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어느 날 경진이는 갑자기 심장을 끌어쥐고 비명을 지르며 방바닥에 쓰러젔다.그런데 이것을 본 논나는 구급차를 부르지도 않았고 본체만체했다. 일해서 돈을 벌 생각은 안하고 앓기만 하는것이 논나의 마음에 들지 않았다. 참다못해     논나는 이혼을 선언했다.  논나는 경진이를 버리고 큰 아들 안드레이와 함께  다른 집으로 이주하고 말았다.  둘째 딸과 같이 남은 이경진은 딸이 버는 돈으로 생활을 하게 되었다. 그의 건강상태는 점점 악화되어 어떤 때는 심장을 끌어쥐고 비명을 지르며 그 자리에서 넘어질 때가 빈번  했는데  어째선지 둘째 딸 역시  자기 어머니처럼 구급차도 부르지 않았고 본체만체 했다.  차츰 세월이 흐름에 따라 그는 약간한  반신불수가 겹치게 되었고  어떤때는 정신이상이 생겨 헛소리를 치기도 했다.  내가 모쓰크와출장을 갔을 때 자유시간을 이용하여 오래간만에  가장 가까운 동창생 이경진 집을 방문했다.

(지난호의  계속)

그런데 병석에서 신음하는 경진이는 누은채로 처음부터 내가 나가는  마지막순간까지 나를 알아보지 못했고 그와 헤어지는 순간까지 아무런 말도  못했다. 후에 해명한 바에 의하면  그날 바로 내가 그의 방에 들어서기 직전에  자기 방에서 글을 쓰던 경진이는 갑자기 심장이 터지는듯 아팠기  때문에 가슴을 틀어쥐고  비명을 지르며 그자리에 쓰러졌든것이다. 그런데 같이 사는 둘째딸 율랴는 시급히 구급차도 부르지 않았고 이번에도  본체만체 했든것이다. 이것은 한마디로 말하면 자기 부친의 죽음을 기다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게 하였다.그러나 나와의 담화에서 율랴는 마치 자기부친을 몹시 사랑하며 있는 힘을 다하여 앓고있는 부친을 돌보아준다고 말했다. 특히  실업을 당한후부터는    병이 더 심해졌고  자기가 직장에 나가게 되면 하루 종일 그를 돌보아줄  사람이 없다는것이며 양노원수속은 했지만 무료는 아니였고 돈없는 환자인 그를  양노원에 받아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따라서 딸의 말에 의하면 아버지의 심장병은 고치지 못하는 병이니 죽음을 기다리는 수 밨에 없다는 것을    노골적으로 나에게 암시했다.그렇지만   자기는 물론 온가족이 부친을 위해 정성을 다 바쳐 돌보아주고  있다고 게속 말하면서  자기 부친은 이따금  정신이상이 생겨 모두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이였다. 아마 그래서 논나는 자기 큰 아들을 데리고 이혼을 선언하고 멀리로  나가버렸단말인가 ? 나는 율랴를 이해할수 없었고  이해할필요가 없었다

나는 그녀의  말이  새빨간 거짓말이라는것을  확신했지만 그녀와  말다툼을 하려는 생각은 없었다.  그런데 율랴는  만일  부친이  타계하게 되면 그를 몹시 사랑하고 존경하는 식구들은 모두 힘을 합하여 그를 조선풍습으로  훌륭한 고려장을 하겠다는것이였다.  이말을 들었을때 내가슴이 뜨끔 했다.

-조선식고려장이란이란 어떤것이요 ?-하고 물었을 때 율랴는우선 첫째로, 한복을 이미 구했고  그것을 그가 죽은 후에 입히겠다는것이며 둘째로는  그가 여러해동안  제일 많이 사용한 로조사전을 베게로 하고  세번째는 낚시대를 관안에 넣고  화장하는것이  아니라 츄쁘리야놉까 수림에 묻겠다는 것이였다. 이렇게 조선에서 온 경진이를 즉 자기 부친을 조선식으로 땅에 파묻겠는데 그녀는 이것을  고려장이라고 생각했든것이다. 그럼 고려장이란 도대체  어떤것인가 ? 율랴가 생각하는것과는 전혀 다르다. 부모가 늙었을 때  늙은 어머니 ( 혹은 아버지)를  지게에 진채 산에 올라가 깊은 산중에 노모를 버린다 .   버림 받은 노모는 아무런 음식물이 없는 산속에서 며칠후면 그자리에서 굶어서 사망하게 된다. 이것이 고려장이다.얼마후 율랴와 이별하고  알마아따로 귀가한 나는  며칠안되어   경진이에게서 편지를 받았다.  그는 어떤 때는 몸이 아프지 않기 때문에  편지를 쓸수 있는 힘이 생기는건가 ?. 그런데 그가 되는대로 막 쓴 편지였지만  내용은 알아볼수 있었다.  그는  그날 내가 그의 집에서 그의 둘째딸 율랴와 이야기한 내용을 몽땅 다 들었고 충분히 이해했다는것이다. 그중 양노원수속은 자기 마음을 몹시 불안케 했다는것이 였다. 즉 일생동안을 <쏘련여성사>가페쇄 될 때까지  일하면서 온 가족을 벌어먹였는데 지금 늙은 자기를 양노원에 보내려는데 대하여 그는 자기 슬픔을 기록했다. 그후 경진이는 얼마안되어 집에서 아주 나갔고 행방불명 되었다... 그 때 논나와 안드레이는 차를 임대하여 여러 곳을 여러 날동안 찾아다녔지만 그를 찾아내지 못했다. 그런데 마지막으로  그가 낚시대를 들고  자주 다니는 월가강변에 있는  정해진  낚시터에 갔을 때  그곳에서 그를 발견하게 되었다. 그는 물론 낚시질을 하려 이곳에 온것이 아니라 죽으려고 온 것이다.  그는 실신상태에 있었다. 후에 알게된 바에 의하면그를 집으로 싣고 오자마자  그는 세상을  떠났다는 것이다. 경진이가 집에서나갔고 행방불명됐다는것을 알게 된 알마아따 친구들은 시급히 모금을 했고   대표로 양원식을 츄쁘리야놉까로 보냈지만 때는 늦었다 이때  논나는 그를 벌써 모쓰크와에서 화장했고 그 어느 한 공동묘지에 매장했다. 양원식은  이 장예식에 참가했다. 장예식이 끝나고 양원식이가 경진이 집으로 돌아 왔을 때 그의 서재에서 많은 책들 가운데서  다음과 같은 글이 적힌 필기책을 발견했다. 글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네 손으로 나의 눈을 마지막으로 닫아주고는 더는 나를  보지 말라.네가 나의 숨기 없고 죽은 나의 얼굴을 보는것이 나는 싫다. 그리고 네가 나의 죽은 얼굴을 회상하는것은 더욱  더 싫다. 그러나 너는 나를 잊지 말고  늘 회상하라, 산 날의 나를...

그리고 기억하라, 분주하게 뛰여 다니며 동무들과 유쾌하게 지내던  지난날의 나를.때가 오면 츄쁘리야놉까에  내가 심은  그 고운 꽃들은 떨어져서 죽고 나 또한 죽어서 땅에 묻치게 되면  너는 나자는 곳을 돌봐주면서 거룩하다고 불러 주렴. 그 때  네 고운 목소리를 들을 때면 내묻친 무덤 따뜻하리라 네가  나를 항상 사랑하여준다면 네가 올 때까지 나는 잘 자리라...>

김종훈