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인 화가에 대해 연구를 하기 로 결심했을 무렵(2017.04경) 처음으로 알게 된 화가가 문빅토르이다. 그는 여러 차례 한국을 방문하여 전시를 열었던 작가이다. 2017년 9월경에 국회의사당에서 고려인 강제이주 80주년 기념 ‘아픈 기억 꿈꾸는 희망’의 개인전을 개최했을 때 잠시 뵈었던 인연이 있다. 그 후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기회를 이번 카자흐스탄에 처음 갖게 되었다. 그의 친절함으로, 알마티에서 토막토막 이동 시간을 활용하여 세 번이나 만날 수 있었다. 1951년 카자흐스탄의 남동부 도시인 우슈토베에서 태어난 그는 당시 조선어를 사용하시던 할머니와 홀어머니(박 시나이) 사이에서 자랐기에, 한국어를 곧 잘 할 수 있었다. 그의 어머니는 11살 때 그곳으로 강제이주를 왔으며, 아버지와 어머니가 일찍 헤어지셔서 그는 아버지의 존재를 잘 모른다고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의 뿌리인 ‘문평 문씨(文平文氏)’에 대해 알고 싶은 갈증을 느껴, 여러 차례 문씨의 본 고장인 광주를 방문하기도 하였다. 어렸을 적 그의 집이 너무나도 가난하였기에, 그림을 통해서나마 세상을 미화하고 싶어 미술을 시작하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고골 알마티 미술대학에 진학하여 졸업(1975)후, 레닌그라드(현재 상트페테부르크)의 유대인 친구 집에서 2년간 머물면서 유명 화가의 도제 생활을 하였다. 종종 소비에트 정부에서 주어지는 벽화 및 광고 포스터 일을 하였기에, 수입이 괜찮았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가 위독하시다는 소식을 접하고서 알마티로 복귀를 하게 되었고 본격적으로 고려극장에서 미술가 겸 감독으로 활동하게 되었다. 고려극장에서 활동 당시, 강제이주의 아픔에 관한 이야기를 노인들로부터 직접 전해들을 수 있었으며 한국의 고전설화를 무대에 올리기 위하여 많은 글을 읽고 배울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지금껏 카자흐스탄에서 만난 작가들 중 모국과의 연계성이 가장 높았던 문빅토르 화백은 지금도 고국에서의 전시를 고대하고 있었다. 

고려극장에서 활동하면서 한복을 포함한 무대 의상이나 고국산천의 배경 작업을 하면서 얻은 경험에서 도움을 받았다고 한다. 한국의 전통에 대한 이전 세대들의 이야기와 책을 접한 것 또한 도움이 되었다. 그의 그림은 20세기 초반 프랑스에서 유행한 유파인 큐비즘(cubism, 입체파)의 형태를 따랐다. 입체파는 기존의 인상주의 이후 색채 위주의 표현주의에서 벗어나 형태의 본질을 객관적으로 파악하고자 일어난 운동이다. 지금도 고려극장의 무대 배경 그림 작업을 종종 맡고 있는데, 그의 큐비즘은 무대 위에서 열연하는 배우들의 움직임을 다양한 각도에서 포착하려는 시도를 화폭에 옮겨 놓는 것에서 비롯되었다 볼 수 있을 것이다. 작가는 강제이주의 회고에서부터 한국의 전통의상인 한복을 입고 갓을 쓴 사람들, 소비에트에서의 생활 등의 주제로 작업을 하고 있다. 무엇보다 어린 시절 한국어를 조금이라도 접할 수 있었던 환경에 살았고, ‘고려극장’의 배경 및 무대 감독의 생활, 아리랑 가무단에 소속되어 북한과 한국을 방문할 수 있었던 기회 등의 다양한 경로를 통하여 고국과의 연계성을 지속적으로 가질 수 있었다는 점이 다른 고려인들과 비교하여 특별하다. 강제이주 후 소비에트시기를 거쳤던 고려인들이 한국어를 접할 수 있었던 통로는 고려극장이 유일했다. 그 마저도 러시아어만 아는 고려인들이 대다수가 되고 있기 때문에, 한국어로 상연되고 있는 무대가 점점 희소해지고 있다. 고국인 한국에서도 고유문화전통의 보존과 발전을 위한 사업이 힘에 겨운 요즘, 1932년부터 모국과의 지속적인 문화 교류 및 한민족의 뿌리를 지키고자 노력해온 한인공연예술(연극, 음악, 무용)의 산실인 고려극장의 역할이 고맙고 자랑스러웠다. 그가 고려극장에서 근무하며 자신의 뿌리를 찾고자 노력한 것으로 한인의 명맥을 이을 수 있었고, 오늘날 그들의 삶을 들여다 볼 수 있는 복이 되었다.

전선하 홍익대 미술학과

예술학전공 박사과정 수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