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고려인 최초의 <조선시집>이 수원대 사학과 박환 교수의 노력에 의해 재판되었다. 아래에 박교수님의 이 책에 대한 해설을 게재한다.

1980년대 한인들이 러시아로 이주한 이후, 수많은 한인들은 그들의 생존을 위하여 끊임없이 노력을 전개하였다. 특히 1905년 을사조약에 의해 외교권이 박탈당한 이후에는 국권회복을 위한 가열찬 항일투쟁에도 참여하였다. 이러한 한인들의 독립투쟁에 많은 문인들도 동참하였다. 연성용, 태장춘, 조명희 등은 그 대표적인 인물들이다. 조명희의 경우 블라디보스토크 항구가 내려다보이는 독수리전망대 근처 극동연방대학교 과학박물관 정원에 <포석 조명희 문학비>가 세워져 있어 우리에게 보다 큰 감동으로 다가온다. 아울로 하바로브스크 콤소몰스카야 거리에는 그가 살던 집이 아직 남아 있어 보는 이의 마음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더구나 하바로브스크 중앙공원묘지 입구에는 1937년 중앙아시아로 강제이당항 조명희 등을 추모하는 성당과 기념비가 서 있다.

한인들이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동된 뒤, 1938년부터의 한국문학은 강태수, 김광현, 김기철, 김남석, 김두칠, 김 보리스, 김세일, 김용택, 김종세, 김준, 김증송, 김 파벨, 남철, 리 바실리, 명철, 박 미하일, 박성훈, 연성용, 양원식, 오 블라디슬라브, 이은경, 이종희, 임하, 장윤기, 전동혁, 정상진, 조정봉, 주송원, 차원철, 최 예까쩨리나, 한상욱, 한 아폴론 등에 의해서 주도되어 왔다. 그러던 중 1958년 우리의 옛 작품들과 러시아지역 및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활동했던 여러 시인들의 시들이 하나의 작품으로 꾸며지는 성과가 이루어졌다. <조선시집>이 바로 그런 것이다. 

<조선시집>은 카자흐스탄의 크질오르다에 있는 고려인 작가들이 알마아타에 소재한 카자흐국영문예출판사에서 출간한 종합시집이다. 편자는 박일교수이고 <레닌기치>신문의 주필인 남해룡, 그림을 담당했던 김형윤 그리고 기자이자 시인인 김철수와 한혜원이 교정을 담당했다. 조선시집에 대한 전체적인 내용과 발간 계기 및 목적 등에다음의 편자의 서문에 잘 나타나 있다.

<조선시집>을 조선인 독자들에게 소개한다. 이 책은 타스켄트에서 열리는  아시아 및 아프리카 작가 콘페렌치야와 모스크와에서 열리는 카사흐 예술문학순간을 잎두고 출판한다. <조선시집>은 조선문학의 발전 계단들을 차례로 하였는바 모두 삼편으로 나누이었다. 신라, 고려, 리조 시대의 걸작인 시조와 녀류작가들의 시를 모아 제일편의 끝으로 하고 실학파의 권위자들인 박연암, 정다산의 시와 조선의 위대한 풍자시인이오 계몽자인 김삿갓의 시를 선집하여 제 1편의 끝을 맺았다.<조선시집>의 한문 번역시들 중에서 녀류작가들의 시는 리용수의 번역이다. 이 번역시들이 조선문학사의 연구에나 또는 장차 한문시의 번역에 적지 않은 도움을 주리라고 믿는다.<조선시집>의 2편은 현대 조선시인들 작품 중에서 골라 넣었으며 제 3편은 쏘련 조선인들의 시편을 소개하는 것이다.국한된 지면으로 인하여 고대 또는 현대의 유명한 작가들의 시를 다 골라 실지 못하였다. 앞으로 큰 시집이 나오리라는 것을 기대하면서 후 기회로 밀어둔다.<조선시집>은 쏘련 조선인 독자들에게 여러가지 사느르로 된 시들을 소개하는 것이다. 조선의 시문을 연구하는 독자 여러분에게 한 개 참고로 된다면 편자는 적이 민족하는 바이다.

위에서 보는바와 같이 <조선시집>은 우즈베키스탄의 수도 타슈켄트에서 열리는 아시아 및 아프리카 작가 회의와 모스크바에서 열리는 카자흐 예술문학순간을 앞두고 출판되었다. 책은 모두 3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1편은 신라, 고려, 조선 시대의 걸작인 시조와 여류작가들의 시를 모았고 2편은 현대 조선시인들 작품 중에서, 제 3편은 고려인들의 시를 모아 편집하고 있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1편에는 시조 51수, 여류한시 29편, 실학파 연암 한시 7편, 다상의 한시 2편 등 총 9편, 김삿갓 김병연의 한시27편, 동요 9편, 민요 1곡 등 총 126편이 게재되어 있다. 2편에서는 김소월 11편, 이상화 3편, 조명희 7편, 김창술 2편, 륭완희 4편, 조운 6편, 박팔양 5편, 박세영 3편, 조기천 6편 등 총 20명의 시인의 글이 실려 있다.

이 책이 지니는 의미는 1937년 중앙아시아로의 이주 이후 문학작품집을 한 번도 만들지 못한 고려인문화계의 염원이 담겨져 있다는 것이다. 스탈린 시대 내내 조선인은 무국적 민족으로서 제약 받는 민족으로 전락하였다. 민족 문화나 고려인 문화를 표방하기에는 너무나 제약이 많았기 때문이다. 1953년 스탈린이 죽고 후르시쵸프가 전권을 장악하는 데는 몇 년의 시간이 흘렀다. 1957년에 비로소 고려인들의 복권이 이루어지기 시작하고 소비에트 구성원으로서 자리를 찾았다. 그런 의미에서 <조선시집>은 민족어로 된 문학매체로서 최초의 결과물이지만 고려인들의 민족적 복권이 가시화되는 의미도 함께 지니고 있다. 고려인들의 감희는 이 때문에 남다른 것이다. <조선시집>의 발간 이후 고려인문단은 점차 한글로 된 작품집이 간행되기 시작한다. <조선시집>은 바로 고려인 작품집의 출발점이다.

아래에 <조선시집>에 들어간 시 2편을 소개한다:

조기천

수양버들

아침마다 창문을 열면

봄빛을 줄줄이 드리우며

수양버들이 흐느적 흐느적,

그러면 내 마음의 천정에서도

무엇인지 봄빛을 흘리며

줄줄이 내리네 드리우네

온 하루 일터에서도

머리 속에서 실버들이 흐느적이네

그러면 나도 모를 큰 힘이 

가슴속에 푸르게 자라나네

아침마다 의젓이 푸드러지는 실버들

어찌면 저리더 내 마음 같으리!

 

태장춘

김만삼에게 대한 노래

치일리 구역 <선봉>조합

선진 로인 게신데

금년인즉 환갑지난

붖조장인 김 만삼.

사십여년 논판에서

찬물밟아 얻은 법

큰 살림에 행복 주니

장하도다 김 만삼.

자기 지단 비단같이

걸음내고 피루어

높은 수확 얻어내니

모범하게 김 만삼.

꼴호스의 자랑이여

벼 농사에 선수요

농업계에 이름있는

훈장받은 김 만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