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공 아르까지는 소련 사회가 강요하는 체제이념을 그대로 그림에 수용할 수밖에 없는 현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해 볼 수 없는 현실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위의 인용문에서 보는 화가 아르까지의 자조는 이와 같은 소련의 사회체제와 당국의폭압적 통제에 대한 비판적 인식을 드러낸 것이라 하겠는데, 소련 시절의 예술정책을대한 시각 또한 그러하다. 소련 예술계에는 “우리들의 삶을 그대로 복사하는 사실주의화가가 있고, 삶과는 유리되어 있는 전위주의 화가”가 있는데, 그러나 “전위주의 화가들한테는 그림 전시 기회가 주어지지 않”고, 그래서 이들은 생활이 어려워 “지하실에서지내고” 있다는 지적이 그것이다.

작가는 이 작품에서, 화가를 꿈꾸는 소녀 아나스따시야를 통해 창작의 자유, 예술의 다양성을 원천 봉쇄하고 사회주의 이념에 맞게 획일화시키는 소련 당국의 예술정책을 비판한다. 사실주의 화가가 “삶을 그대로 복사하는”화가라면, 전위주의 화가는 “삶과는 유리되어 있는” 세계를 화폭에 담아내는화가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에게는 전시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스탈린과 후르시초프 시절 소련에서의 엄중한 사회 통제를 가늠케 하는 대목이다.소련 당국이 강요하는 사실주의는 이 시기 문학이 그러했던 것처럼, 예술 전 분야에걸쳐 사회주의 이념을 찬양 선전하는 체제 영합적인 내용을 담은 작품들을 양산하게한다, 미술 분야도 예외가 아니었고, 그래서 소위 사실주의 화가의 작품들은 어떤 예술박 미하일, 천사들의 기슭, 해바라기 꽃잎 바람에 날리다, 새터, 1995, 118면. 이하 작품인용은 면수만 밝힘.성도 담보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대대적으로 선전되고 전시 기회도 많이 제공받았다. 이에 반하여 전위주의 화가들의 작품은 전시 기회는커녕 “불도저로 다 쓸어”내버려진다. 따라서 삶과는 유리된 것처럼 보이지만 그러나 오히려 시대의 모순을 극복할수 있는 비전과 함께 예술성을 추구하는 전위주의 화가들은 절망하게 되고, 체제에순응하거나 창작을 포기한다. 전위주의 화가 볼스끼의 죽음은 이러한 시대 상황이빚어낸 비극에 다름 아니다. 이 작품의 주인공 아르까지와 함께 그림을 그리던 볼스끼는 사회주의 이념에 속박된 그림을 그리기를 포기, 생활고에 시달리다가 자신의 예술세계를 제대로 펼쳐보지도 못하고 결국 자살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주인공 아르까지는 “아저씨는 어떤 쪽이세요? 전위주의자예요?”라는 화가 지망생 소녀 아나스따시야의 질문에 아무런 답도 하지 못하고, 문득 자신을 되돌아본다.

천사들의 기슭에서 작가는, 스탈린 집권 이후 개혁개방 이전까지 소련의 억압적인 시대 상황에 대한 비판적으로 인식과 함께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전망을 모색해 보이는데, 이는 화가 아르까지의 정체성 탐구로 이어진다. 박 미하일은 이 작품의 창작동기와 관련하여 “내용은 공산주의 체제의 획일적인 문화정책 하에서 자유로운 예술혼을 찾고자 하는 한 화가의 모습을 그린 것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결코 이념적인 소설은 아니다.”라고 밝힌다. 예술가라면 작가의 창조적인 예술 활동을 탄압하고 사회주의이념 지향만을 강요하는 사회체제를 마당히 거부하고 저항해야 하지만,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창작의 자유나 예술성이 담보되는 것은 아니다. “공산주의 체제이든 자본주의 체제이든, 어느 시대 어느 체제하에서도 예술가가 마주치는 가장 큰 벽은 자기 자신이기 때문이다.” 주인공 아르까지의, 그를 통한 작가의 자기정체성 탐구를 ‘예술’을매개로 하여 구체적으로 드러내고 있다는 점은 이 작품의 두드러진 덕목이다.이 작품의 주인공 아르까지는 모스크바 생활을 청산하고 고향 아우깐으로 돌아간다. 아우깐은 그가 태어나 자란 조선인 집거마을로, 그의 어머니, 아이 넷을 둔 누나도남편과 함께 살고 있다. 그리고 아르까지가 반년 간 함께 살았던 조선인 막심 최와 그의아내 유라가 땅을 임차하여 양파를 재배하며 살고 있다. 그의 고향에는 여전히 다양한조선인들이 살고 자신의 과거에 대해 말하지 않았고, 또 그 누구도 알려 하지 않는다.모스크바로 떠나며 다시는 고향 아우깐에 돌아오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아르까지는박 미하일, 「작가의 말」, 위의 책, 9면.박 미하일 소설 연구 무엇 때문에 "그렇듯 세상을 전전하고 다녔는지“ 언제인가 그 이유를 ”스스로도 알게될 날이 있을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런 가운데 그는 참으로 세상을 많이 전전하고 다녔다. 그리고 귀향 후 그는 철도회사 차고에서 안전조치와 관련된 선전 포스트를그리며 생계를 꾸려간다. 그는 자신이 마치 포도송이에서 떨어져 나온 작은 알갱이같다고 느끼면서, '내가 누구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제기한다.

