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올해는 봉오동 전투 전승 제98주년을 맞이하는 해다. 홍범도장군기념사업회가 주최하는 봉오동 전투 전승 제98주년 기념 국민대회가 최근에 열렸다. 봉오동 전투는 일제강점기였던 1920년 6월 만주 봉오동에서 독립군 부대가 일본 정규군을 대패시킨 전투다. 만주 지역에서 한국 독립군과 일본군이 벌인 최초의 대규모 전투였다. 그 전투를 진두지휘했던 인물이 홍범도 장군이다. 때맞춰 육군사관학교는 홍범도 장군에게 육사명예졸업증서를 수여했다.

홍범도장군은 무장독립투쟁의 전설적 영웅으로, ‘백두산 호랑이’, ‘날으는 홍범도 장군’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봉오동 전투 뒤에 벌어진 청산리 전투로 유명한 김좌진 장군에 비해 비교적 덜 알려졌고, 또한 그의 다사다난한 인생역정이 한 편의 드라마와도 같아서다. 머슴 출신의 아버지 슬하에서 태어난 홍범도 장군은 백두산에서 호랑이를 사냥하면서 생계를 꾸려갔다. 그는 1895년 을미사변을 계기로 강원도 철령에서 의병을 일으켰다가 1910년 일제에 의한 한일병합 이후 연해주로 건너가 독립군으로 활동했다. 독립투쟁을 벌이는 과정에 그의 부인은 일제의 고문으로 사망하고, 두 아들은 전투에서 전사하는 등 개인적인 가정사에 불운을 겪어야 했다. 그래도 독립을 향한 그의 강한 의지를 꺾을 수 없었다.

홍범도 장군이 이끌었던 대한독립군은 봉오동 전투에서 승리한다. 연이어 벌어진 청산리 전투에서도 일본군에 맞서 승리한다. 홍범도 장군은 두 번의 전투 이외에도 일본군과 맞서 싸운 수많은 전투에서 한 번도 패배한 적이 없었다. 그러니 일본군에게 그는 눈에 가시 같은 존재였다. 청산리 전투에서 큰 활약을 했지만, 한동안 우리의 역사서에는 북로군정서를 이끌었던 김좌진 장군의 공적으로 기록되어 있었다. 1991년 말 구소련이 해체되기 전까지 전 세계는 자본주의와 공산주의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냉전시대였다. 그의 유해가 구소련에 안장되어 있단 이유로 김좌진 장군에 비해서 크게 부각되지 못했다.그는 연이은 전투에서 패배한 일제의 보복전인 간도 자유시 참변에서도 살아남았다. 1917년 러시아가 공산화된 이후 1937년 소련의 스탈린에 의해 고려인 강제이주 정책이 이뤄졌다. 그는 당시 소련 영토였던 중앙아시아(현재의 카자흐스탄) 땅으로 강제 이주되어서 거기서 남은 생을 마쳤다. 현재 카자흐스탄 끄즐오르다 시에 그의 무덤이 있다. 대한민국 정부는 홍범도 장군의 무장독립투쟁의 공적을 기리고자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수여했다. 대한민국 해군은 최신예 잠수함에 홍범도 장군의 이름을 붙여서 홍범도함이라고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