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국제 아동보호절 전야에 알마티시 제1호 아동병원 렌트겐 진단실 실장 김 안나 로마노브나 의사를 찾아갔다.

-안나 로마노브나, 원래 의대에 여러 과가 있는데 왜 소아과를 택하였는지요? 어릴적부터 자라서 의사가 되어 어린이들을 치료하려고 꿈꾸었던가요?

-그런게 아니구요, 제가 어렸을 때 몹씨 앓았던 일이 자라나면서 그런 생각을 가지게 한 것 같습니다. 부모들의 말에 의하면 제가 태여나자 마자 페염에 걸려 많이 앓았답니다. 그 시기에는 유일한 항생제가 페니실린이였는데 그것을 구하기가 아주 힘들었지요. 세계대전이 끝난후 7년밖에 지나지 않았으니 나라에 모든 것이 부족한 것은 당연한 일이였겠지요. 그래서 저를 치료하기 위해 부모들이 많은 고생을 하였답니다. 제가 완쾌되기까지 수년이 걸렸어요…

자식이 일곱명이 되는 큰 가정에서 경제상 어려움도 많았던 것이 사실이다. 안나의 아버지는 평범한 사무원이였다. 살기가 더 나은 곳을 찾아 이주도 몇번 하게 되었다. 안나가 중학을 졸업할 무렵에 그들은 타스켄트주 양기율시에서 살고 있었다. 안나는 중학을 금메달로 졸업하고 의사가 되려는 희망을 계속 버리지 않았기에 모스크바로 떠났다. 그러나 그해에 치료과에 입학하지 못했다. 제약과에 입학하라는 제의를 받았으나 그것을 거절하고 학교의 화학실험실에서 실험수로 1년 일했다. 안나는 원래 화학을 좋아했다. 그래서 학창시절에 시, 주, 전국 화학올림피아다에 참가하여 시상대에 여러 번 오르기도 하였다. 

안나는 다음해에 알마아타의대 소아과에 입학하여 7년간 공부했다. 그 과정에 1년 (1976-1977년) 소아외과 인테르나투라에서 일했다. 가정의 어려운 형편을 잘 아는 안나는 의대에서 공부하는 과정에 3학년때부터 아동병원에서 간호원으로 일하면서 학업과 일을 겸했다. 그 당시에는 대학을 졸업하면 보통 일정한 곳으로 파견을 받아 일하게 되여 있었다. 이것은 의대에만 관계되는 것이 아니라 쏘련의 교육체계가 그랬었다. 그런데 안나는 다행히도 알마아타의 제 1호 아동병원에 남아서 일하게 되었다. 이것은 행운이라기보다도 안나가 그동안 간호원으로, 아동외과로 일하면서 보인 실력과 성실성이 적지 않은 역할을 논 것이 물론이다. 

-안나 로마노브나, 그 동안 아이들을 치료하면서 가장 충격을 받은 일이 있었다면…

-1988년 5월 20일은 저의 기억에 영원히 남은 날로 되었습니다. 아는 원인에 의해 그 때는 이 사변을 널리 알리지 않았지만 자분도 아마 들었을 것입니다. 제 1호 알마아타역에서 있은 폭발사건이입니다. 날씨도 따뜻해져서 그랬던지 그 주변에 아이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300명의 아이들이 우리 병원에 실려 왔습니다. 주로 화상을 입은 어린 환자들이였지요. 더군다나 저에게 이 환자들의 치료에 대한 책임이 맡겨졌습니다. 병원에서 밤을 새우기도 하고 스트레스도 많아 건강에 피해를 입었습니다. 제가 이 병원에서 거의 반세기를 일하는 동안에 아이들의 그런 집단적 비극을 두번 겪었습니다. 한번은 아이들을 태운  버스두대가 뒤집힌 일이 있었습니다. 이 두가지 사건을 회상만해도 스름이 끼칩니다.

-소아와과로 일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수술은?

-한 아이가 자기집 발코니에서 놀고 있었는데 윗층 발코니에서 유리가 떨어져 깨지면서 아이에게 부상을 입혔습니다. 그것도 복강에 부상을 입어 수술을 하는데 몇시간이 걸렸습니다. 그 애를 구원한 것이 저에게는 큰 기쁨이였습니다.

-안나 로마노브나, 소아과로 일하다가 왜 갑자기 렌트겐실로 넘어갔는지요? 아마 재교육을 받아야 했겠지요?

-물론이지요. 의사자격향상소에서 교육을 받았습니다. 좀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내가 위에 이야기했던 폭발사건이 그 원인으로 되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내가 그 때 얼마나 고생하고 스트레스를 받았던지 남편이 치료과에서 일하는 것을 절대 반대했습니다. 남편이 하는 말이 <자식들에게 건강한 엄마가 필요하다>는 겁니다. 우리는 이미 자식 둘을 자래우고 있었지요. 그래서 남편이 <치료과에서 나오든지 아니면 직장을 영 포기하던지…> 이런 최후통첩을 내 세웠습니다. 결과 렌트겐실로 전임하여 일하다가 2000년 9월부터 실장으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의사직업 자체가 사람들의 생명을 구원하고 건강을 보호하니 중요하다는 것은 두말할 것 없지만 그 외에도 의사가 어떤 품성을 가져야 한다고 봅니까?

-의사는 우선 남의 아픔을 자체의 아픔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특히 소아과라면 그 어린 환자의 부모의 입장에 자신을 세워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그 애의 건강회복을 위해 모든 정성을 다 들이고 온갖 수단을 다 이용할 것입니다. 

김 안나 의사가 바로 그렇게 의사의 직무를 수행하고 있다. 때문에 수십년이 지난 오늘에 와서도 그가 치료했던 아이들이 부모가 되어 자기의 자식들 때로는 손자들을 데리고 와서 안나 로마노브나와 상담을 하기도 한다.

김 안나 로마노브나는 알마티시 제1호 아동병원 40주년의 기념해인 2005년에 <카자흐스탄공화국 <보건 특수일군>칭호를 받았다. 안나 로마노브나의 가정을 화목한 국제주의 가정이라고 할 수 있다. 두 대학 (인민경제 대학, 대학 번역전문과)을 졸업한 딸 따찌야나는 터키-카자흐스탄 리쩨이에서 통역으로 근무하고 있는데 그의 남편은 독일인이다. 그리고 상-페테르부르그 발틱대학 항공로켓건설 학과를 필한 아들 블라지미르는 지금 학사논문을 쓰는 중인데 그의 안해는 러시아인이다. 안나 로마노브나는 귀여운 손군 셋을 두고 있다.은퇴할 나이가 이미 지났지만 김 안나 의사는 정든 병원을 떠날 계획이 없다. 그는 그동안 쌓은 경험을 젊은 의사들에게 넘겨주면서 나라의 미래인 꽃봉오리들의 치료에 여전히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남경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