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왈렌찐 레온찌예위츠를 악싸이시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다. 의사의 소질을 가지고 태여나 사람들의 치료에 일생을 바친 그는 만사람의 존경을 받고 있다. 왈렌찐 레온찌예위츠는 부를린쓰끼 구역 명예공민이다. 원기왕성한 이 분을 보면서 어릴적에 부모와 함께 카자흐스탄으로 강제이주되어 아동시절때부터 수월하지 않는 생의 길을 걸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다. 30년대 말에 원동에서 거주하던 모든 고려인들이 그런 운명을 지니게 되었다…

-저의 부모들은 블라디보스톡에서 살았습니다. 아버지의 성명이 윤경팔이였는데 그는 이발사로 일했습니다. 어머니 천 안나는 판매원이였어요.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리고 누님 예까쩨리나가 우리와 함께 살았답니다 – 왈렌찐 레온찌예위츠가 이야기 한다.

이상의 사연을 왈렌찐 레온찌예위츠가 부모들의 이야기를 듣고 알고 있다.

-그 때 어떤 일이 있었는지 내가 어떻게 기억하겠습니까? – 그가 말한다 – 강제이주의 해에 내 나이가 한살않았거던요…

그당시에는 고려인들이 무슨 잘못이 있어서 24시간 내애 정든 곳을 떠나게 했는지 알수가 없었다. 왈렌찐 레온찌예위츠의 말에 의하면 쏘련 원동지역에 살았던 고려인들이일제의 간첩이라는 의심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누가 적인지, 누가 적이 아닌지 밝힐 시간이 없었기에 고려인 남녀노소들을 다 짐차에 실어 알지 못하는 곳으로 보냈다.

-왜곤바닥에는 짚이 깔려 있었답니다. 뒤섰여 잤다고 들었습니다. 서둘러 만들어 놓은 판자침대에서는 노인들이 잤습니다. 고려인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을 (먹을 것과 의복) 조금씩 가지고 가라고 했습니다. 물만은 공급받았습니다. 거의 한달동안 차를 타고 갔습니다 – 윤 왈렌찐 의사는 부모들이 들려준 쓰라린 이야기를 우리에게 하였다.

가는 도중에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아버지가 말한바에 의하면 할아버지의 시체를 흰 천에 싸서 왜곤 밖으로 버렸답니다 – 밖으로 나가는 것을 허가하지 않았으니까. 어디가 할아버지의 영민의 땅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 왈렌찐 레온찌예위츠가 한숨섞인 어조로 말했다…

결국 목적지인 카자흐스탄의 까라간다시에 도착했다.

-처음에 어디에 실려 왔는지 알 수가 없었답니다. 캄캄한 밤이였는데 모두를 화물자동차에 나누어 실어 어디론가 싣고 갔습니다. 도시도 아니고 농촌도 아닌 허허벌판이였습니다. 고려인은 여자들과 아이들을 가운데 넣고빙 둘러 막았습니다. 이렇게 밤을 세웠습니다. 아침에 지방주민-카자흐인들이 우리가 있는 곳에 와서 호기심을 품고 바라보았습니다. 그것고 그럴 것이 고려인들에 대해 원동에서 <식인종>들을 실어왔다는 소문을 퍼뜨렸거던요…

그런 무서운 말에도 불구하고 바로 카자흐인들이 불행한 고려인들과 거처와 먹을 것을 나누었다. 그들은 자기 유르따와 흙벽집에 고려인들을 받아들였다. 이렇게 한 겨울을 지냈다. 다음해 이른 봄부터 근면한 고려인들이 농사를 하면서 집을 짓기 시작했다.

-카자흐인들의 은혜를 어떻게 잊을 수 있겠습니까? – 왈렌찐 레온찌예위츠가 흥분을 가시자 못하며 말한다 – 평생 잊지 못하며 감사한 마음을 언제나 가슴속에 두고 있습니다.

고려인들 외에 중국인들도 카자흐스탄에 실려왔고 전쟁시기에는 체첸인들 기타 민족들도 이 곳에 강제이주되었다. 민족마다가 집합하여 살았지만 서로 교제하는 데는 아무런 차별이 없었고 여러 민족이 화목하게 지냈다고 우리의 주인공이 회상하였다. 그런데 그 시기에 고려인들이나 강제이주된 기타 민족 대표들이 마음대로 이동할 수가 없었다. 한마디로 말해서 까라간다를 벗6어날 수 없었다. 그리고 정기적으로 내무서에 가서 재등록을 해야 하였다. 오직 1954년에 들어서서야 이동이 허가되었다.

-그 때 많은 체첸인들이 귀국을 했으나 고려인들은 계속 까라간다에 남았습니다. 하긴 부모들은 블라디보스톡으로 돌아가려는 시도를 했으나 그 곳에 이미 면목있는 고려인들이 누구도 없어  까라간다로 되돌아 왔습니다.그 시기에 윤 왈렌찐은 하바롭쓰크 의대 2학년생이였다. 부모들이 계속 카자흐스탄에 남아서 살았기에 부득이 까라간다 의대로 옮기게 되었다.

윤씨네 가족은 영원히 새 조국 카자흐스탄에 남았다. 대학을 졸업한 왈렌찐은 서부카자흐스탄주 싄긔르라우쓰끼구역 병원에 파견되었다. 그후 우랄쓰크와 악싸이에서 일했다. 윤 ㅇ랄렌찐 레온찌예위츠는 구역병원과 주병원 책임의사, 개인병원 원장으로도 근무하였다. 지금도 ….넘었는데도 유한책임회사 <암불란쯔>에서 계속 환자들을 치료하고 있다.

-카자흐스탄은 우리 고려인들에게 있어서 정든 집으로 되었습니다. 나는 사람이 태여난 곳이 조국이 아니라 자라서 마음에 드는 전문직업을 소유하고 일하면서 아무런 근심걱정이 없이 편안히 사는 곳이 조국이라고 간주합니다.

이리나 슈클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