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위대한 전승절이 가까워 올수록 될수 있으면 더 많은  사람들 특히 젊은 세대가 우리의 손우 세대 (할아버지와 아버지들)가 어떻게 전쟁을 겪었으며 어떻게 살아남았으며 무엇을 달성했는가를 알았으면 한다. 전쟁시대에 왜 고려인들을 붉은 군대에 동원하지 않았으며 그들에게 조국을 수호할 기회를 주지 않았는가하는 질문이 나를 고민에 잠기게 하였다. <건강한 사나이가 왜 전선에 나가지 않는가?> - 하는 자연스러운 질문을 듣고 고려인 남자들이 모욕감을 느꼈다고 한다. 전쟁이 시작된지 일년이 지나 즉 1942년에 운명에 따라 우리 가정이 타스켄트주 고려인 꼴호스 <뽈랴르나야 스왜스다>에 이주하게 되었다. 그 때 내가 13세였는데 1947년까지 그 곳에서 살았다. 그러니 어려운 전쟁시대의 아동시절이 그 꼴호스에서 지나갔다. 우리는 찬 물이 허리까지 오는 논밭에서 일했고 어린 손가락은 목화의 꼬투리의 가시에 찔려 피가 나군 하였다. 그렇게 첫 눈이 내릴 때까지 일했다. 그러니 수업도 프로그람을 줄였다.나는 어른들이 힘과 몸을 아끼지 않고 일하는 것을 보았다. 교사들은 봉급을 거의 다 <모든 것은 전선을 위해, 모든 것은 승리를 위해!>라는 구호실천에 받쳤다.

많은 고려인 청년들이 전선으로 나가려고 했지만 그들을 로동전선에만 보냈다. 그들은 굶주림으로 하여 부운 몸으로 탄광에서 수인들과 함께 힘겨운 일을 하였다.전쟁시대에 별별 비극이 다 일어났다! 그런데 남편들에게 <인민의 적>이란 딱찌가 붙어 스탈린의 강제수용소에서 죽은 고려인의 안해들은 운명의 어떤 무서운 타격을 받아야 했던가! 우리 꼴호스에는 그런 가정이 몇 개가 되었다. 그런 한 가정에 대해 이야기 하는 바이다.전쟁이 판을 치던 어느 날 우리 꼴호스에서 사는 친척들을 한 여성이 찾아왔다. 그런데 그 여성에게는 자식이 셋 (아들 하나와 딸 둘)이였다. 얼마후에 그 여성은 학교에 비서로 취직했다. 모두가 그를 존경하여 부칭을 붙여 이리나 야꼬블레브나라고 불렀다. 성은 촤가였다. 그는 제 32저격사단 제 95저격련대 제 3대대장 김순국 (뾰뜨르 루끼츠)의 안해였다. 남편은 1937년도에 탄압되여 <인민의 적>으로 몰려 1938년도에 총살당다고 알고 있었다.이리나 야꼬블레브나는 보잘 것 없는 비서의 월급을 받으면서혼자서 자식 셋을 자래웠다. 이 연약한 여성은 신체가 튼튼한 남자도 이겨내기 어려운 난관을 겪어왔다. 다행히도 모두가 다 잘알고 있는 상기 꼴호스 회장 김병화가 (후에 그는 이중 사회주의로력영웅이 되었다) <인민의 적>의 아이들이 자라는 가정들에 배려를 돌렸다. 그 당시에 탄압된 이런 가정에 배려를 돌려주려면 큰 대담성이 있어야 하였다.1957년에 쏘련 최고쏘베트 군사협의회가 김순국의 소송사건을 재검토하였다. 판결이 취소되고 김순국은 사후 명예회복되었다. 3년이 지난후 즉 1960년에 이리나 야꼬블레브나의 운명을 바꾸어 놓았으며 그로 하여금 남편의 죽음을 두번째 겪게 한 사건이 있었다.이리나 야꼬블레브나가 하루는 타스켄트의 한 거리에서 그의 남편과 함께 카렐리야연대에서 복무한 수예브 장교를 만났다. 그는 위대한 조국전쟁 시기에 전선에서 김순국을 만나 부다뻬스트시 해방전에서 같이 싸웠다고 이리나에게 이야기 하였다. 수예브는 이리나더러 군사위원부에 수소문을 해 보라는 충고를 주었다. 그 곳에서 온 답에는 그의 남편 김순국 (뾰뜨르 루끼츠)대령이 <군사임무를 수행하는 과정에 전사했다>고 적혀 있었다.이 시각에 이리나 야꼬블레브나가 무엇을 느꼈을까? 상상할 수 밖에 없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1938년에 사형당했다는 것도 기록으로 확증된 것이였는데…

그 때부터 이리나 야꼬블레브나는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장교의 미망인이였다. 그에게는 <군사임무 수행 과정에 전사한 군무제 가정을 위해 정해진 규칙에 따라 부양자를 잃은데 대해 지불되는 연금이 지불되었다.그 후에 이리나 야꼬블레브나는 제르신쓰크시 막내딸 집에서 살았다. 스웨뜰라나는 아버지가 체포된후 2개월이 지나 태여났기에 사진을 보고만 아버지의 얼굴을 알고 있었다. 이리나 야꼬블레브나는 1966년에 세상을 떠났다.최 이리나 야꼬블레브나의 강한 의지와 헌신적 로동에 의해 김순국의 자식들이 다 고등지식을 소유하고 유능한 전문가들로 되었으며 가장 중요한 것은 사회의 훌륭한 인물들로 되었다.

김 까.

<러시쓰끼예 꼬레이쯰>신문, 

2005년, 5호

<1941-1945년 위대한 조국전쟁 고려인들의 참전록 (저자-신 드미뜨리, 

박 보리쓰, 최 왈렌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