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조국전쟁 전승기념일인 5월 9일이 되면  많은 사람들이 꽃다발을 들고 무명전사의 영원한 불꽃 앞에서 머리숙인다.  

 

모쓰크와 크레믈리를 배경으로 한 영원한 불꽃이 피는 무명전사의 묘지에  살아남은 전우들과 그들의 후손들이 안아다 드린 꽃은 추위에 시들고었건만 그러나  꽃을 들고 전승기념일에 이곳을 찾아오는사람의 매 가슴마다에 엉킨 뜨거움을 능히 짐작할수있다. 전장에서 쓸어진  아들딸들은  다른 사람들의   생을 위해  자기   생명을 바쳤다.

웬 여인이 가지고 온 꽃을 드리고  

말없이 허리를 굽히며 찬 돌에 입을 댄다. 

돌아오지 못한 영웅들의 안해인가 , 전우인가, 어머니인가 ,후손인가 ?

침략자들의 총칼앞에서도 숙지 않은  이 나라의 여인이 

말없이 머리숙인다. 무명전사의 묘지앞에서

 구원된 세계에서 살아가는 우리 모두를 대표하여

러시아의 여인이  그  의젓한 머리를  깊이숙인다

쓰러진 이 나라의  아들딸들의 영혼 앞에서. 

 

불란서를 비롯한 많은 유럽나라들을 정복한 히틀러 독일군은 많은 인적피해를 당하면서도 세계지배야망을 버리지 않고 침약전쟁을 계속하였다. 유럽나라들에 많은 강제수용소를 만들고 아무런 죄도 없는 수많은 사람들을   학살했고 그중 학살당한 유태인들의 수만해도  600만명에 달한다

히틀러강도배들은  1941년여름에 쏘련 국경을 불의에 침범하였고  수백만명의  무고한 주민들을  계속 학살하면서  단시일내 에 모쓰크와 교외로 진격했다.

쏘련군은 반돌격 하여 적군을 추격하면서 쓰딸린그라드를 비롯한 여러 곳에서 규모큰 대격전을 전개하였고  매번  히틀러독일침략군에게 치명적 타격을 가했다. 이윽고  1945년 봄에 베를린시 독일의사당 우에 붉은기를 계양하게 되자 히틀러 독일은 무조건항복을 하게 되었다. 위대한 조국전쟁은  쏘련사람들의 거의3천만명의 인명을 아사갔다. 이것은 상상하기 조차 어려운 천문학적 수자이며 이는 곧  쏘련에 사는 주민들의 거의 집집마다가 인적 피해를 당했다는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동방에서는 제2차세계대전이 끝나지않았다. 여기에서 필자는 유감스럽게도 몇년전에 우리곁을 떠난 정상진 선생의 이야기를 인용한다. 

...태평양함대의 육전대원이 였든 정상진은   육전대원들과 함께 6정에 어뢰정에 분승하여조선반도에 있는 웅기항을 향해 출동했다.  이 때 레오노브대위는 «당신의 조국을 일본침략자들로부터해방하는 전투입니다.  조선은 자유로운 나라로 될것입니다. » 라고 말했다. 정상진부대는 웅기항에 아무런 전투 없이 상육했다. 바로 이때 피난을 갔든 많은 사람들이 돌아왔다. 정상진은 그들에게 «여러분, 당신들은 오늘 이순간부터  해방된  자유로운 사람들입니다 »라고 말했을 때  그들은 «아이구 선생님 ,당신은 조선분이시구만 » 하면서 그 즉시로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정상진육전대원들은  블라지워스또크를거처  청진항으로향했다. 그들의 전투과업은 청진항에 상육하면서 일본군과 교전하되 적들의 화점을 비롯한 방어체계를  전투세례를 통하여 정탐하며  얻은 상황을 본부대지휘처에 무전으로 연락하는것이였다.