나는 조선을 주제로 한 그림을 아직 한 점도 그려보지 못했다. 나는 조선인이고내가 이 사실에 대해 생각하고 있지 않다고 말할 수는 없다. 오히려 그 반대로 나는끊임없이 이 사실에 대해 생각해왔다. <내가 누구인가?>라는 생각 하나만으로정신이 퍼뜩 들 때가 있다. 유럽인이기도 하고, 조선인 얼굴을 한 러시아인이기도하고,  내가 누구일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나는 찾지 못했다. 이 사실을 그림으로 한번 그려보는 것은 어떨까?25)고향을 떠난 아르까지는 오랜 세월 때로는 “유럽인기도 하고” 때로는 “조선인 얼굴을 한 러시아인”으로 세상을 섭렵하고 다닌다. 말하자면, 잃어버린 ‘나’를 찾아서 세상을 전전한 셈인데,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누구인가?’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찾지 못한다. 그는 지금까지도 “조선을 주제로 한 그림을 한 점도 그려보지 못”한다.조선인을 상징하는 색은 흰색인데, 하얀 화폭에 흰색 물감으로 그림을 그릴 수는 없기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표면적 이유일 뿐, 그 이면에는 정체성 혼란이 기저하고 있다.러시아인도 아니고 유럽인도 아니고 조선인도 아닌, 러시아인일 수도 있고 조선인일수도 있는 ‘나’는 여전히 경계인(marginal man)에 지나지 않으며, 따라서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는 ‘노 마드’의 삶을 계속할 수밖에 없는 그는 ‘조선’의 형상을 상상할 수가 없다.“겉모양 말고는 조선인다운 면이 하나도 없”(132면)는 아르까지는 ‘조선’을 주제로 하는 그림을 그려낼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러한 자신의 모습,여전히 러시아인인지 조선인인지 ‘나’를 찾지 못하는 “이 사실을 그림으로 한번 그려보”려 한다.그러나 천사들의 기슭의 주인공 아르까지는 이를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그는조선과 조선인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해왔고, 그래서 “<내가 누구인가?>라는 생각 위의 작품, 149면.하나만으로 정신이 퍼뜩 들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개혁개방 이후 “민족적 자각 운운하면서 잃어버린 언어를 배우기 시작하고 서로들 자신이 그 누구보다도조선인에 가깝다고 입에 거품을 물어가며 내세우는” 주변 사람들을 못마땅해하고 경멸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아르까지의 아내 넬리도 아르까지와 크게 다르지 않다. 넬리는 조선인인데, 그녀는조선족 마을에서 자라지 않아 조선말도 모르고, 관습도 모른다. 그녀의 부모 또한 전혀알지 못한다. 하지만 그녀는 그것을 창피하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1937년 스탈린정부에 의해 연해주에서 중앙아시아 지역으로 강제이주당한 조선인들은 공민권 박탈과 주거 제한, 그리고 민족어(조선어) 사용 금지 등의 차별과 통제를 받는다. 이에따라 조선인 사회는 조선말을 쓸 수도 배울 수도 없게 되고, 이 때문에 점차 조선의전통적 관습이 사라지고, 조선인 마을에 모여 사는 사람들조차 조선말 대신 러시아어를 일상어로 사용하기에 이른다. 뿐만 아니라, 러시아인이나 현지인과 혼인하는 이른바 이민족과의 혼인도 점증한다. 조선인 사회에 이른바 탈(脫)민족, 러시아인화 현상이 확산되기 시작한다. 따라서 얼굴 생김새가 아니면 조선인다운 면이 전혀 없는 넬리로서는 조선말을 모르는 것이 자랑은 아니지만, 부끄러워할 일도 아닌 것이다. 오히려뒤늦게 ‘민족적 자각’ 운운하며 앞 다퉈 조선인척 허세를 부리는 일이 창피할 뿐이다.

정덕준, 김게르만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