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 수비병은 대체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 첫째로 이는 국가의 초소에서 국가 경계를 철저히 옹호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어야 하며 건전한 정신에 육체적으로 단련되고 강한 성격을 가져야 할 것이다. 그러니 국경 수비전문학교는 신입생들의 선발에 특별한 주목을 돌리고 있다.군무교육과 인연을 맺은 현재 예비군 장교인 육군 중령 김 예브게니 표도로비츠는 연금 연령임에도 불구하고 오늘도 교편을 잡고 군무를 계속하고 있다. 군사학을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넘겨주기 위해 군무활동을 계속하는 김 예브게니 표도로비츠 장교를 135 중학교에서 만났다. 젊었을 때 나라에 바친 군사 공로로 하여 수여 받은 여러 훈장과 메달들이 그의 가슴을 빛내고 있었다. 그 공로를 살펴보면 평민들과는 특별 차이가 없겠지만 이에는 나라를 극히 사랑하는 애국심이 깃들어 있는 것은 사실이다.
-예브게니 표도로비츠, 군사학에 관심이 많아 선택한 직
업에 대해 이야기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다름이 아니라 학생 시대 제가 공부했던 이씍 구역 딸가르시 학교로 국가 안전부에서 장교 한분이 찾아 왔는데 그분이 학생들 앞에서 군사일에 대해 하는 여러 가지 이야기가 너무나도 호기심을 갖게 했습니다. 그 때부터 학교를 졸업하고 앞으로 꼭 군사 직업과 일생을 맺을 것을 결심하고 많은 준비를 했습니다. 국경수비병이 되려는 마음을 굳게 먹은 예브게니는 1966년에 중학교를 졸업하고 알마티 국경수비전문학교에 입학했다. 수업과정이 과연 쉽지 않았지만 여러 군사학 과정을 파악하고1970년에 졸업장을 받아쥔 그는 고향땅인 자르껜트 지역 군부에 배치받아 6년간 군무를 지켜왔다. 처음엔 어느 정도 어려움을 느끼기도 했다. 그러나 전문학교에서 얻은 고상한 지식과 그 자신의 강한 의지, 장교들의 훈련은 모든 어려움을 다 겪는데 도움이 되었다. 군사일이란 다른 자유로운 사회직업과는 달라 나라가 지시하는 명령에 따라 움직여야 한다. 1979년에 예브게니가 배치 받은 곳은 카자흐스탄의 이웃 지역인 키르키스 공화국의 도시 오쉬였다. 그 당시 키르키스 공화국이 날카로는 사변으로 불안한 시기였다. 1979년 12월 추운 엄동설한에 험한 산길을 걸어 넘어 국경초소를 굳게 지키며 옹호하였다. 또한 예브게니 표도로비츠가 겪은 대지를 지도에서 살펴본다면 지리상 위치가 각이하다. 다음은 아프가니스탄이였다. 그들이 국경수비대원들이지만 한편으로는 국제주의 의무를 수행할 중요한 과업도 있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중앙아시아 반혁명무리들과 3년 반 동안혹독하게 싸웠다. 쉴새 없이 사격하는 총소리에 정신을 잃을 것 같았다. 날려오는 총알에 맞아 함께 험한 산길을 같이 넘었던 전우들이 외국 땅에서 전사했다. 친구들을 외국 땅에 묻어 두고 고향으로 떠나가는 예브게니의 아픈 마음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예브게니 표도로비츠는 죽음의 고비를 몇번 넘으면서 기적적으살아났다고 말할 수 있다. 드디어 그는 1983년에 정든 고향에 돌아오게 되었다.
이제 파란색 모자를 쓴 젊은 장교는 자기 직업이 우선이라고 여겼으므로 알파라비국립대 법학부 통신과를 선택할 수 밖에 없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고향에 돌아 온 장교는 육군 중령 군칭을 받았으며 1983년부터1985년까지 '깔로이-훔브' 군부대에서 사령관으로도 직무를 어김없이 지켜왔다. 그 동안 생각지도 않았던 여러 가지 위험한 사건들이 이곳저곳에서 발생했었다. 즉 부류수뢰 및 지뢰로 말미암아 두 번이나 부상을 당했으며 또 타박상을 입은 일도 있었다. 알다 싶이국경수비대원들은 목숨을 걸고 나라의 경계선을 지키는 용감한 애국자들이다. 나라는 그들의 공로를 높이 평가한다. 이제 존경하신 장교의 훈장과 메달을 살펴본다면 적기훈장과 적기훈장 3등급 두 번이나 수여 되었으며 이 외에도 많은 기념 메달,소련 국경 경비에서 발휘한 전투적 메달 등등이 그의 가슴을 영원히빛내고 있다.무론 부모들은 위험한 직업을 선택하는 것은 원하지 않았을 것이나마 본인이 굳은 마음으로 선택한 일이니 할 수 없었다. 부친은 목재업자였고 모친은 시내 병원 요리사였다. 이런 가정에서 용이 태여났다. 현재 육군 중령의 가정에는 아들 아나똘리, 큰 딸 뽈리나,작은 딸 이리나 이렇게 셋이다. 작은 딸은 아버지와 같은 직업을 선택하여 카자흐스탄 메르께 군부에서 남편과 함께 복무하고 있으며 카자흐국립대 동방학부에서 한국어를 소유한 큰 딸은 현재 모스크바에서 가정을 이루고 살며 의사직업을 선택한 아들 아나똘리 예브계니예비츠는 병원에서 환자들을 치료하며 아버지와 어머님을 배려하여 어르신들의 건강 보호에 주력을 하는 부모님의 효자다. 손녀손자들 여섯 명을 따뜻한 품에 안으시고 편안하고 행복한 생활을하고 있는 육군 중령 예브게니 표도로비츠는 이제는 부러움이 없이 지난 모든 전쟁의 악몽을 생각치 않고 평안한 마음으로 뽈리나 사모님과 행복을 누리고 있다. 아직도 정정하신 육군 중령 예브게니 표도로비츠는 군복과 작별할 생각도 않고 계속하여 136 군사전문학교에서 저축된 많은 지식과 경험을 자라나는 후손들에게 넘겨주는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 알마티국경 수비전문학교는 이와 같은 유능한 국경수비병들을 배출하고 있다.
최미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