해산물이 거의 없어졌다. 해삼, 오징어, 귤 기타 해산물들은 <개구리의 발>과 <제비의 둥지>처럼 익숙하지 못한 식품으로 되었다.다른 편으로는 고려인들이 러시아인, 카자흐인, 우스베크인 및 기타 민족들과 적극적 교제, 쏘련 시대에 도시에서 틀에 박힌 생활양식은 식품에도 현저한 변동을 가했다. 많은 민족요리가 날마다 먹는 것이 아니라 정기적으로 (일주일에 몇번) 혹은 명절에만 먹는 요리로 되었다. 카자흐스탄에서 태여난 이미 4세나 6세의 고려인들도 이상에 이야기한 그런 식생활을 한다. 왜냐 하면 그들이 어릴 때부터 다른 민족들의 음식과 차이나는 음식을 먹었기 때문이다. 쌀이 여전히 식품에서 가장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쌀로 밥외에 다른 음식 특히 명절에 먹을 음식도 장만한다. 최근 몇십년간의 변동은 우선 벼자체에도 영향을 주었다. 그것은 쏘련시기에 고려인들이 카자흐스탄에서 벼를 재배했는데 <바흐바흐찐쓰끼>벼와 <까라딸쓰끼>벼가 가장 좋아하는 품종으로 알려졌다. 현재 쌀을 중국에서 수입하는데 <바라까트>종이 지방에서 생산하는 쌀을 밀어낸다. 이전에는 밥을 난로우에서 남비나 가마에 넣어 끓였는데 지금은 한국제 전기밥솥을 이용하고 있다. 왜냐 하면 그것이 밥을 짓는데만 편리한 것이 아니라 장기간 전기밥솥에 보관하면서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김 게르만 - 역사학 박사, 건국대 (서울) 역사 강좌 교수,

중앙아시아 센터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