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교사가  모범 교사인가란 정확한 결정된 정의는  없을 것이다.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무장된 교사일   것이다. 모범  교사는  날 마다  시간과 힘을 헤아리지  않고  학생들의 교육에 헌신하는  선생님이  바로  성실한 모범 교사일 것이다. 어린이들의 심리를  연구하며 그들에 대한 애착심이 강하며 또 그들을  알아 주며 귀여워하며 나날  그 무언가를  머리 속에 심어주며  가르치는 교사는 교육자이자 선배다.   교사는   인간을  영도하는  '기구'나  마찬가지다. 아무나 교사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필자는 이 기사를 쓰면서  최웨녜라  와실리예브나와  담화를  가졌는데 그는 마침 부모님들의 이야기부터 시작했다. 수 많은 고려인들은  원동에서 자기 소원으로  이주한 것이  아니고  스탈린  정책에 의해  원동에서고려인들을  머나 먼  카자흐스탄  지역으로   강제 이주  시켰다.

이런 비참한  사연에  대해  누가  모를까?!  이러한 비극은 잊을 수 없다고 한다.  1937-1938년에   쫓김  받은   사람들중에는  최웨녜라  와실리예브나 부모님들  (부친  최와실리  나기가노비츠와  모친 김옐레나   하리또노브나) 가족도 있었다.  가축을 운반하는 건초가 깔려있는  화물차 차량에  앉아 거의 한달을 원동에서 카자흐스탄에 왔다.  수 많은 사람들을  태운  화물차는 결국 어느 한 역에 멈추더니 «여기서 모두 빨리 내리세요!!!» 하며  웨쳤다.   어두운   밤에 내리고 보니 무인지경인  허허벌판이었다.  나중에  알게된 바에 의하면 우슈토베라고  하는  작은 역장이였다.  너무나도 서걸픈데다가 배도 고팠고 더욱  늦은 가을 밤이여서 춥기가  더 말할  수   없었다고  나중에  부친은  딸에게 이야기했다...때마침  저 멀리에서 지방 주민들 (카자흐인들)이 그걸  보고 다가와서  «보잘 것 없는 집이나마 우리 집에 가서 몸을 녹입시다» 하면서 연세있는 분들과  아이들을  데리고 자기  집으로   인솔했다. 그러나 쫓김받아 이 곳에 오게 된 사람들 모두가 갈수는 없었다. 나머지 사람들은  밖에  남아 추워서  떨고 있었다. 어디에 의지할 곳이 없는 불행한 고려인들은수 없어  삽을  빌려   땅굴을  파기 시작했다... 새벽에  파논 땅굴에 들어 앉아 몸을 녹이기  시작했지만 배가 고파서 아이들이 울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는 어머니들은 자식들이 불상해 같이 울었다. 그 울음소리를 차반(양치기 목동)들이  지나가다가 먹다 남은  빵을 아이들에[게 주었다. 다음 날에는 이 차반들이 빵을 더 많이 가지고 왔다...  .  웨녜라의 아버지는 카자흐인들의 그 은혜를 잊어서는 안된다고 항상 말했다고 한다...  세월이 지났다. 최 바실리  나기가노비츠네 가정은 우슈토베에서 오래 살다가 후에 알마아타로 이주했다. 

알마아타에서 귀여운 딸애 웨녜라가 태어났다. 웨녜라는 어려서부터 수학에 취미를 두었다. 그리하여 제 65호 학교에서  10년제를  우수히  졸업한 후에 알파라비명칭 카자흐국립대  수학 학부에 입학했다.   대학에서도 역시 수학능력이 상당한  최웨녜라는 뛰어난 수학 재능을 보였다. 그러나 웨녜라 와실리예브나는 대학원을  희망한  것이 아니라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이 무척  마음에 들어 학교에 취직하여 학생들에게 수학을 가르치기로 하였다. 그래서 카자흐국립대를 졸업하고는  바로 자기가  공부했던 정든 학교에서 교편을 잡기로 하였다. 그 학교는 사트빠예브와  로즤바끼예브 교차점에   위치하고 있는   65호 중학교이다.  낯선  학교도  아니고  낯익은  교실이며  더욱  예전에  그를 가르쳤던  선생님들이 있는 모교이니 일하기가  편했다. 원래 지혜롭고 능숙한 재능을  갖고 있는 젊은 수학교사는 동료들 사이에서 위신이 높았다.

물론 일하는 과정에 문제점들이 발생하는 경우도 있었다. 웨녜라 와실리예브나는 그  문제들을 공평하게 빨리 풀어 나갔다. 알마티시 교육부는 그의 4년간 경험과 일에 대한 책임적 태도를 보고 모범 교사   최 웨녜라  와실리예브나를   65호 중학교  교감으로 임명했다. 다음  얼마 지나지  않아  교육 능력이 뛰여나고 동료들의 존경을 받는 웨녜라 와실리예브나는 본 학교 교장으로 임명받았다.  젊은 교장의  의무와 책임감이 점점 무거워짐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 그는 이 직책에서 시간을  헤아리지 않고 동료들, 학생들과 더불어 재미있는  교직 생활을  살아왔었다.  교직에 헌신하는 웨녜라는 어느덧 23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나라의 미래를 위해 성실하게 교직생활을 하는 동시에 행복한 가정 생활도 꾸미였다.  최베녜라  바실리예브나는 사랑하는 남편 고 드미뜨리와 아들, 딸들을 자래워 지금은 손군들과 교제의 기쁨을 나누고 있다. 교직 생활 속에서  많은 세월을 보낸 웨녜라 와실리예브나에게 있어서 이제 대학원, 박사원은 과거로 되었다. 지금 그는 알마티의 이   름난  «도스따르 –리쩨이»에서 수학을 가르치면서  특별 수학 교수법으로  학생들에게  수학 지식을  심어주고 있다.  교직 생활에 일생을 이바지하는 최 웨녜라 와실리예브나에게 교사의 날을 충심으로 축하하면서 건강과 행복을 기원하며 새 자라나는 세대 교육에서  큰 성과를  바란다.

                                                                최미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