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원시어를 넓은 의미에서 두 그루빠로 나눌 수 있습니다: 즉 북부지방의 <부여어>와 남부지방의 <한어>입니다. 만주와 북조선에 살던 종족들이 첫 그루빠의 언어를 사용했습니다. 반도의 북부에 옛봉건국가들인 부여, 고구려, 옥저, 동예가 있었습니다. 그중에서 고구려 종족이 주도적 역할을 놀았습니다. 세개의 한 나라들 – 진한, 마한, 변한 국가들을 창립한 남부조선족들이 <한어>를 시용했습니다. 이상의 세 나라들중에서 가장 강유력한 나라인 진한이 신라왕국을 세웠습니다. 신라왕국은 중국단군과 함께 660년에 서남부에 있는 백제 그리고 668년에는 북부에 있는 고구려를 종속시켰습니다. 통일신라를 창설한 것은 조선의 역사에서 큰 사건으로 되었습니다. 7-8세기에 신라는 강력한 중앙화된 나라로 되었습니다. 왕이 신라를 통치했는데 왕은 수도의 중앙 국들, 나라의 관리 망을 포괄하는 행정기구에 의지하였습니다. 신라에서는 경리체계의 기본인 농산업 또한 수공업과 상업이 성과적으로 발전하였습니다. 과학, 교육, 문화 분야에서도 성과가 현저하였습니다. 구비민속창작이 널리 발전되었고 고전예술문학 특히 서정적 시문학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결과 신라에서는 나라의 언어통일이 이룩되었습니다. 

 

 

7세기말과 9기초에 신라국가가 점차적으로 쇠약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농민봉기와 국내분쟁이 나라를 뒤흔들었습니다. 저명한 완건장군이 나라를 다시 연합하였는데 그는 1918년에 자신을 고려국가의 왕으로 선포했습니다. 바로 거기에서 코리아라는 현대 명칭이 나타난 것입니다. 새 국가의 정치 및 문화 센터를 반도의 중부에 놓인 개성시로 옮겼습니다. 때문에 개성방언이 나라의 통일된 민족어의 기준으로 되었습니다. 

1392년에 이름있는 이성계 장군이 마지막 고려국가를 타도하고 자신을 새 왕조의 왕으로 선포했습니다. 그는 1910년까지 코리아를 통치했습니다. 옛조선에 대한 기념으로 조선이라고 칭한 수도를 작은 도시 한성으로 옮겼는데 후에 그것을 서울로 개칭하였습니다. 지리상 위치로 보아 새 수도가 개성으로부터 멀지 않은 곳에 있었으니 조선어가 계속 발전하였습니다.

여러 세기를 두고 조선어 방언이 형성발전했습니다. 현재 여섯가지 기본 사투리가 있습니다: 동북부 지대 (중국 동북부 지대와 함경도의 조선말 방언을 포함하여), 서북부 지대 (평안도와 황해도 일부), 중앙 지역 (서울, 경기도, 충청북도, 강원도와 황해도 일부), 서남부 (전라도와 충청남도 일부) 그리고 제주도 방언들입니다. 방어에서의 차이는 주로 어휘와 음성논에 있고 문법에 좀 있습니다.

조선어 발전은 중국의 장기간 때로는 강력한 정치적 및 문화적 영향을 고려하지 않고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문장어나 구술이 이것을 뚜렷이 증명하여 줍니다. 많은 연구학자들은 한국단어의 60% 이상이 중국에서 생겨났다고 간주하고 있습니다. 조선어는 수세기를 내려오면서 회화형태로 되였고 15세기 중순까지 나라의 평민에게는 자기의 학문이 없었습니다. 그와 동시에 문어 – 한문이 있었습니다. 한문은 방언을 우세하였으며 민족문어가 나타나기 전에 존재한 것입니다. 옛 조선의 공식적 문헌, 역사적 기록, 외교 서신거래에서 사용했던 중국한문 웬얀 (?)과 달리 한문은 19세기말까지 문화 및 교육의 언어로 되었으며 또 그로 남아 있었습니다.

19세기의 마지막 25년은 한국에서 강력한 계몽운동과 그리스도교 보급이 전개되었습니다. 국내에 수백개의 학교가 열렸고 크루쇼크와 협회가 조성되었는데 그에 광범한 주민층이 망라되었습니다. 성경, 교과서, 신문들이 발간되었습니다. 민족적 자체의식 각성과 항일 기분고조가 때를 같이 하는 계몽의 파도에서 한국어와  (그 당시 그것을 국문이라고 했다)문자를 교육, 문학과 과학에서 널리 이용하기 시작하였습니다. 한글문자를 도입하고 널리 보급하는 사업에서 탁월한 언어학자, 애국자 주시경이 중요한 역할을 놀았는데 그는 한국문자에 <한글>이라는 새로운 명칭을 주었습니다. 대중신문들인 <동아일보>와 <조선일보>가 다부수로 날마다 발간되는 것은 한글의 통일된 규정을 강구하는데 현저한 영향을 주었습니다. 1930년에 이르러 한국에서 <문학언어> 또는 <규격언어> (<표준말>)가 형성되었다고 간주합니다. 이에서 중앙지대의 방언인 서울와리안트를 기본으로 택했습니다.

학자들은 25년간의 일본식민지 통치, 모국어를 사용하는데 대해 엄격하게 처리한 강압적 동화정책이 하긴 통일된 표준어 발전과정을 현저한 정도 지체시켰지만 한국어에는 큰 <일본흔적>을 남기지 않았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제 2차 세계전쟁 이후 한반도에 대립되는 정치제도를 가진 두 나라 형성, 유혈적 동족상잔, 나라 분열은 불피코 언어구성의 여러가지 방도에 이르게 하였습니다. 언어에서 어휘가 가장 변하기 쉬우니 오늘 현재 단어성분에 현저한 차이가 생겼는데 이것은 사회-정치적 면에서 우선 신어, 용어에 관계됩니다. 한국 출판물과 문학 그리고 시간이 흐름에 따라 회화에 영어와 영어의 미국식 사투리를 많이 전용한 것을 알아보기가 어렵지 않습니다. 북한에서는 쏘련의 물질재정 원조만 이용한 것이 아니라 사회주의 건설의 경험을 받아들였기에 이것은 당연히 러시아어에서 해당한 술어들을 전용하게 하였습니다. 이상에 지적한 것은 전 독일민주주의공화국과 독일연방공화국에도 전적으로 관계되는데 분리된 독일 국가들에서는 항상 (약간의 차이가 있기는 하다만) 통일된 표준철자법과 문학이 존재하였습니다. 그런데 38선으로 분리된 국가들에 대해서는 그렇게 말할 수 없습니다. <반동적이고 반인민적인> 한문을 북한이 완전히 거절하는 때에 남한에서는 한문을 널리 이용하고 있습니다. 한국과 북한간 차이를 보기 위해서는 가게들의 진열장만이 아니라 간판 (어떻게 써 놓았는가)을 보아도 됩니다. 다음 기사에서는 한국……..에 대해 이야기가 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