공격전투가 시작되었을때 일본군은  결사적으로   반항했다 . 공격하는 육전대원들의 주위에서는 포탄들이 연속적으로 파렬했고 총탄이 비오듯 했다. 많은 부상병들이 발생했 다.  위생병 마리야 츠카노와는 적탄알이 빗발치는 속에서 50명의 부상병들을 운반하였고  제때에 구급치료하여  그들의 생명을 구원했다.

1945년8월 6일에 미군은 일본  히로시마에 원자탄 을 투하했고  16만명이 즉사했 했다 그리고 그후 3일이 지난    8월 9일에  나가사끼에 투하한 원자폭탄은   8만여명의  인명을 앗아갔다.  일본정부는 무조건 항복을 했다.

조선주둔  일본군나남사단은 8월15일에 일본이 무조건 항복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투항하지 않았고 청진항을 필사적으로 방어하였다..8월 13 ~ 22일간에 거친 전투에서 나진 ,원산을 방어하든 일본나남사단은 패배를 당하고 항복했고 근6000명이 포로되었다. 

정상진부대전투원들은  절반이 전사했다. 후에 해명한 바에 의하면  가열한 전투환경에서 위생병 마리야 츠카노와는 반돌격하는 일본군에게 포로되여 잔인하게 피살되었다.

쏘련정부는 마리야 츠카노브에게 사후 쏘련영웅 칭호를 수여했다.

만주와 조선일대에 배치되었든  일본 관동군 100만대군은 쏘련군에게 패배를 당하고 60만명이 포로되어 쏘련의 추운 시베리야 포로수용소로 호송되었다.  많은 일본군  장병들이 귀가하지 못하고 사망했다.   

위대한 조국전쟁이 끝난 그 때로부터 많은 세월이 흘러 강산이 변했고 우리 인간사회도 변했지만   그러나 그 누구도 그 무엇도 잊지 않았다. 우리는 과거를 거쳐 현재에 이르렀고  과거의 우리  인류가 겪은  즉 수천만명의 생명을 앗아간 비극과 불행을 그야말로 잊을 수 없다.

그런데 1950년 6 .25전쟁이 발발했다. 그  때  19세되는  대학생이였든  나는 전체 대학생들과 함께  참전했다. 나는 인민군에 입대하여38선을 넘어 평양으로 진격하는 국방군과16개국으로 구성된  외래무장간섭자-국제연합 군을 대항하는 조국보위에 나섰든것이다.

.이 싸움에서 우리는 외롭지 않았다. 쏘련은  비행기를 비롯한 무기를 원조했고 중국은 지원군을 파견했다. 

3년동안 계속된 전쟁은 또 수십만명의 생명을  앗아갔다. 즉 남조선 – 230만명, 북조선- 292만명, 유엔군- 15만명,미군 - 20만명 , 중국지원군- 90만명이 희생되었다. 그럼에도 불고 하고 조선반도는 통일되지 않았고 그대로 북과 남으로 여전히 양단되어있다.조선전쟁의 후과는 한반도에 이런 비극을 남겨놓았다. 

북조선 농촌출신인  나는 8세부터 역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빠저나오지 못했고  이윽고 늙으막에 이르러 정착하게 된곳은 카자흐쓰탄이다. 위대한 조국전쟁시기에 전선과 후방에서 카자흐스탄인약 백만명이 참전했고 그중 500명이 쏘련 영웅칭호를 받았다. 지금 카자흐쓰탄에는 약 130여민족이 평화로운 하늘 아래에서 살고 있다 . 나자르바예브 대통령은 민족간 친선도모를 자기 정책의 가장 중요한 기본문제로  내세우고 있기 때문에  민족적 갈등이 없고   따라서 여러 민족이 화목하게 살고 있다. 

카자흐쓰탄에 정착한 나는  후대들을 교육하는 교원으로 여러해를 보냈다. 해마다 여러 민족 – 졸업생들과 함께 5월 9일 전승기념일에 다 같이 판필로브공원으로 가는 것이 전통으로 되었다. 우리는 영원한 불꽃이 피는 무명전사 묘지 앞에 꽃다발을올리고 고개를 숙인다. 

김종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