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님이 짜 보내주신 참기름도 이게 마지막이네….

손자에게 발라 줄 생선에 참기름 병을 거꾸로 세워 흔들며 아내가 말했다. 언제부턴가 집사람은 죽순, 고사리, 들기름, 감식초 등등 식재료를 꺼낼 때마다 어머님 타령을 하고 있다. 목소리가 떨리는 걸 보면 벌써 눈시울이 붉어진 모양이다. 하지만 나는 못 들은 척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은 채 또 천정을 바라본다.

 

“해마다 여름휴가를 시댁에서만 보내는 바보가 나 말고 또 있을까.” 라는 자찬 같은 불평을 들어온 지 근 40. 부모님이 서울에 오실 때마다 큰집으로, 친척집으로, 또는 병원으로 모시고 다니느라 힘들어 했던 집사람이 아닌가? ‘시월드’란 신조어에 이어 시댁이 싫어서 ‘시’자만 들어가도 싫다며 시금치도 먹지 않는다는 우스개가 생기고, 웬만한 고부간의 갈등은 뉴스거리도 되지 않는 세상이다.

그런데 요즘은 아내가 경치 좋은 곳에 가거나 맛난 음식이 있을 때, 심지어 손주들의 재롱이 재미날 때도 “어머님이 계시면 무척 좋아하실 텐데”를 연발한다. 수시로 “친정 엄마가 돌아가시고도 안 이랬는데….” 하면서 어머님이 보고 싶다며 눈시울을 붉히곤 한다,

내가 결혼 전에 며느리 될 처녀라며 집사람을 소개했을 땐 아내의 가냘픈 손목을 만지면서 “이래 약해서 어디 물 한 양동이나 들겠나.”라며 영 못마땅해 하셨던 어머니였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아들보다 며느리를 더 편히 여기는 듯 보였다. 그리고 집사람도 어머니와 함께 있을 때면 무슨 이야기 거리가 그리 많은지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했다. 우리가 시골에 내려갈 때마다 어머니는 승용차의 트렁크는 물론 뒷좌석까지 온갖 먹을거리를 가득 실어 보냈다. 또 봄이면 맏물의 정구지부터 겨울이면 분이 뽀얀 곶감까지, 사시사철 온갖 것을 다 택배로 보내시더니…, 이런 어머니의 정성과 사랑은 냉장고 뿐 아니라 아내의 마음까지 채우고 또 흔적이 된 모양이다. 이렇게 보낸 40여 년의 세월 동안 어머니와 집사람은 서로의 가슴에 미운 정보다 고운 정을 훨씬 더 많이 심었던가 보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 아직 반년도 되지 않아서일까? 집사람은 어머니의 흔적이 하나씩 하나씩 사라질 때마다 가슴 아파하고, 지난날을 그리워한다.

집사람이 어머님이란 단어를 입에 올릴 때마다 내 가슴은 먹먹해진다. 어머니가 한없이 보고파진다. 그렇지만 나는 태연한 척한다. 그러고는 어머니는 내 가슴에 살아계시다 여기려 애를 쓴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쳐들고 먼 하늘을 바라본다. 눈망울을 덮기 시작하는 눈물이 들길까 봐.

이곳저곳에서 어머니의 빈자리가 보여도, 여기저기서 어머니의 흔적이 사라지더라도 아쉬워할 뿐 눈물을 흘리지는 않으리라. 영원히, 아니 내가 살아 숨 쉬는 동안은 사라지지 않을 어머니의 흔적은 바로 나 자신이 아닌가. 또 어찌 눈에 보이는 흔적만 있으랴, 어머니가 그리울 때는 내 마음속에 켜켜이 쌓여있는 어머니의 사랑을 꺼내 보면서 보고픔을 달래야 겠다.

 

 

이 석 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